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북한에도 ‘시장 바람’ 불까?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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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북한 주민들은 경제 위기와 식량난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았습니다. 그 때부터 북한의 중앙계획경제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북한의 1인당 총생산액이 2천850 달러였는데, 5년만에 58%로 줄어 1996년에는 1천200달러에 도달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때 북한의 철저한 배급제도가 무너지면서 경제난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많은 북한 주민이 시장에서 장사하거나 부업을 하면서 돈을 더 벌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젠 북한 주민들이 중앙배급제도에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장마당, 농민시장이나 암시장에서 장사가 더욱 더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지도부로부터 내려온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은 고난의 행군을 겪은 주민들이 생존을 위하여 창조한 것입니다.

물론 장마당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 교류는 주로 제3세계 국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시장경제가 북한사회에 이러한 현상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 할 순 없지만,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중앙배급체제에만 의지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10년 전쯤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일할 때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주민들에게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경제에 관한 인식을 심어주는 데 시장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비아나 탄자니아와 같은 경우 경제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공산주의 통제하의 경제였기 때문에, 자유로운 교류가 추진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들은 공산주의 시대에 아주 가난했지만, 결국 개혁의 길을 선택해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탄자니아와 같은 경우 개혁 과정을 이끌어나가는데 아직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수도인 항구 도시 다르 에스 살람 해변가 옆에 있는 어시장을 방문하면서 탄자니아 사람들의 기업가 정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장사꾼들이 배를 타고 생선을 산후, 큰 물통에 넣어 해변가 옆에 있는 시장으로 가지고 가, 대기하고 있는 경매인들에게 팝니다. 경매인들은 가격을 큰 목소리로 부르면서 경매를 통해 그 생선을 행상인들에게 팝니다. 마침내 행상인들은 큰소리로 소비자들을 유혹하여 그들에게 생선을 팝니다.

다르 에스 살람 어시장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지만, 어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약 15분 만에 일사천리로 중개 장사꾼 3명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팔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활발한 경제교류를 보면서 합리적인 경제 정책을 통해 개혁을 이끌어 나가려는 탄자니아의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동유럽의 경우, 처음 공산주의 시대 때는 자유로운 경제 교류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뽈스까 (폴란드), 마쟈르 (헝가리)나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와 같은 동유럽 나라들은 1970년대부터 소기업의 설립과 운영을 허용했습니다. 그 당시 사유 소기업을 설립했다는 것은 자유시장을 건설하려고 하던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를 향상시키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그 나라들은 20년 후인 1980년대 말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개방시킨 후1970년대부터 바탕이 되었던 기업정신으로, 더욱 수월하게 개혁 정책을 이끌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하던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는 사유 소기업을 허용하진 않았습니다. 자유로이 이뤄지던 경제 교류는 거의 모두 암시장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루마니아의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경제로 향한 전환기는 더욱더 길고 힘들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라도 소규모의 기업을 허용한다면 개방된 후 경험이 있는 기업가들이 전환기에 경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에도 장마당에서 이뤄지는 경제 교류는 긍정적인 발전이라 볼 수 있으며, 앞으로도 경제 개혁으로 향하는 성실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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