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 드리는 속죄의 편지


2006.06.07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함경북도 어느 농촌마을에서 살다가 1992년에 탈북하여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는 김철산(가명)씨가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 드리는 속죄의 편지입니다.

"어머니 안녕하셨습니까? 어머니의 속을 하루도 편하지 못하게 애를 태우던 이 아들이 어머니곁을 떠나온지 14년만에 서울에서 문안드립니다.

어디 간다온다 말없이 그날도 저는 집밖을 나갔습니다. 그후 14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들 때문에 속이 까맣게 재가 되었을 어머니 앞에 아들이 속죄의 편지 드립니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이 편지를 듣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진 않지만 이 편지를 후에라도 누군가가 어머니에게 전해 드릴수도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보내 드립니다.

사방 험한 산으로 둘러막혀 머리를 쳐들어야 하늘만 보이던 산골농촌 집에서 자라난 철없고 말썽많던 이 아들이 이젠 40세라는 중년이 되어 한가족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를 빼어 닮은 어머니의 손자가 둘이나 있습니다. 맏이는 13살이고 둘째 놈은 10살입니다. 둘 다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어머니, 오늘은 5월8일 어버이날입니다. 한국에선 이날이면 자식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고향의 부모님을 ?아 뵙고 효도하는 날이랍니다. 오늘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니 두 아들이 캐득거리며 저에게 “아빠,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귀한 몸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사십시요!”라면서 누가 시켰는지 카네이션 꽃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엄마나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줬겠죠. 기특한 애들을 마주보는 순간, 저에게 서글픈 생각이 밀려옵니다.

주름 깊고, 수척해지고 병약해지신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26년간 어머니의 고생의 대가로 살쪄온 이 아들은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머리 끄덕여 인사조차 하지 못한 불효자였다는 죄책감으로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우린 한겨울에도 오돌오돌 떨며 겨울을 원망했죠. 아들이 배불리 먹는 날이면 반드시 어머니는 굶으셨다는 걸 저는 알면서도 미안할 줄 몰랐습니다. 강냉이 밥이지만 아들을 배곯치 않게 하시려고 아픈 몸으로 비오나 눈 오나 농장 밭에 충실했습니다.

어느 해 가을에 작업반 탈곡장에서 분배받을 때 1년분 식량으로 통 강냉이 80킬로그램 받고 너무 억울하여 리당비서에게 ?아가 엎드려 빌며 사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손은 터 갈라지고 한 평생 화장이란 것도 모르고 살아오신 어머니.

하루라도 아픈 몸 쉬게 되면 식량분배 적어질 거라며 꼬박꼬박 일하신 어머니, 너무 오랫 동안 지게를 지셔서 나이 50세에 허리가 휘어지신 불쌍한 우리 어머니. 끝이 없는 엄마의 고생도 모르고 맛있는 거 해달라고 떼를 쓰고 강냉이밥 먹기 싫다고 하던 그 모든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동네 애들과 싸우고 때려주고 어떤 날에는 다리가 부러지도록 얻어맞고 하면서 어머니 속을 많이도 태웠습니다. 담배피우고 술마시고, 싸움질하며 학교시절 보내던 제가 해마다 읍 중학교에서 열리는 < 불량학생 비판회의> 에 4년 연속 우리학교에서 제가 지목되어 비판무대에 설 때 마다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돌봐드려야할 하나 밖에 없는 이 아들은 천리 타향 서울에 와 있으니 어머니께 오늘도 죄를 짓고 삽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도 혹시 어머니가 잘못되시지 않았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식량사정이 제일 곤란한 지역이다 보니 80년대부터 입쌀 구경 못한 곳인데 지금 같은 험악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저는 서울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부러운 것 없이 행복하게 살지만 배고파 쓰러져 있는 고향사람들 생각하면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옆에 동네에 사는 이모네 식구 모두 98년 봄에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그곳에서 여기 서울로 온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그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왜 슬픈 소식 분인지요...

앞으로 나라가 변해서 배고픈 사람 없게 될 날이 꼭 옵니다. 희망을 가지시고, 앓아눕지 마시고 억세게 살아 계십시오. 제가 고향으로 가게 될 그날이 꼭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살아만 계세요.

그때 못다한 효도를 하겠습니다. 운동화 사달라고 조르며 애태우던 철부지 아들이 지금은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요. 그리고 이 아들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의 건강을 빌며. 2006년5월8일. 저녁9시. 서울에서 아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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