[김현아] 60년대의 남한

김현아∙ 대학 교수 출신 탈북자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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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사람들은 지금 북한사람들처럼 북한에 대해 모르고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서적이나 방송을 보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대학생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몰래 지하에서 북한의 서적을 보고 방송을 들었습니다. 당시 일부 대학생들은 북한을 이상사회로 동경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냉전의 해체와 민주화의 실현으로 이러한 금지조항이 해체되었습니다. 게다가 독일통일로 인해 통일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북한은 어떤 곳일까?

1990년대 말 탈북한 사람들은 북한의 참혹한 형편에 대해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상당수 남한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지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북관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적지 않은 남한주민들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많이 통제받았지만 그래도 북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간부들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답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가보지 못한 남한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뭐 힘들게 생각할게 없어, 60년대의 남한이라고 생각하면 돼”

60년대의 남한은 어떤 곳이었을까? 북한주민들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북한현실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때 남한에는 지금 북한처럼 햇곡식이 나기 직전이면 쌀이 없어 굶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강냉이밥을 먹는 것처럼 그때 남한 주민들은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물론 지금 북한처럼 잘사는 사람들은 이밥을 먹었습니다. 북한처럼 외국의 지원도 받았습니다. 당시 남한에서는 외국에서 보내주는 옥수수가루와 우유가루를 학교에서 굶는 아이들에게 공급해주었습니다. 중소도시 모습도 지금 북한과 비슷합니다. 60년대 사진을 보면 자전거나 구루마에 짐을 싣고 가는 사람들, 강가에서 물 긷고 빨래하는 여인들, 옷차림이 낯설 뿐 북한과 비슷합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당시 남한의 국고에도 돈이 없었습니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나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섰습니다. 남한지도부는 산업화를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 많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일회담을 했고 배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처지가 비슷했던 서독에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서독은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것을 담보로 돈을 꾸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머나먼 독일에 가서 그곳사람들이 기피하는 가장 힘든 일을 맡아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파병을 했고 피를 흘린 대가로 돈을 받았습니다.

김정은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외국에 노동자를 파견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남한과 달리 외국에서 번 돈을 본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독차지하고 있으니 국가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석탄과 광물수출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도 시작했습니다.미국, 남한과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점이 더 많습니다. 남한은 힘들게 마련한 돈으로 산업화를 했습니다. 고속도로와 같은 산업지반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아파트와 놀이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로도 없고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고 통신도 불편한 생땅 같은 곳에 자본을 투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정권을 잃을까 두려워 북일회담, 북미회담 남북회담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입니다. 결국 북한은 남한보다 반세기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남한이 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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