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애기봉의 새해나무

란코프 ∙ 국민대 교수
2023.12.28
[란코프] 애기봉의 새해나무 북한과 맞닿은 경기 김포 애기봉에 성탄 트리 모양의 조명 시설이 9년 만에 설치됐다.
/연합

란코프 교수
란코프 교수
지난 24, 개성에서 멀지 않은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인민군대 군인들은 2014년부터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남한에서 새해나무를 설치했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1971년부터 북한에서 잘 보이는 애기봉 공원에 새해나무를 설치해 왔는데요, 남북 관계가 좋아졌을 때 북한의 요구로 잠시 설치하지 않은 때도 있었습니다

 

북측이 이런 요구를 한 이유는 북한에서 새해나무로 불리는 이것이 크리스마스트리 즉 성탄절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름만으로도 이 나무 장식이 기독교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은 한밤에도 반짝이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새해나무를 자신들에 대한 위험한 도발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말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현실은 종교를 적대세력으로 취급합니다. 북한은 인정하지 않지만, 1945년 국가를 만들었던 당시의 사상적 기반은 소련에서 수입된 마르크스레닌 주의였습니다. 주체사상이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레닌 주의에 따라 북한은 종교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1930년대 소련은 종교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종교인을 단속하고 탄압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공산당의 정책에 의해 약 80%의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들어와 대부분의 사회주의진영 국가에서 종교에 대한 태도가 크게 완화됐습니다. 1950년대 말 소련에서는 많은 교회가 복원됐고 종교 지도자 즉 신부를 단속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수용소에 수감된 수많은 신부들을 석방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공산당은 종교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이었으나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종교 세력과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들어와 북한은 거의 모든 종교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는 엄격한 감시를 받는 교회가 북한 내에도 생겼지만, 이 교회들은 신도들이 모이고 기도하는 장소가 아니라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 국가 가운데 북한만큼 종교 탄압 정책을 지속적으로, 열심히 추진한 국가는 없었는데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 정부는 사회와 경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가치관을 완전히 장악하고자 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보다 이 같은 경향이 굉장히 강했고 따라서 마르크스레닌 주의이든 다른 종교사상이든 주체사상과 함께 공존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주체사상을 유일하고 올바른 과학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사회의 일색화를 추구했습니다. 교회는 로동당이나 공산당의 일당 지배를 비판하지 않더라도, 사뭇 다른 세계관을 보여주는데요. 일색화된 북한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북한은 과거보다 일색화를 덜 강조하는 경향입니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 때 반대투표가 나온 것은 이런 경향을 방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조차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정부 정책에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애기봉 공원의 새해나무는 북한 당국자들에게 여전히 큰 도발이 되는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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