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핵무기보다 무서운 경제 문제
2006.12.29
소련 붕괴 15돌입니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 공산당 고르바초프 총비서는 공식적으로 소련 국가의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선언은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지구상에는 자신을 공산주의 국가로 묘사하는 나라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나라의 경제구조를 분석해 보면 사실 이들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들 나라는 정치 부문에서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독재이지만 경제 부문에서 100 프로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이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소련에서 자라난 사람이니까 소련의 마지막 위기를 제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이 질문에 대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소련의 운명을 결정한 요소는 효율성이 없는 경제, 그리고 자유가 없는 정치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제가 정치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련 위기는 벌써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소련은 이 전에 실행했던 고립정책을 어느 정도 자유화했습니다. 이 시기의 소련 사람들은 외국 영화를 볼 수도 있었고, 외국 방송을 들을 수도 있고 특별한 경우에 외국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외 생활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숫자는 점차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나 70년대의 소련 사람들은 서방 국가의 주민들이 물질적으로 더 풍부하고 정치적으로 더 자유롭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또 소련 사람들은 유럽에서 사회주의 진영이면 비교적 가난하고 자본주의 진영이면 잘 산다는 것을 봤습니다. 물론 동독은 소련보다 부자 국가이었지만 서독보다는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당시 소련 정부는 이러한 빈부의 격차가 고생과 전쟁이 많은 소련 역사 때문이라고 설명했고 소련 사람들도 정부의 설명을 믿어왔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 설명은 설득력을 잃어갔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 들어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이러한 격차가 분명하게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련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희망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바꾼다면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도 있고 선진국의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에 소련은 세계적으로 제일 큰 군대도 있었고 최신 무기도 보유했었습니다. 1990년대 초에 소련군은 1만270개의 핵탄두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핵탄두를 사용한다는 것은 온 인류의 소멸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무기로 소련 체제가 직면하는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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