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무용음악대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 (2)

200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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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무용음악대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의 이야기를 2부로 나눠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으로 김철웅 씨가 연주, 출강으로 바쁜 와중에도 북한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서울에서 이진희 기자가 김철웅 씨를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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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무용음악대 출신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 - RFA PHOTO/이진희

지금 한세대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강의는 언제부터, 또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나요?

3학기 째. 작년 9월부터, 스카웃 됐다고 하는 게 맞을 듯 싶네요. (김성혜) 한세대 총장님이 피아노를 전공하셨어요. 한세 대학교가 순복음 교회 재단인데, 거기 조형기 목사님의 사모님이 한세대 총장님 이십니다. 김성혜 사모님이 행사에 왔다가 제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스카웃 됐습니다.

김철웅씨가 북에서 왔다는 걸 학생들은 알고 있다요?

다 알죠. 저는 상관없는데 학생들은 제가 북에서 온 것에 대해 묻는 것을 실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쪽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감추는 것 같고, 오히려 내가 더 말해주는 것. 저는 평양에선 이렇게 한다, 안 한다. 이런 것은 평양과는 틀린 것이다.

북한의 음악교육과 남한의 음악교육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클래식이라는 큰 틀은 같습니다. 그러나 표현방법에 있어서 북쪽은 동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추운 지방 사람이 좀 강합니다. 술도 도수가 높고. 춤도 폴카같이 발랄하고, 춤추는 사람 표정도 강합니다. 그 쪽에서는 서민음악이 발전을 했습니다.

서구 쪽 음악은 궁중음악이라 고급스럽고, 부드럽고, 어찌 보면 여성스런 아름다움. 동유럽은 강한 남자, 가령 차이코프스키 비창이라는 음악을 동유럽과 서유럽에서 연주한다고 할 때, 서유럽에서는 아름다운 초원을 그리지만, 동유럽 쪽에서는 폭풍이 치고 난 뒤에 햇빛을 그립니다.

구름사이에 들어오는 조그만 햇빛. 생각적 차이, 표현적 차이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저와 똑 같은 음악을 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창조성을 발휘했으면 합니다. 학생들이 음악을 하다가도,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면, 선생님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남한이 좋은 점은 바로 이런 점. 학생들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의문을 던지면, 아주 틀리지 않는 한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주는 쪽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연주도 제법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바쁜 와중에 대학원 준비를 하신다구요?

피아노를 물론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피아노보다 이왕 남한에 온 바에야 민족과 조국 앞에서 떳떳한 일을 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탈북자들은 북에서나 남에서나 다 이방인입니다. 남한에 와 있지만, 훗날 저희 아리랑 민족을 빛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곡을 하나 쳐도 아리랑을 치게 되고, 민족이라는 것을 상당히 중요시 하게 됩니다.

2년간의 중국생활을 하면서, 나라가 중요하고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잃지 말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조국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학을 하고 싶습니다. 또 남쪽에서 북한 예술을 어떻게 생각을 하는 지도 알고 싶습니다.

탈북하신 지 이제 3년 정도 밖에 안 됐는데, 활발한 연주활동은 물론 대학 강의까지 할 정도로 성공했다면 성공하신 셈인데, 그 비결은 뭔가요?

저는 사람의 눈높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 맞는 눈높이를 가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싶을 때가 있고, 또 너무 과대하게 인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조절하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죠. 눈높이라는 것이 과거에 제가 무엇을 했던 간에 지금 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여기 와서 피아노 학원 강사로 일해 본 적도 있고, 술집 같은 곳에서 피아노 연주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가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극복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죠. 두 번 째로 는 적응인데, 저는 한국에 와서 우선 언어에 적응했습니다. 얼굴만 봐서는 어디 출신인 지 잘 모르지만, 언어 쓰는 것을 보면 어디 출신인 줄 알죠. 한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이야 당장 변하지 않지만 언어는 조금만 노력하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사람들과 최대한 똑같이 보이는 것이 적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적응의 단계와 저에 맞는 눈높이가, 그런데 아직 성공이라고 하긴 좀 그렇구요, 적어도 오늘날의 저를 있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직 미혼이신 것으로 아는데요? 결혼은 언제쯤 하실 계획인가요?

결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당연히 있습니다. 아직 특별히 생각하는 신부감이라면, 저랑 생각이 같은 사람. 서로 떨어져 있어도 한 생각을 하는 사람. 제 일을 이해해 주는 사람. 북한은 남성우월주의가 많아서 그런지, 저를 위해주는 사람. 조강지처? 오기를 바라는 데 잘 안되네요.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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