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북한군관학교 동기생에게 보내는 편지
2006.05.24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북한 인민군 육군 상위로 있다가 2003년에 중국을 경유하여 남한으로 온 박정수씨가 북한군관학교 동기생친구인 리 모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친구, 잘 있었나!
2003년3월 비오던 밤에 봉천역에서 자네와 헤어진후 7개월 만에 여기 남한땅에 왔다. 오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보람있네. 두고 온 나의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남아있고 자네와 함께 오지 못한 후회도 있네.
비교적 바깥세상에 대한 소식을 알고 있는 자네로선 그 땅에서 군복입고 살아가기가 무척 괴롭겠지. 우리가 미군과 국군을 허수아비로 보아 왔던 엄중한 착오를 빨리 털어버리고 현실을 정확히 봐야 할 때라고 보네. 남한국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때는 고생을 함께하던 친구에게 친구로서 진실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보내네.
반신반의 하던 일이지만 여기 와서 보니 참 인민군대는 농민군이나 다름없네. 우선 남한 군인들의 병영생활을 목격하고 난 충격을 받았네.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이 인민군의 여단장급이라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생활환경 조건을 따진다면 인민군연대장 생활수준과 국군사병생활수준을 대비하면 연대장이 기울 정도라구.
인민군이 중대까지 정치지도원을 두고 사상통제를 하고 정신무장에 집중하는 것이 사실 현대전에선 효력이 없을 것으로 보이네. 굶주려 허약해진 인민군이 평균 키가 167센치메터에 평균몸무게 65 킬로그램 상태에서 자기 소총도 겨우 들고 다니지만 남한 국군은 하나같이 건장하네. 난 처음에 국군사병들을 보며 놀랐네. 모두 북한의 농구선수만큼이나 키가 크고 체력도 좋더라구. 부대 안에선 죽은 송장처럼 기력 없던 병사들이 외출하면 사민들 앞에서 호랑이흉내 내며 집집마다 먹을 것 훔치러 다니는 인민군병사들에 대하여 국군사병들에게 내가 이야기해 주니까 그들은 “세상에 그런군대도 있나?”하며 믿질 않네.
이렇듯 정상적인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태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조선의 현실이네. 어쨌든 내가 북조선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일반적 현상으로 말해도 여기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네. 인민군병사들이 발가락이 보이는 터진 신을 신고 다니는 사실이 많고 배고파서 군관사택의 김치도적질 해먹다가 군관 아내들에게 매 맞는 현상도 거짓말처럼 듣고 있네.
조선중앙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인민군모습이 실제모습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네. 중대병사80명중 30명이 배낭이 없어서 낡은 마다라스를 찢어서 자체로 배낭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인민군현실은 그자체가 그 나라의 국방력상태임을 알아야 하네.
중대병실 세면도구 진열장에 걸려 있는 기계걸레처럼 더럽고 낡은 세수수건, 그나마 수량이 모자라 아침 세수할 때면 서로 싸우는 병사들, 밤 취침시간 이후면 병사들이 잠 못 들고 주린 배를 채우려고 약탈의 먹잇감을 ?아 온 밤을 싸다니는 그런 군대가 세상에 또 있겠나.
언젠가 자네와 내가 연대 지휘부에 갔다가 대대로 돌아오는 길에 남한에서 보낸 삐라뭉치를 본 적있지. 그 삐라를 보면서 우린 50%는 거짓일거라고 생각했지. 여기 와서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건 모두 사실이었네. 남한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며 풍요롭게 산다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네. 오히려 너무 자유로워서 문제네.
친구, 내가 자넬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네.
인민군대는 정치지도원들이 망쳐먹는다고 말하던 자네를 그때부터 난 속으로 동지적 친근감을 가졌었네. 자넨 진실을 보고 있네. 깨달은 선각자중 한사람이네. 철저한 수령의 정치적 도구인 인민군대의 운명은 오래 갈수 없네. 국가방위가 목적이여야 할 군대가 최고사령관을 보위하는 총 폭탄이라는 괴상한 사명감을 강요받고 비참하게 시달리며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도 기적이네. 국가마다 자기특성에 맞는 군대를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북한은 아니라구.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네. 나의 고향이 있고, 나의 정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지만 수많은 북한 인민을노예적 굴욕에서 해방시키자면 폭압적인 통치체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지휘관인데 허위와 진실을 봐야하네. 어째서 어젯날에 수령을 위해 충성 다하겠다고 부르짖던 그 땅의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죽을지도 모를 사지판에 몸을 던져 탈북의 길에 올랐겠나! 언제까지 우리의 누이들은 중국사람들에게 단돈 200 달러에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수난을 당해야 하나!
생각하면 비참해지고 슬픈 우리의 모습이네. 진실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지켜야 할 양심적 의무가 있다고 보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하대원들에게 인간다운 면모를 갗춰주길 바라네. 정신적 장애인인 인민군 병사들을 한사람이라도 구원해야 하네. 건강하여 조심하게."
2006년4월 23일. 박정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