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34년 전 로므니아 반공산주의 혁명의 교훈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3.12.26
[스칼라튜] 34년 전 로므니아 반공산주의 혁명의 교훈 1989년 12월 23일 티미쇼아라에서 50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된 가운데, 군대와 친차우셰스쿠 세력 간의 충돌 중 사람들이 루마니아 티미쇼아라 교외의 장갑차 위에 서 있다.
/AP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지난 1217일부터 25일까지 로므니아 (루마니아) 사람들은 34년 전 공산주의 독재를 제거해서 자유를 되찾은 주간을 기념했습니다. 로므니아는 1945년 소련군의 군화발에 짓밟혀 26살 밖에 안된 젊은 왕이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국가명은 로므니아 인민공화국으로 바뀌면서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되었습니다. 국가명은 나중에 로므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며1965년부터 1989년까지 25년 가까이 로므니아 주민들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공산당 총비서 독재 체제 하에서 살았습니다. 차우셰스쿠는 1974년 로므니아 대통령 직책도 만들어 영원한 령도자로 찬양되기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대말 인권유린, 불안한 경제, 열악한 보건과 위생 상태와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로므니아 사람들 중 차우셰스쿠의 정권이 정말로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구라파 나라에서 공산주의 독재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로므니아 사람들은 결국 독재체제를 무너뜨릴 용기와 힘을 모았습니다.


 1989 12 17, 로므니아 서부에 있는 티미쉬아라라는 도시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티미쉬아라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도시이며 대다수 시민들은 로므니아 계통이며 마쟈르인, 독일인 등 소수민족들도 많습니다. 또한 티미쉬아라는 중세시대 때부터 로므니아가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되기 전 정교회, 천주교,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상의 관용을 바탕으로 하던 도시였습니다. 티미쉬아라는 유고슬라비아와 마쟈르(헝가리) 국경에 가까우며 북중 국경 지대에 위치한 신의주처럼 밀수입, 장마당과 암시장 활동이 활발한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로므니아 말로 장마당이란 탈쵸크(talcioc)’였습니다. 티미쉬아라에서는 밀수입된 서독산 운동화와 미국산 청바지부터 양주, 서양 담배, 거피와 록음악 음반에 이르기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므니아 비공식 상인들은 티미쉬아라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해 나라 곳곳에 있는 소매시장에서 팔곤 했습니다. 또한 많은 티미쉬아라 시민들의 친척이 망명하여 외국에서, 특히 서독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므니아는 고립된 독재국가였지만, 서양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계와 접촉이 되는 티미쉬아라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대 국민 연설을 통해 티미쉬아라에서 일어난 사건은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혐오하는 민중의 혁명이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외국 비밀 요원들의 짓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로므니아 사람들은 이미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티미쉬아라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우셰스쿠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된 차우셰스쿠는 대 국민 연설 이틀 뒤, 부꾸레슈띠 중심가에 있는 공산당 본부 베란다에서 수 천명의 군중에게 또 다른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 군중은 지난 25년동안 차우셰스쿠의 연설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위대하신 령도자"라는 구호를 외쳤던 군중이 아니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연설하는 동안 이들은  독재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연설을 중계하던 텔레비전 방송은 끊기고, 전기 확성기도 꺼졌습니다. 19891221일 밤새 차우셰스쿠와 공산당 최고위급 간부들은 공산당 본부건물 안에 피신해 있는 동안 로므니아 수도인 부꾸레슈띠에서는 반공산주의 혁명이 크게 번졌습니다. 대학생들, 노동자들, 민간인들이 다 같이 길가에 나가 밤새도록 전투 경찰, 내무부 군인들, 국가안전보위부, 국방부 군인들과 충돌하면서 여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1989 12 22일 아침 민간인들은 군인들에게 담배와 꽃을 주면서 같이 싸워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설득했습니다. 중앙 라디오 방송국은 밀레아 (Milea) 국방부 장관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새로 국방부 장관이 된 빅토르 스턴쿨레스쿠 (Victor Stănculescu) 장군은 대학살을 하려는 도살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민간인들을 죽이라는 독재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로므니아 군인들은 더는 독재자를 보호해 주지 않고, 민간인과 손을 잡았습니다. 민간인들도 땅크 (탱크)와 장갑차 위에 올라타, 군인들과 같이 공산당 본부를 공격했습니다. 민간인 수백명이 문을 부수고 공산당 본부에 들어간 후,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건물 위에 있는 헬기를 타고 도망쳤습니다. 해방된 로므니아 방송국은 독재자가 도망쳤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독재자의 경호원들까지도 민간인들을 죽인 차우셰스쿠를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는 1222일 로므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었습니다.
12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날 차우셰스쿠 부부는 군사 재판을 받고 사형 당했습니다. 그들이 사망하자 로므니아 전국에서 싸움의 총 소리는 그쳤습니다. 드디어 로므니아는 자유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로므니아 주민들은 198912월 자신의 용감, 불퇴전, 힘과 희생을 통해 자유를 찾아 독재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독재국가에 살던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로므니아 반독재 혁명의 교훈은 정치탄압, 인권유린과 공포정치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위간부, 군인, 보안원과 일반 주민들이 드디어 독재자와 그의 가족을 포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혁명이후 약 25년동안 로므니아는 쉽지 않은 전환기를 겪었고 드디어 대다수 로므니아 주민들의 소원에 따라 로므니아는 2004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였으며 2007년 유럽연합에도 가입했습니다. 로므니아는 공산주의 독재 시대보다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으며 생활 수준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신의주와 같은 시장 경제의 맛을 본 북한 도시도 로므니아 티미쉬아라처럼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요? 김씨 일가 정권은 권력세습을 두번이나 이뤘지만 로므니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처럼 영원할 순 없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를 교훈 삼아 더 늦기 전에 유혈적 변화를 피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평화로운 개혁과 개방을 받아드릴 지혜와 용기가 있을까요?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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