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三池淵 개최합의에 얽힌 想念


2005.06.18

서울에서 열린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의 합의사항을 담아 23일 발표된 공동보도문 내용 가운데는 1990년대 초에 있었던 ‘남북고위급회담’ 때를 회상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다음번 ‘남북장관급회담’과 ‘남북장성급회담’을 “백두산에서 개최한다”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백두산’이란 백두산 산록의 ‘삼지연(三池淵)을 말합니다.

남북회담 장소로 ‘백두산’, 즉 ‘삼지연’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같은 일이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때도 있었습니다.

이 해 2월19일 낮 평양에서는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지금은 그의 시신(屍身)이 안치되어 ‘금수산 의사당’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당시는 그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던 이른바 ‘주석궁(主席宮)’에서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의 남북 대표들에게 오찬을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도중 남측의 정원식(鄭元植) 수석대표가 제주 감귤 얘기를 하다가 “다음에 남측에서 열리는 고위급회담 장소를 서울이 아닌 지방, 예컨대 제주도로 옮기는 것을 남북간에 상의하겠다”고 말하자 이를 받은 김일성이 북측에서 열리는 다음 번 고의급회담은 “삼지연에서 개최하라”고 옆에서 식사 중이던 연형묵(延亨?) 북측 단장에게 즉석 지시했습니다.

이 때 고위급회담은 남북에서 3개월 간격으로 번갈아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번 북측 지역에서 열리는 회담은 8월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시원시원”했습니다. 그는 “다음번에 북측에서 언제 회담이 열리느냐”고 물어 연 단장이 “8월”이라고 답변하자 “8월이면 백두산 쪽 일기가 아주 좋은 때”라면서 “남측 대표들은 우선 그 동안 오던 대로 개성ㆍ평양 간은 기차를 이용하고 평양과 삼지연 사이는 우리가 비행기를 내서 다녀오도록 하라”고 “통 크게” 지시했습니다.

이 때 삼지연은 이미 김일성이 여름 피서지로 애용하는 곳이자 북측 지역에서 백두산을 들고 나는 관문 도시였기 때문에 이 설왕설래(說往說來)를 옆에서 듣다가 기대감에 사로잡힌 남측 대표들 가운데서는 목젖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김일성의 “시원시원”한 “통 큰” 지시는 불발탄(不發彈)이었습니다. 5월 서울에서 열린 제7차 회담에 이어서 8월에 열리는 제8차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연락관 접촉에서 남측에서 2월에 있었던 김일성의 즉석 지시를 북측에게 상기시키며 “8차 회담을 삼지연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하자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은 “그것이 무슨 소리냐” “어디서 듣던 얘기냐”는 것이었습니다.

제8차 회담 장소는 다시 평양으로 결정되었고 남북고위급회담은 이 제8차 평양회담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이 제8차 평양회담 이후 북측은 일방적으로 회담을 보이콧 하여 고위급회담을 중단시켰던 것입니다.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은 환경면에서 그때의 ‘남북고위급회담’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김정일의 북한이 2000년6월15일에 발표된 ‘남북공동선언’의 결과로 남측 사회에서는 “반공보수(反共保守) 세력이 밀려나고 친북련공(親北聯共) 세력이 주류세력으로 등장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친북ㆍ좌익’ 정권으로 간주하고 있는 남측의 노무현(盧武鉉) 정권과의 사이에 도달한 합의는 이행될 가능성이 그 만큼 커지는 것이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번에 열리는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 개최 대가(代價)로 이미 20만 톤의 비료를 챙긴 북한은 이제 앞으로 남측으로부터 30만 톤의 추가 비료와 40만 톤의 식량, 그리고 농기구들을 더 챙기고 이에 더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남한을 볼모로 잡아서 핵문제에 관한 미국 측의 압박 외교를 무력화시키는 데 급급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일의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비료와 쌀, 그리고 농기구들을 모두 받아 낼 때까지, 그리고 핵문제와 관련하여 남한을 볼모로 잡아두어야 할 필요가 계속되는 한, 오는 9월로 예정된 제16차 ‘남북장관급회담’과 아직 언제 열릴지, 열려보아야 열린 줄 알게 될 ‘남북장성급회담’ 중 최소한 어느 하나만은 ‘면피(面皮)’용으로라도 삼지연에서 실제로 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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