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브 칼럼: 북한의 세습 정치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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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유난히 공산주의 국가로써 세습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김일성은 자신의 장남을 "주체 위업 계승자"로 임명했을 때부터 그렇습니다. 김정일도 김일성처럼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러한 후계자가 아직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질문에 정답을 아는 사람은 김정일뿐 만입니다. 그래도 전문가들 중에 북한 세습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지금 세습 문제의 배경은 어떻습니까? 김정일은 공식적인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여자와 관계가 있었고 아들 딸 몇 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에게 제일 큰 영향을 주고 그가 제일 사랑하고 그와 제일 오랫동안 동거한 여자들은 두 명 뿐입니다. 남한 출신인 성혜림 씨이며 일본 교포 출신인 고영희 씨입니다.

성혜림은 원래 이기영작가의 며느리였습니다. 그는 김정일의 연애 때문에 남편을 이혼하다가 1960년대 말부터 주석궁에서 이사해서 김정남이라는 아들을 나왔습니다. 그래도 김일성의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생이 많았습니다. 결국 1970년대 초에 성혜림 씨는 신경병 치료를 받으려 소련으로 가서 2002년에 죽었을 때까지 모스크바에서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그는 북한 정부에서 큰 돈을 받고 잘 살았지만 평양에서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1975년을 전후하여 김정일은 고영희 씨를 만났습니다. 고영희 씨는 성혜림 씨와 비슷한 점이 적어도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로, 미인 배우들이며 둘째로, 성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혜림 씨는 남조선 출신 영화배우이며 고영희 씨는 일본 교포 출신 무용수이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둘 다 벌써 죽었습니다. 그들의 사망은 김정일에게 큰 주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백 만명의 농민들이 굶어주도록 한 독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여자들이나 자식들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영희 씨는 1975년에 김정일을 만났을 때에 그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지냈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2004년에 죽었을 때까지 김정일과 같이 살아서 그 사이에 김정철과 김정운이란 아들 두 명이 나왔습니다. 현재는 성혜림 씨 소생 김정남은 36세이며 고영희씨 소생 김정철은 25세입니다.

김정일의 자식들은 1990년대에 스위스에서 유명한 학교에서 유학했습니다. 이러한 학교에서 학비만 해마다 2-3만 달러정도입니다. 아마 1960년대 초에 당시 정치 사정 때문에 해외 유학으로 가지 못했던 김정일은 이것을 유감스럽게도 생각하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유학 기회를 주길 결정했습니다.

김정남을 장남으로써 후계자로 제일 합리주의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정남에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격이 부족하다고 하곤 합니다. 또, 고영희씨는 다른 여자가 나온 김정남이 후계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영희씨는 자신의 아들인 김정철을 김 왕조의 세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고립된 성혜림 씨는 자신의 아들을 지지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김정철은 1981년에 대여 나서 아직 후계자가 되기 좀 어렵습니다. 아마 김정일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북한이 세습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습니다. 김 왕조의 실권과 엄청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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