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뉴스 ⑨] 탈북민 3만명 시대

워싱턴-양희정 yangh@rfa.org
2016.12.29
defectors_thirty_thousands_b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탈북민 3만명 시대 진입, 특별기회 설문조사결과 언론 설명회에서 김흥광 NK지식연대 대표가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INTRO: 2016 RFA 10대 뉴스]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2016년 한 해의 북한 관련 뉴스를 총 정리하는 ‘RFA자유아시아방송10대 뉴스’입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시간으로 지난 11월을 기준으로 3만명을 넘어선 한국 정착 탈북민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양희정 기자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양 기자, 안녕하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오늘의 주제부터 알아 볼까요?

앵커: 한국의 통일부가 지난 11월 11일을 기준으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수가 총 3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지요? 1960년 대 초 귀순자 즉 탈북민이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이후 3만 명을 넘어서는데 반 세기 이상이 걸렸네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1962년 4월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 제정에 따라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을 ‘귀순용사’로 불렀는데요. 귀순자에게 국가유공자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여 원호대상자로 우대하며, 최초로 체계적인 지원 실시한 것입니다.

반면, 탈북민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기근 이후입니다. 한국은1997년 1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귀순’의 개념을 ‘북한이탈’로 대체했고 탈북민의 자립과 자활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과 정착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6년 2월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1만 명을 넘어섰고, 5년이 채 못 된 2010년 11월에 2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그 후 만 6년 만인 지난 11월 3만 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앵커: 북한 인구 2천 300만 명 중 3만 명, 말하자면 인구 1천 명 중 한 명 이상이 한국에 정착한 것이네요?  그런데 올해는 특히 중국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등 해외 외화벌이 일꾼의 집단 탈북과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비롯한 해외 근무 엘리트 층의 탈북이 주목을 끌었는데요?

기자: 북한은 체제 붕괴를 두려워해 이처럼 언론이 주목하는 해외 거주 탈북자들에 대한 신상 헐뜯기 혹은 한국 정보당국에 의한 납치나 유인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는데요. 북한 김일성 대학 출신 탈북자 김현아 한국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3만 명이라는 숫자는 그 같은 북한의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김현아: 북한지도부는 남한이 사람 못살 지옥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부패하고 경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하며 썩어빠진 부르주아 사상문화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키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탈북행렬이 20여 년 지속된다는 것은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기자: 지금 들으신 것처럼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포정치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여파로 해외 북한 외교관 등 엘리트 층이 동요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특히 지난 8월 한국에 망명한 태 공사는 지난 27일 한국에 입국한 후 처음 가진 공식기자회견에서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를 자신 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죠?

기자: 김일성 대학 출신 주기자가 처음 한국 정착과정에 무더운 여름철에 컨테이너에 가서 땀을 흘리며 상자를 나르기도 했지만 이제 한국사회에서 이름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데 고무됐다는 태 공사의 설명이 있었는데요. 태 공사가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인데요.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에 주 기자가 기고하는 ‘탈북기자 주성하의 서울살이’를 게재하기도 하는 블로그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태 공사는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노력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주 기자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으면서 자신들도 노력하면 한국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는데요.

앵커: 태 공사의 망명에 대해 횡령을 저지르고 처벌을 피해 도주했다는 보도도 있었지요?

기자: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태 공사는 지난 19일 한국 국회 정보위원회 이철우 위원장 등과 비공개 면담에서도 김정은 폭압 공포통치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왜 진작에 용기를 내서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까지 든다며 귀순 동기가 정권에 대한 실망인 것으로 밝혔습니다. 북한 엘리트층은 충성 시늉만 내고, 주민들도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을 쓰고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PROMO CLIP] 여러분께서는 미국 워싱턴에서 전해드리는 자유아시아방송의 연말 특집방송, 2016 RFA 10대 뉴스를 듣고 계십니다.

앵커: 고난의 행군 이후 200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함경북도, 양강도, 함경남도 등 국경지역에서 ‘배고픔과 경제적 이유’ 때문에 탈북했다는 응답이 많았던 것과는 달리 한국이라는 정치 체제를 선택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는 말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생계형 탈북’에서 최근에는 북한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과 자녀 교육 등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주형 탈북’으로 탈북 동기가 변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2005년 이전까지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초기 정착지원 안내는 신변보호 담당관이 맡았지만 그 수가 급증하면서 하나센터, 대한적십자사와 같은 민간단체에서 정착 도우미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정착지원금은 1인 세대 기준 미화 약 5천 800달러(한화 700만원)의 기본금과 직업훈련, 자격증 취득, 취업 장려금 미화 1만 2천 800달러(한화1천 540만원), 임대아파트 등 주택알선과 1인 세대 기준 미화 약 1만 달러(한화1천 300만원) 등의 각종 지원이 있습니다. 대학진학 희망자의 경우 특례 입학을 허용하고, 중·고등학교와 국립대학의 등록금 면제와 사립대 등록금의 절반에 대한 학비보조금도 있습니다.

