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상점에 할인 광고 등장”
2006.01.26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북한 전문가 뤼디거 프랑크(Rudiger Frank) 교수는 작년 10월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프랑크 교수는 26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방문중에 할인 판매 광고를 내건 상점들을 발견하고 북한에도 시장경제 요소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취재에 김연호 기잡니다.
어떤 일로 평양을 방문하신 겁니까?
Frank: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공동으로 북한에서 경제 토론회를 활발하게 주관해오고 있는데요,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행사가 열렸습니다. 저는 두 행사 모두 초대를 받아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작년 10월에 갔을 때는 마침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행사들이 열렸는데요, 그 와중에서도 시장경제를 가리키는 흥미로운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방문중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우선 민간이 운영하는 식당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처음 발행됐다는 현금카드의 광고도 봤습니다. 아직까지는 몇몇 식당과 가게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 현금이 아닌 이른바 ‘플라스틱 돈’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할인판매를 알리는 광고도 봤습니다. 시계상점이었는데요,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맞아 10월10일부터 31일까지 많은 상품들의 가격을 10% 낮춰서 판다는 광고였습니다.
상품을 할인해서 판다는 광고가 평양에 나타났다. 이건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사회주의 경제에서 할인판매를 한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판매행위 자체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요.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국가가 계획한 대로 생산과 분배가 이뤄지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더 팔고자 하는 동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할인 판매를 해서 어떻게든 더 팔겠다는 건 이 상점이 이윤을 남겨 챙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경제활동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그 상점은 민간이 운영하는 상점이었습니까?
국영상점인 것 같았습니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시계 상점이었는데요, 같은 장소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했죠. 외국인 전용 상점인지는 확실치 않은데요, 제가 갔을 때는 손님들 대부분이 동양 사람들이었고 모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이었을 가능성도 있죠.
어쨌든 할인광고가 한국말로 돼 있는 걸로 봐서는 최소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시계 상점 말고도 할인광고를 붙인 상점을 하나 더 봤습니다. 세 시간 정도 평양거리를 걸으면서 발견한 게 그 정도니까 아마도 그런 상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보통 남한에서는 주위에 비슷한 가게들끼리 경쟁이 심할 때 할인판매를 많이 하는데요, 북한에서도 그런 경쟁이 있다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평양에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든 쓸 돈을 갖고 있다는 거죠. 당연히 이 돈을 챙기기 위해 상점들끼리 경쟁이 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경제의 화폐화, 그러니까 생산물의 가치를 화폐단위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할인 판매를 할 정도면 그만큼 상점에 물건이 많다는 얘기도 되지 않겠습니까?
더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는 건 당연히 생산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또 가게에 물건을 다시 채울 수 있는 방법이 확실히 있다는 걸 말합니다. 보통 사회주의 경제에서 창고에 물건을 다시 채우는 일은 상점 관리인에게 아주 힘겨운 일이기 때문에 할인을 해가며 판매하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죠.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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