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 실체: 비운의 김평일

200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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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고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인 김평일에게도 많은 신임을 보냈지만 김정일의 김평일 제거로 김평일은 아직도 해외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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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가계도 - Graphic: RFA >> 더 크게 보기

김정일의 후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김정일의 세아들도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을 위해서 동생들을 쳐냈던 것 같은 냉혹하고도 잔인한 싸움을 벌일 처지에 놓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그의 경쟁자인 동생들을 어떻게 권력 구도에서 쳐냈는지를 전합니다.

김평일(55)은 김일성이 1953년 결혼한 후처 김성애(84)와의 사이에서 낳은 2남 1녀 가운데 장남입니다. 김평일은 김일성을 꼭 빼어 닮은 외모와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북한을 떠나온 고위 탈북자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보위부 출신 탈북자 김철혁씨입니다.

김철혁: 김평일은 김정일보다 인격도 지도자적인 자질도 대중에 대한 신뢰도도 높았고 인정도 받고 있었습니다. 성품도 좋았죠.

특히 김평일은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요직인 인민무력부 작전 부국장을 지낸 대좌 출신으로 군부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한 때 김일성은 당은 김정일에게 군은 김평일에게 맡겨야 겠다는 뜻을 생전에 측근들에게 전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정 반대로 김정일 위원장의 계모 김성애와 그의 자식들은 지금까지 비운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80년 10월 6차 노동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뒤 점차 실권을 장악해 가면서 계모와 이복동생들을 '곁가지'로 분류하고 이들을 철저히 쳐냈습니다.

보위부 출신 탈북자 김철혁씨는 김정일은 이복동생과의 후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계모 김성애의 비리를 아버지에게 고자질 하는등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를 벌어지게 만들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김철혁: 당시 김일성 측근 속에서 김평일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김정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갈리어 있었어요. 그런데 김정일이 김평일 보다 사악하고 잔인하니까 김일성에게 갖은 아첨을 다해서 본인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자 마자 김평일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싹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김평일은 88년 헝가리 북한 대사를 시작으로 불가리아, 핀란드 대사를 거쳐 98년부터 폴란드 대사를 맡으며 지난 20년 동안 해외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평일은 공관장 회의가 있을 때 외에는 평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평일은 심지어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에도 국가장의위원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습니다.

김평일의 누나 경진(56)은 김광섭 주 오스트리아 대사의 부인으로 15년째 오스트리아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막내 영일의 경우에는 2000년 현지에서 병으로 객사했습니다. 94년 6월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평양 방북 시 김일성의 부인 자격으로 나왔던 김성애는 그로부터 한달 뒤 김일성이 숨지자 장례 행사에 얼굴을 잠깐 비춘 것을 마지막으로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0년 북한을 떠난 탈북자 이순덕씨는 북한의 신세대들은 김평일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순덕: 김평일이가 권력 싸움에서 김정일에 의해서 테러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냥 평민이 됐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북한 주민들은 이복동생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요.

김평일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화려한 출신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복 형 김정일 위원장의 절대 권력에 가려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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