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드림’에 흔들리는 옌벤 동포사회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남한으로 많이 빠져나가면서 일어나는 연변 조선족 사회의 상황을 다룬 남한 언론인 문명호 씨의 논평입니다. 논평은 논평가 개인의 견해입니다.

중국 옌벤의 한인(韓人)동포 사회가 ‘코리언 드림’으로 무너져 가고 있다는 소식이 또 들려 참으로 안타깝다. 무역업을 하면서 중국에 자주 드나든다는 남한의 한 경제인이 지난 주 신문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옌벤의 젊은이 35%가 이미 한국 등으로 빠져나가 옌벤 자치주는 부녀자들과 노인뿐이라고 한다. 그 결과 옌벤은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로 인해 교육마저 무너지고 있어 한인 학교 폐교율이 50%를 넘는다고 하니 그 곳 형편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지린성 옌벤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내 한인 192만 3400여 명 중 84만여 명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즉 전체 한인의 43%가 살고 있는 것이다. 한인 동포는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3번째로 규모가 큰 데 근면하고 적응력이 강해 중국의 어느 민족보다 생활정도가 높고 특히 교육열이 높아 민족적 동질성과 고유한 민족문화 전통을 잘 유지해오고 있는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이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에 벌써 1990년대부터 '코리언 드림' 열풍이 불어 닥쳤다. 몇 년 전 옌벤을 방문했던 때도 돈을 벌기 위해 젊은 여성들이 너도나도 남한으로 떠나가 그곳 총각들 사이에 “장가갈 처녀들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서 옌벤 총각들은 북한 출신 여성들과 결혼을 한다는 얘기였다. 그 당시에도 한인동포 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한인 동포사회가 무너져 내릴 정도로까지 심각한 사회현상이 되어 갈 줄은 몰랐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옌벤 조선족 자치주에서 남한으로 시집간 한인 여성은 지난 1990년 1천463명이던 것이 요즘 7만 여명이 훨씬 넘으며 심지어 룽징(龍井)시 백금향의 경우, 남녀 비례가 43대 1이 될 정도로 여성인구가 급감했다고 한다.

물론 한인 동포들의 ‘코리언 드림’으로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한인 동포들이 남한에 나가 벌어 오는 외화 수입이 옌벤 조선족 자치주의 경우, 주 재정 수입보다 더 많아 이 지역 경제가 탄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효과도 심각할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앞서 예를 든 대로 한인 젊은이들이 ‘코리언 드림’을 찾아 떠나가는 바람에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해지고 이 틈에 토지와 건물 등이 중국 한족(漢族)들에게 넘어가는 등 요즘엔 정치, 경제적으로 한족이 우세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한인 동포학교가 문을 닫거나 중국의 한족학교에 통합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문제는 ‘코리언 드림’이라든가 대도시 진출 후유증으로 동포사회의 이혼이 늘어나고 있고 유흥, 퇴폐업소 증가 등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인 동포사회가 무너져 감에 따라 외부인 즉 중국 한족의 유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2010년까지 옌벤 지역에 약 2백만 명의 외부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는 그곳 학자의 전망도 있다. 한인 동포의 계속된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로 인해 옌벤 지역의 한인 구성 비율이 20%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다. 만일 옌벤 한인 비율이 20%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중국 내 한인 동포들의 민족적 동질성과 교육 문화 중심이 되어왔던 조선족 자치주의 존망이 위협받게 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회, 한국정부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중국의 한인 사회는 한민족(韓民族)의 동질성과 정체성을 함께 지켜나가는 동포 사회이며 특히 남·북한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와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 중국과 오해나 갈등이 야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인 사회와의 인적 교류를 통해 남한 사회의 명암을 똑바로 알리는 일이다. 한인 사회의 지도인사, 교육자, 언론인 등을 초청해 남한 사회의 실상을 직접 보고 듣게 한 후 이들이 돌아가 남한에도 실업인구가 많고 일자리가 적다는 등의 실상을 알려주도록 하는 일이다. 실상을 똑바로 알게 함으로써 남한에만 가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한인 동포 학교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교육사업에 교류 협력하는 일이다. 수년 전 설립된 옌벤과학기술대 지원 같은 것이 좋은 선례다. 그리하며 동포사회에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도록 하는 일이다.

세 번째로는 역시 중국과의 오해가 일어나지 않을 범위 내에서 학술 문화 예술 교류를 통해 동질성과 민족문화 예술전통을 함께 유지해나가는 일이다.

중국 내의 한인 사회가 무너져가게 해선 안 된다.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는 해외 동포 사회 중 역사적으로나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나 어느 의미에서든 모범적 한인 사회로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