통일부 산하 탈북민 지원단체인 남북하나재단의 손광주 이사장은 탈북민 3만 시대를 맞아 탈북민을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손광주: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오는 탈북민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입니다. 두번째로 탈북민들은 외지인이나 다문화 가정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고, 우리가 받아들여서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것이 ‘탈북자 3만 시대’가 갖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현재는 전국 23개 지역적응센터 즉 하나센터에서 초기 정착지원 안내를 하고 있고요. 민간단체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정착도우미는 하나원 수료자를 거주지까지 안내하고 수시 방문하거나 생활 안내를 통해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있습니다.

앵커: 탈북민의 고용률과 평균소득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지만 남한 출신과 아직 차이가 있고 이직률도 높다는 분석이 나왔지요?

기자: 최근 평양 엘리트 계층의 탈북이 증가했다고는 해도 남북하나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탈북민의 경제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가진 탈북자는 불과 10명 중 한 명입니다. 통일부의 ‘탈북자 재북 직업별 현황’에 따르면 북한에서 무직이거나 부양을 받았던 탈북민의 비율은 절반가량, 노동자 같은 단순 직무 종사자는 네 명 중 한 명 꼴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을 찾기 쉽지 않고 임금도 낮은 이유입니다.

앵커: 더구나 탈북민의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가 여성이고, 탈북민의 10명 중 6명의 나이가 20대에서 30대라죠?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 직업을 갖기가 더더욱 힘든 상황이겠네요?

기자: 이직률도 높습니다. 탈북민이10명 중 6명이 취직 후 6개월 이내에 퇴직합니다. 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전문성을 키워야 임금도 높아지는데 남북한 문화 차이, 직장에서의 소통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탈북민 중 일부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대로 사기 등 각종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통일연구원장을 지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에 사업을 하는 탈북민은 이미 1천 200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그럼에도 대다수 탈북민들은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많은 성공 신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진의 김책제철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2014년에 한국에 들어온 J씨는 억척스럽게 재봉기술을 배워 지금은 다섯 개의 옷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고, 2002년 열세살의 나이에 한국에 온 P씨는 한국기업이 후원해준 트럭을 밑천삼아 푸드트럭을 운행하는 청년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이런 식으로 스스로 사업을 시작하여 사장님으로 변신한 탈북민은 이미 1,2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자: 김 교수는 북한에서 농사를 짓다가 2002년에 탈북해 현재는 서울의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맹렬 여성이 되었고, 북한의 강원도에서 살다가 2013년에 한국에 들어온 또 다른 여성은 현재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 관광객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관광가이드가 되었고, 2008년에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또 다른 탈북민은 용접기술을 배워 지금 조선소에서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이외에도 미용사, 요리사, 골프장 캐디 등 탈북자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네, 한국정부가 제공한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한의사, 의사, 방송인, 연예인 등으로 변신하여 고소득을 올리는 탈북민도 늘었고 이미 많은 박사들과 전문가도 탄생했다는 김 교수의 설명인데요. 전문가들은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로 탈북민의 강한 자립・자활의지와 한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으로 분석합니다.

앵커: 통일의 초석이 될 탈북민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 통일부가 최근 새로 개선된 지원 정책을 내 놓았다죠?

기자: ‘사회통합형 탈북민 정책’입니다. 탈북민의 자신감을 높이고, 한국 사회의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한국 정부의 지원 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해 탈북민 정착과 사회 통합을 돕는다는 취지입니다.

앵커: 사회통합정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목용재 기자의 보도 내용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목용재 리포트: 상당수 탈북자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정책은 정착금과 주거지원금 증액, 직장과 주거 연계 강화 방안입니다. 그 동안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던 제3국 출생 탈북자 자녀에 대한 지원 강화도 이번 개선안에 포함됐습니다.

기자: 정착금과 주거지원금이 한국의 월 최저임금 상승률과 연동되는 등 정착지원금이 현실화되는 점도 탈북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부분입니다.

앵커: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사회통합위원회를 신설하고 전국 23개 하나센터의 허브 기능을 강화하는 등 탈북민 정책 협업 체계를 개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기자: 통일부는 또 탈북민이 자신감을 갖고 한국에서 새로운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한국민 모두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의 2016년 10대 뉴스 9번째 시간으로 ‘탈북민 3만명 시대’편을 마칩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해외 노동자 인권유린’편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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