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Q/A]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거행된 한국의 이날 모습을 박성우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서울-박성우 xallsl@rfa.org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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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박 기자, 안녕하세요?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박 기자, 먼저 영결식장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박성우: 네, 한마디로 엄숙하고 애잔했습니다. 영결식은 오전 11시부터 시작됐고, 장소는 서울 경복궁 앞뜰이었습니다. (현장 사운드) 지금 들으시는 군악대의 애잔한 연주가 오전 10시경부터 계속됐고, 행사장에 마련된 2천 5백여 좌석은 뒷부분 일부를 빼고는 거의 다 찼습니다. 여기에는 지난 노무현 정부 관료들과 각계 대표, 그리고 초청장을 받은 시민들이 참석했고요. 거의 대부분 검은색 옷차림이었습니다. 경복궁 흥례문 바로 앞에 차려진 영결식 헌화대는 국화꽃으로 장식돼 있었고, 그 중앙에 미소 띤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진행자: 영결식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조사를 두 명이 읽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면서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공동 장의 위원장이 현 정부의 한승수 총리와 지난 정부의 한명숙 전 총리, 이렇게 두 명입니다. 이 두 사람이 조사를 읽었는데요. 먼저 한승수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헌신했다”고 말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이룬 업적을 열거했습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한승수: 재임기간 동안 대통령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국민과 함께 하는 서민 대통령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더 이상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끊임없이 피력하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께서 숱한 역경과 우여곡절 속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이룩한 업적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박성우:
들으신 대로 조사를 읽는 어조가 담담하지요? 한승수 총리는 또 노 전 대통령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들어보시죠.

한승수: 뒤에 남은 우리는 대통령님의 뜻을 되새기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고인께서 그토록 열망하시던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고, 세계 속의 품격 있는 선진 일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진행자: 그럼 한명숙 전 총리는 어땠습니까?

박성우:
네, 첫마디부터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서 조사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조문객들 상당수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를 들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한명숙: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홀로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박성우: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에도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대목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다”고 말했고요, “동반 성장, 지방 분권, 균형 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 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조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시리도록 하는 표현이 많았고, 이걸 한국 언론도 주목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현 정부의 한승수 총리는 담담하게 조사를 읽은 반면에, 한명숙 전 총리는 생방송으로 영결식을 지켜보는 전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한명숙: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지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홀로 가시는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진행자:
한명숙 전 총리가 ‘바보 노무현’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건 어떤 의미입니까?

박성우: 네, 노 전 대통령의 별명이 바로 ‘바보’입니다. 국회의원 시절에 붙은 별명이라고 하는데요. 노 전 대통령의 정치 목표 중 하나가 지역 갈등의 해소였습니다. 그래서 보수 정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가 연거푸 탈락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바보 같은 일을 했다’는 의미에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어느 방송 회견에서 바로 이 ‘바보’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회견 모습이 이날 영결식장에서도 짧게 방송됐는데요. 잠시 들어보시죠.

노무현:
(별명을) 바보라고 붙여줬지요? 그동안 사람들이 나한테 붙여준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이익에 비춰 보면 손해로 답이 나오는 것도 멀리 비춰보면 이익이 되는 게 많이 있습니다. 손해냐 이익이냐 하는데, 너무 눈앞의 이해관계로 판단하니까, 자꾸만 이기적인 행동만 나오고, 영악한 행동만 나오는 거죠. 어쨌든 그냥, ‘바보’ 하는 게 그냥 좋아요.

진행자: ‘바보’라는 말의 뜻은 우직하게 자기 소신을 지키면 나중엔 이득이 된다는 거군요. 박 기자, 이명박 대통령도 영결식에 참석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영결식에 참여해서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영결식이 정확히 오전 11시에 시작됐는데, 이 대통령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약 4분 전에 식장에 도착해서 귀빈석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표정은 무거웠습니다. 다른 참석자들과도 눈인사 정도만 할뿐이었고 말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할 때 잠시 소란이 있었다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이 헌화를 한 다음에 두 번째로 이 대통령이 헌화를 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현장 사운드) 지금 듣고 계신 게 당시 상황인데요. 앞줄에 앉아 있던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사과 하라”, “무슨 자격으로 헌화를 하나”라고 소리치며 다가갔고, 경호원이 저지하는 사이 뒷자리에 앉은 조문객 상당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 정부를 비난하거나 야유를 보냈습니다. 같은 시각,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이 대통령의 헌화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 상당수도 “노무현을 살려내라”면서 한 동안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내 영결식 행사장은 진정을 되찾았고, 영결식을 무사히 끝낸 다음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진행자:
엄숙하게 진행돼야 할 영결식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우리 청취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박성우: 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계층은 뚜렷하게 구분돼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분법적으로 말씀드리면, 노 전 대통령은 좀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고, 반면에 이 대통령은 좀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지지합니다.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놓고 진보 진영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기업인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강압적인’ 수사, 그리고 ‘편파적인’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깨끗하다’는 게 정치적인 자산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지키고자 했다는 거지요. 바로 이런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이날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걸로 보인다는 게 정치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을 비롯해서 보수층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있겠지만, 현재로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형국입니다. 다만, “이렇게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거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원론적 발언을 내 놓고 있습니다. 왜냐면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유권자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기 있기 때문에, 청와대나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적 성향의 논객들 대부분은 일단 좀 시간을 두고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네, 그렇군요. 영결식장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참석했지요?

