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수필] 장벽 허문 ‘유럽소풍’ 20돌

‘소풍’이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야외에서 자연을 즐기며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고 다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렉 스칼라튜∙ 루마니아 출신 언론인
2009.08.25
이렇듯 소풍이랑 단순한 것이지만, 20년 전인 1989년8월19일 한 소풍이 유럽, 또는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그것은 당시 공산권 국가이던 헝가리의 도시 소프론에서 일어났습니다. 소프론이라는 도시는 헝가리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의 국경 가까이 있었습니다.

1989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6월 27일 당시 공산 국가이던 헝가리의 외무부장관 귤라 호르느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의 외무부장관 알로이스 모크는 회담을 하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즉 공산주의 독재와 자유민주주의를 분단시킨 두나라 국경에 있는 철조망 한조각을 상징적인 행위로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귤라 호르느 헝가리 외무부장관은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순간은 저의 외교관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오스트리아와 가까워지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갈라놓은 철조망 한조각을 없애며 미래를 바라보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유럽을 분단시킨 철조망과 장벽이 어느날 사라지길 기대해봅니다.” 그당시 헝가리 외무부장관이 말한 소망은 1989년말까지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지면서 몇개월만에 이루어 졌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탄압을 겪던 동유럽과 자유민주주의 세계이던 서유럽과의 분단이 헝가리에서 이뤄진 소풍으로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8월 19일 헝가리 도시 소프론에 접한 오스트리아 국경이 3시간동안 개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럽소풍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날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헝가리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국경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면서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같이 소풍을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려는 ‘유럽 소풍’의 소식을 듣고 당시 공산권 국가이던 동독 사람들이 이소풍을 자유세계로 탈출하는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00명이 넘는 동독 사람들은 같은 공산권 국가이던 헝가리와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는 ‘유럽 소풍’ 때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독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8월 19일 헝가리 도시 소프론에서 있은 소풍으로 시작한 과정이 1989년 10월 동독과 서독, 공산주의 독재 세계와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분단시킨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1989년10월과 11월 불과 두달사이, 독일은 분단 40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다른 동구권 공산주의 나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과정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수만여 동독 피난민들에게 입국을 허가하고 이들이 쉽게 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독으로 망명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나 많은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동독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89년 10월 수천여 동독 젊은이들이 망치를 들고 베를린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북한에서 ‘마쟈르’라 불리는 헝가리, 또는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 ‘뽈스카’라 불리는 폴란드까지 포함하여 모든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은 20년전 1989년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했고 유럽연합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습니다. 개혁, 개방과 인권 보호 까지 현대 국제사회의 기본적 원리를 아직까지 거부하는 공산주의 독재 세계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한도 이웃나라를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기 보다는 서민들을 더이상 탄압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참여하여 하기 위한 변화의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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