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지성호, 오슬로자유포럼 증언

워싱턴-양희정 yangh@rfa.org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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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노르웨이 오슬로자유포럼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이라며 탈출할 때 사용한 목발을 치켜들고 북한인권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지성호 씨.
제7회 노르웨이 오슬로자유포럼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이라며 탈출할 때 사용한 목발을 치켜들고 북한인권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는 지성호 씨. 사진-오슬로자유포럼 웹사이트 캡처

앵커: 탈북자 지성호 씨가 노르웨이의 한 인권 행사장에서1990년 대 중반 대기근 당시 장애인이 되어 겪은 참담한 인권 유린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양희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지성호 효과음: 저는 북한의 자유를 위해서…

장애인 탈북자 지성호 씨가 26일 북유럽국가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오슬로자유포럼(Oslo Freedom Forum)’ 제7회 행사인 ‘진실 속에 살다(Living in Truth)’에서 청중을 향해 북한 주민의 자유를 위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지성호 효과음: 여러분 동참해 주세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의 알렉스 글래드스타인(Alex Gladstein) 전략담당 부사장은 300여 명의 청중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후 탈북자를 돕는 단체 ‘나우(NAUH)’의 대표로 활동중인 지 씨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함경북도 회령 탄광마을 출신의 지 씨는 한밤 중에 달리는 기차에 올랐다 떨어져 왼쪽 다리와 손이 잘렸다고 통역을 통해 밝혔습니다.

지성호 효과음: 악취가 났고, 뼛조각이 살 밖으로 …사고가 나고 240일이 지나서야 고통은 수그러들었습니다.

1990년 대 중반 식량배급이 끊기고 아사 직전에 다다르자 석탄을 훔쳐 연명하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석탄을 나르는 기차에 올랐다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선로로 떨어졌다고 지 씨는 울먹였습니다.

지성호 효과음: 저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때는 자살하려고도 생각했습니다.

자살 충동을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지 씨는 마취조차 없이 수술대에 오른 끔찍한 경험과 자신과 가족이 처한 굶주림, 장애인으로 중국에 식량을 구하러 갔던 사실이 알려져 북한 당국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뒤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발에 의지해 1만 킬로미터의 험난한 탈출을 결심했다고 눈시울을 붉히며 전했습니다.

인권재단은 노르웨이 외무부, 오슬로 시의 지원과 국제앰네스티 노르웨이 지부, 노르웨이 인권단체 시비타(Civita) 등과의 협력으로 2009년 처음으로 오슬로자유포럼을 개최했습니다.

탈북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첫 번째로 오슬로자유포럼에서 증언한 데 이어 요덕수용소 출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등이 참석했고, 지난해에는 특별히 두 명의 탈북 대학생 박연미 씨와 이현서 씨가 함께 강연자로 초대됐습니다.

오슬로자유포럼에서는 올해까지 7년 째 인권운동가, 과학기술자, 음악가, 언론인, 예술가 등 200여 명이 20여 개 언어로 세계의 인권과 자유 증진을 위해 강연했습니다. 오는 27일까지 계속될 올해 행사에는 북한과 말레이시아, 태국, 터키, 우크라이나 등 20여 개 국가 대표가 발표자로 참석했습니다.

오슬로자유포럼은 평범한 개인이라도 독재정권의 몰락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츨라브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진실 속에 살다(Living in Truth)’를 올해 주제로 택했다고 밝혔습니다. 하벨 전 대통령은 공산 치하의 체코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의 민주화운동을 선도하고 북한과 미얀마의 인권 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대표적인 ‘유럽의 양심’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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