박성우: 네. 거동이 불편한 김 전 대통령은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해 분향을 마쳤고, 이어서 유족에게 다가가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으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옆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부축하던 한명숙 전 총리도 눈물을 흘렸고, 노 전 대통령의 아들과 딸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사를 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지난 23일 “평생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동지를 잃었다”면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애통해했습니다. 이날 영결식에는 전직 대통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외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습니다.

진행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석한 이유는 뭐라고 소개되고 있나요?

박성우: 네, 노 전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 시킨 사람이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는 결별하게 됩니다.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지난 1990년에 ‘3당 합당’으로 당시 정치인 김영삼 씨가 대통령 집권을 위한 기반을 잡게 됐는데, 노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야합’이라고 비판하면서 두 사람은 결별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바라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진행자:
오늘 서울광장은 완전히 ‘노란색 물결’이던데요. 몇 명이나 모인 건가요?

박성우: 네, 말씀하신 대로 서울광장은 노란색 물결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의 목도리와 노란색 종이 모자를 쓴 시민들이 노란색 풍선을 흔들며 광장과 주변 큰 길을 가득 메웠습니다. 영결식장이 검은 정장을 입은 문상객들로 붐볐다면,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은 노란색 물결이었습니다. 노제를 보려고 몇 명이나 모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없습니다. 계산하는 사람과 계산 방법에 따라서 숫자가 다르게 나왔습니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이 도착했을 무렵이 낮 1시 20분경인데요. 경찰은 이 때 광장과 그 주변에 모인 인파를 약 18만 명으로 추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 관련 시민단체들은 최소한 50만 명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박 기자도 서울광장에 직접 가 보셨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지켜본 다음에 서울광장까지 걸어가 봤는데요. ‘인산인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표현인 듯합니다. 서울광장은 물론이고 세종로 네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1km 정도 구간의 인도와 도로에는 실제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 길을 비켜 주며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거리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와 전광판을 통해서 영결식 진행상황을 지켜봤고요, 양희은의 ‘상록수’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서울광장으로 운구차가 지나 갈 때 사람들은 아예 통곡을 하거나, 눈시울을 붉히면서 고인의 넋을 기렸습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총감독을 맡아 진행했고,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해서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사랑으로’를 합창하면서 마무리했습니다. 이어서 시민들은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輓章)을 들고 운구 행렬을 따라가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습니다.

진행자: 박 기자, 양희은의 ‘상록수’라는 노래를 잠시 언급하셨는데, 이 노래는 노 전 대통령에겐 좀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2003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취임식을 할 때, 바로 이 노래가 축가로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같은 노래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래가 돼 버린 거지요.

진행자: 그렇군요. 박 기자, 노제가 열린 곳이 시청앞 서울광장인데, 서울 한 복판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건 거의 1년 만이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지난해에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 특히 작년 6월 10일에 이날과 엇비슷한 규모의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촛불집회의 인파가 6.10 항쟁 21주년을 맞아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거지요. 당시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는 계산하는 주최와 방법에 따라서 달랐습니다. 이밖에도 서울광장에는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많게는 80만 명가량이 모여서 도심 응원을 펼친 바 있습니다.

진행자: 노 전 대통령이 화장을 희망했는데 화장장 모습도 애잔했겠네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화장식장에서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관이 화장로에 들어갈 때 추모객들은 “안돼요, 가지 마세요”라고 소리 지르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화장 절차가 시작되자, 부인 권양숙 여사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추모객들은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에게 “힘내세요”라면서 위로했습니다. 화장식은 당초 예정보다 3시간가량 늦은 오후 6시7분께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늦어진 건 추모 인파가 길을 막아서 운구 행렬이 제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미공개 사진이 공개됐지요?

박성우:
그렇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사진 48장을 공개했습니다. 대부분 노 전 대통령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는데요. 이 중에서도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일반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빵을 주는 모습이나, 어린 아이가 쥐고 있는 사탕을 노 전 대통령이 빨아 먹는 사진,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문서를 보는 장면 등을 한국 신문들이 큼지막하게 싣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네, 지금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소식을 박성우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박 기자, 수고했습니다.

박성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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