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분단 60년의 차이 보여주고 싶어요”-탈북화가 선무씨 첫 개인전

북한의 그림 하면, 남한 사람들 중에는 동양화 수묵화만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울-정아름 xallsl@rfa.org
200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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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편견을 뒤집고, 현대적인 색감과 역설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해 북한 체제를 비판하며. 남한 사람들에게 강렬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화가가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 화가 1호 선무씨인데요.

오늘 서울통신은 선무씨의 첫 번째 개인전의 찾아가 봤습니다.

“우리는 행복 합니다.” 탈북자 출신 1호 화가 선무씨의 첫 개인전이 서울 충정로 에 위치한 “충정각”에서 열렸습니다.
탈북자 출신 화가 1호인 선무씨의 작품 '울려라 행복의 노래'
탈북자 출신 화가 1호인 선무씨의 작품 '울려라 행복의 노래' PHOTO/충정각 화랑


류미영: 정말로 좋을까? 행복한 세상에 우리는 삽니다. 그게 상당히 감동적이었어요. 좋다는 느낌마저도 사회에 의해서 감정이 묶여야 하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좋은 거구나 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이잖아요. 그게 정말 무섭기도 하고.... 긴 캔버스에 보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서있어요, 그것도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거(북한의 모습) 잖아요. 우리가 행복하게 있구나. 우리가 더 행복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선무씨의 전시회에 관람 온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2학년 류미영 양의 말입니다.

선무 씨의 그림을 본 남한의 학생들은 이제껏 생각해 왔던 북한 아이들 보다 훨씬 갇힌 사회에 있는 북한 아이들을 더 강렬히 느낍니다.

바로 이 점이 탈북자 출신 작가 1호 선무씨가 그림에서 표현 하고자 하는 바인데요.

행복해 보이지만 그리고도 무언가에 세뇌당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북한의 아이들, 북한의 사람들 입니다. 바로 이게 “북한의 실제라고” 탈북자 화가 선무씨는 “울려라 행복의 노래” 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면서 설명합니다.

선무: 나의 모습이겠죠. 핑크 빛 세상에서 행복하게 노래 불렀던 나의 모습을 담은 거죠. 굳이 노란색은 리본을 달은 것은 노란색이 주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잖아요. 경고. 축구장에서도 보듯.. 경고의 의미. 그때는 되게 행복했던 모습이었는데 지금 여기 나와서 보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경고다. 이게 불안한 사회다. 조그만 어린 애들 조차도 그런 식의 주입이 이건 아니다. 그런 얘길 하고 싶은 거죠.

선무씨가 설명한 것처럼 그림 속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소녀 뒤로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요, 이미 소녀는 진정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말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시회를 찾은 남한 관객들도 텔레비전과 신문 등 언론 매체들에서 보는 아리랑 공연과 같은 곳에 나오는 경직되고 통제된 듯 한 어린이들을 떠올리며 선무 씨의 그림에 공감합니다.

기존에 텔레비전에 공연같은 데서 아이들이 춤을 추는 모습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 많이 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저렇게 훈련 받은 모습으로 있을 수 있을까. 신기하다는 생각보단 무섭다는 생각 많이 했었다.

북한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이란 것 없었는데. 그래도 사람 사는 데겠다 싶었는데. 어린이 들이 다 인위적이고. 작가 님 생각이 북한을 많이 비판하고 있는 거 같아서. 북한 많이 하고 있는 거 같아서 평소 갖고 있는 이미지 보다 더 안 좋게 그려지는 것 같다.

선무 씨의 그림은 자신이 몇 년 전 탈북과정과 자신의 북한에서의 경험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선무 씨 자신이 탈북한 후, 라오스에서 불안한 삶을 살며, 라오스 감옥에 있었던 시절을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선무 씨가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넌 게 1998년. 약간은 검은 듯 한 강 위로 공포에 질린 듯 한 커다란 눈을 가진 얼굴이 죽은 물고기 때들과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선무: 이건 내가 두만강 건널 때 상황을 묘사한 건데. 그때의 공포스러움. 한발 앞에 나가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상황. 내 앞의 물고기의 죽음이 나의 죽음 같고. 북한의 공포를.. 뒤에서 무언가가 움켜 쥘 거 같은.

중국에서 3년을, 태국과 라오스에서 6개월여를 전전 하다가 2002년 마침내 서울에 왔습니다. 라오스의 기억을 그린 그림이 바로 “소원”이라는 그림인데요.

선무: 나의 소원 우리의 소원, 김철준 대한민국 죽어도 가고 싶다... 이거를 감옥에서 감옥에 있던 애가 못으로 벽에 쓴 거 에요. 저보다 먼저 잡혔죠 얘는. 그 아이가 쓴 말을 보고 마음이 감동이 왔어요. 말도 모르는 타향에서 살아야 하는 나의 마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체제.

“탈북 작가” 가 남한의 사회에서 북한 체제를 여실히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신변에 문제가 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선무 : 나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신변에 위험이 왔다면 나는 그걸 즐기겠어요. 어차피 한번 가는 것은 사실이고. 나는 그걸 즐기겠어요. 이런 식으로 간다면 더 영광이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선무 씨와 함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보경 씨도 선 무씨의 자유를 위한 그리고 북한 체제에 대한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보경: 오빠 (선무씨)가 신변의 안전에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들었거든요. 우리는 자유가 당연한 세대지만, 탈북자가 이렇게 김정일을 당연히 내놓는 다는 것에 대해서..저희는 자유가 너무나 당연한 세대니까... 노무현을 그리고 이명박을 그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지만..선무 오빠로서는...

이렇게 선 무씨의 그림은 고스란히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뒤에 그리고 이렇게 남과 북을 잇고 싶다는 사명감을 더했기에 남한 관객들에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탈북자라고 하면 북한이 싫어서 온 걸 텐데, 실상을 그대로 드러나기 보다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독재체제를 위한 찬양이고 선전인데, 오히려 그런 것을 선전 미술처럼 그림으로써 그런 메시지를 강하게 주는 것 같고, 특히 탈북 작가라는 점이 있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줄곧 자신의 아픈 기억과 북한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그림에 담아온 선무씨. 군사분계선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름도 '선무'라 지었습니다.

선무씨는 그림을 통해 남북 사이에 놓인 6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를, 그리고 아팠던 북한에서의 추억을, 그리고 결국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힘주어 말합니다.

60년이 만들어낸 차이를 이런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그런 차이를 안 상황에서 서로 줄이든 말든 해야지. 서로 차이를 모르는 상황에서 뭐를 줄인다는 건지. 그런 일을 하고 싶고요. 저쪽에선 그런 것도 있구나 하는 거.

사람에겐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북한에서의 생활이 남한에 와선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절망했다는 선 무씨.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선무 씨. "국적을 가지고 떳떳하게 살고 있다는” 선무씨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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