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북한난민으로 미국 입국한 찬미 양 인터뷰

200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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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 오늘은 최근 동남아를 거쳐 난민 판정을 받고 지난 5일 미국에 들어와 지금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 중 유일하게 큰 오빠와 함께 온 올 21살 찬미 양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미국에 들어 온지 10여일이 지났는데 지금 불안감은 없죠?

네, 자유를 얻고 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써주신 분들 만나 보았어요?

만났어요. 마이클 호로비츠도 만나고 미 대북인권특사 여러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 전했는지요?

정말 어둠속에서 해매며 빛도 없이 살던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이곳에 와서 정착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앞으로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데 대해 많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표시를 하니까 그분들이 뭐라고 하셔요?

이렇게 자유를 얻었으니 앞으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라고 얘기하셨어요.

뉴욕에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왔는데 어때요?

뉴욕에서는 거리가 예쁜데 여기 워싱턴에 오니까 너무 좋아 막 하늘을 날 것 같아요. 너무나도 아름다워요 도시가...

뉴욕에서 귀걸이도 샀다는데 지금 하고 다녀요?

네, 그런데 한 쪽을 잃어 버렸어요, 기념으로 샀는데...

그리고 중국에서 남한으로 갈지 미국으로 갈지 선택하는데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어요?

북한에서는 한국도 괴뢰도당이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더구나 미국은 더해 미국에 간다고 하니 승냥이들한테 어떻게 가느냐,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 했어요.처음에는 결심을 못하고 여러 날 고민을 하다가 미국으로 가보자 하고 한국방송도 듣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미국이 사람들이 예절이 밝고 좋다는 것이 조금씩 느껴져 미국으로 간다고 동의 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외부정보를 들었어요?

그곳에 있을 때는 외부정세를 듣지도 못하고 텔레비전 방송도 북한것 하나만 볼 수 있고 친척이 갑자기 돌아가셔도 먼 곳에 있는 친척에게는 연락도 못하고 알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돈이 있어도 자기 나라를 마음대로 다닐 수 없어요.

찬미 씨는 언제 탈북을 했어요?

제일 처음에 2001년 9월에 탈북 했어요. 친척집에 와서 식량을 구해가지고 갔다가 북한에서 중국에 잘 지내던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참을 수가 없어 다시 탈북 했어요.

그러다 2002년에 엄마가 보고 싶어 다시 북한으로 나갔어요. 나가보니 너무도 춥고 배고프고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서 청도로 가려다가 공안에 붙잡혔어요. 그때는 제가 17살 미성년이어서 놓아 주었어요. 그리고 북송되어 북한에 한 40여일 있다 2002년12월 다시 중국으로 탈북 해 그곳에서 여러 번 한족들에게 팔렸어요. 중국의 조선족 들이 한족들한테 돈을 받고 팔았어요.

그러다 2003년10월경에 저희 3째 오빠가 중국으로 와서 그 오빠와 2004년에 2월에 오빠와 한국으로 떠나려다 잡혔어요. 그래서 오빠는 영영 나오지 못하는 정치범 수용소 감옥에 들어가 있고 저는 3년 판결을 받고 1년7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 나왔고 그곳에서 너무 고생을 해 손도 뼈가 부러지고 발톱도 구두 발에 맞아서 다 멍이 들었어요.

지금은 건강이 어때요?

처음에는 갈비에 물이 차서 늑막염이 왔었어요. 그래서 좋은 분들을 만나 치료를 해 주어서 나았어요.

중국에는 몇 년이나 있었어요?

중국에는 한 3년 있었어요. 맏(큰)오빠도 제가 중국에 있을 때 두 세 번 탈출하다 잡혀 감옥에서 탈출해 중국으로 다시 나왔어요.

그러다 중국에서 오빠를 만났군요.

제가 중국에 팔려가지고 오빠 전화번호를 어머니가 알고 있어서 어머니로부터 전화 번호를 알아서 오빠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도망쳐 오빠한테 갔어요.

인신매매로 여러 번 팔려 다니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잊지 제일 못할 일은?

자기나라 없이 남의 땅에 와서 온갖 천대를 다 받고 숨어 다니며 두려움으로 남의 밑에서 항상 노예처럼 사는 것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고 또한 북한에 있을 때 감옥에서 사람을 죽여 관절을 다 꺾어서 부삽으로 사람을 직파를 해 버려요 수평으로....

봉분도 없이 그냥 수평으로 묻는다는 것이죠?

네, 그리고 하루에 3-5명씩 영양실조로 죽어나가요

찬미 씨는 이제 미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 할 텐데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저는 미국에서 영어를 열심히 배우고 컴퓨터도 열심히 배우고 또 세 번째는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서 앞으로 나처럼 불쌍한 고아들을 기르는 학교를 하나 짓고 싶어요. 저의 소원이예요.

그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중국과 중국의 탈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중국 대통령이 제발 탈북자들을 북송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전하고 싶고요 그리고 하루빨리 중국의 탈북자들도 미국으로 와서 정착해 잘 살 수 있는 그런 행복한 길을 열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찬미 씨는 미국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 어떤 것이 제일 맛이 있었어요?

저는요. 미국 분들이 드시는 햄버거가 제일 맛이 있었어요. 맛이 있는데 그거 너무 먹으니까 살이 자꾸 쪄요. 하하하...... (밝은 웃음소리)

워싱턴-이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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