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 뒤짚어 보기 : 北, 이산상봉 남북관계 카드로 활용


2006.07.21

19일 북한 조선중앙TV는 '더 이상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란 있을 수 없게 되었고, 인도주의 문제와 관련한 그 어떤 논의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앙TV는 이산가족상봉 중단조치에 대해 '남측이 북남사이에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인도적 사업으로 진행해오던 쌀과 비료제공까지 일방적으로 거부했다."고 보도해 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한 쌀 50만 톤 지원을 남측이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욱이 중앙TV는 "남측은 이번 반인도주의적이며 반민족적인 처사의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책임을 남측에 떠 넘겼습니다.

이로서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진행하기로 되어있던 이산가족상봉이 무산되었고, 21일부터 23일까지 예정이던 이산가족 화상상봉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세기 넘게 갈라졌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손꼽아 기다리던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또다시 아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북쪽 이산가족들은 중앙TV의 말을 곧이 믿고 진짜 남한이 이산가족상봉을 파탄시켰을 거라고 생각하고 증오할 것입니다.

남한은 90년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매해 북한에 쌀 수십만 톤씩 지원해왔습니다.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발사 배경에 대해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군부가 하는 일을 모른다고 답을 피했습니다. 또 회담장에서 북측단장은 '남조선인민들이 선군 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고 발언해 눈총을 받기도 했지요.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회담종료를 하지 않고 도중에 철수함에 따라 쌀 지원도, 이산가족 상봉도 타결되지 못했지요. 그리고 돌아가서는 쌀과 비료를 안 준다고 대응조치로 이산가족 상봉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과거 북한은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인도주의 원칙에서 하지 않고 남북대화를 위한 카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6월 남북정상이 만나 토론하고, 6.15공동선언문에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해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면서 비로서 숨을 트게 됐습니다.

북한은 그 동안 이산가족상봉을 카드 삼아 여러 차례 중단, 연기를 하며 남측을 심심치 않게 압박해 왔지요. 그 대표적인 실례가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이후 1년2개월이나 중단시켰고, 10차에서 11차로 넘어가면서 13개월씩이나 중단시킨 바 있지요.

상봉행사는 북측의 요청으로 일정까지 잡고도 연기된 경우가 있는데, 2000년 12월 3차 행사를 열기로 했으나, 북측이 내부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예정보다 2개월 늦은 2001년 2월말에 열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경제지원을 놓고 이산가족상봉을 지연 또는 중단시키는데요, 조선적십자병원 현대화 및 심장센터 건립, 식량 10만t 지원을 요구하면서 10차 상봉 합의 때도 버티기를 했고, 결국 한 달 늦은 2004년 7월에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70~80대의 사람들로 이 세상을 살날도 그리 길지 못합니다. 허탈한 나머지 실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이산가족은 1만6천명 가량 되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1천만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만나기까지는 500년이 걸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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