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고향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6.09.27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오늘은 2002년에 탈북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최모씨가 고향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친구들아, 보고 싶다. 모두 잘 있는지... 남한사회에 적응하며 잘 살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와 혼란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나름대로 익숙해 가는 중이야.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고향에서 나를 두고 <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가족을 버리고, 당과수령을 배신하여 적의 편으로 도망간 인간추물>이라고 요란하게 말한다던데 그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진실을 밝혀두고자 편지를 보낸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도 여러 번 그런 군중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강연을 청취할 땐 남한으로 갔다는 사람들이 저주스럽게 생각되었었지.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오늘은 내가 계급교양강연의 주인공으로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지만 나와 철부지 때부터 한 고향에서 친구로 살아온 너희들에게라도 미움 받는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 내가 탈북하던 동기를 사실그대로 알려주겠다.
내가 겨울동안 준비해온 조개잡이도구를 챙겨서 배에 오른 것이 2002년3월이었어. 아직 서해바다엔 겨울의 추위가 남아 있었고 결국 물때를 기다려 잡는 조개잡이 수확이 만족스럽지 못했지. 그래서 공해상으로 향하다가 중국어선을 만나게 되었고 중국어부들로부터 우리가 잡은 조개 3톤을 외상으로 주면 1주일 후엔 다시 이 자리에서 쌀과 밀가루로 5톤을 주겠다고 하기에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보다가 그런 경험으로 횡재한 선배들도 여럿 보아 왔던지라
쾌히 승낙하고 조개 전량을 주었지. 그 조개는 120명의 조개잡이꾼들이 1주일동안 3월의 서해바다감탕을 손으로 파헤쳐서 잡은 피와 같은 것이었지. 120명의 주민들은 지금 쌀과 밀가루를 싣고 부두로 돌아올 이 배를 기다리며 집에도 가지 않고 식량을 받아갈 송수레를 가지고 온가족이 바닷가에 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다린다는걸 나도 잘 알지.
만약 1주일 지나도록 잡은 조개를 중국상인에게 팔지 못하면 신선도가 떨어져 팔수 없게 되므로 내 마음도 긴장되었던 찰나 중국배를 만났던 것이다. 통상 바다위에서 쌍방의 배를 맞대고 흥정을 벌이는 것이 상례로 되었던지라 이상할 것이 없었어. 나는 중국선장의 배등록증사본과 관련 담보서류를 받고 1주일을 작은 무인도에서 기다렸다가 쌀과 밀가루를 받아가려고 생각했었지. 기관기사와 함께 1주일,2주일이 지나도록 약속된 중국 배는 나타나지 않았어.
그때 나는 미치는 것 같이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대로 돌아가면 난 120명의 주민들앞에 나설 자격이 없는 것이다. 15일 만에 문제의 중국배가 나타났다. 인근 해안경비대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별로 해결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나와 약속했던 그 중국인은 태연스럽게 15일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 난 우리 배만 되돌려 보내고 중국배에 올랐다. 중국인은 3일후에 자기 집에 가면 조개판 돈이 있다고 했다. 시간이 바쁘면 자기와 함께 자기 집으로 함께 가면 된다고 한다. 북조선 사람이 중국땅에 들어설 수 없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이란 걸 난 알지.
< 좋아, 함께 가자. 가서 주지 못하면 네 목을 내손으로 자르겠다> 고 하자 중국인은 < 좋다!>라고 했다. 3일후 중국의 어느 부두에 들어섰다. 멀리에 입국하는 사람을 검열하는 곳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통과할 수 없기에 중국선장이 주는 자기 집 전화번호를 받아 쥐고 플라스틱 빨대하나 입에 물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멀리 에돌아 밤중에 중국 땅으로 올랐다.
어느 둔치에서 밤을 새고 날이 밝자 자그마한 가게에 들어가 집주인에게 손시늉을 하며 전화 한통 무료로 하게 해달라고 졸라서 겨우 승낙 받고 중국배선장에게서 받아 놓은 전화번호에 전화를 거니 그런 전화번호는 없다고 한다. 난 속았던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그 도시를 헤매며 중국선장을 찾아 다녔다. 1주일이 지나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확실해 지자 나는 어느 조선족식당을 찾아가 동정을 구하여 잡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을 때 난 내가 있는 고장이 중국요녕성 영구라는 곳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때 나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충격과 고민의 나날들이였고 나로 하여금 남한으로 가서 사람답게 새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지.
애타는 노력 끝에 그해 가을에 나는 남한으로 오게 되었고 지금은 남한에서 자유시민이 되어 통일되면 고향사람들 앞에 떳떳한 사람으로 나타나고 싶은 생각만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친구들아, 나의 탈북 배경은 이렇다.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편지 보낸다. 모두들 건강해서 통일되는 날까지 잘 있거라.
2006년8월 20일.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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