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마오쩌뚱 지시로 남한군 포로 6만 명 억류”

200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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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북한이 중국의 지시로 6만 명의 남한군 포로를 억류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뚱의 일생을 정리한 책에서 저자 챙정씨는 휴전협정이 체결될 당시 마오쩌뚱의 지시로 북한에 억류된 남한군 포로들이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챙정씨는 영국인 남편 존 할리데이(Jon Halliday)와 함께 “마오쩌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Mao: The Unknown Story)”를 펴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오쩌뚱의 죄상과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기록했습니다. 이 책의 분량만해도 8백쪽이 넘는데, 마오쩌뚱에 관한 폭로로 인해 중국 당국은 이 책에 대한 판금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은 마오쩌뚱과 김일성과의 관계, 그리고 중국이 한국전 당시 남한 포로들을 북한에 강제로 억류시켰다는 내용입니다. 챙정씨는 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찾아 책출간 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챙정씨는 한국 전쟁당시 중국의 마오쩌뚱과 북한의 김일성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1951년 1월말부터 유엔군의 대반격이 시작된 뒤 서둘러 휴전하자는 김일성과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마오쩌뚱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는 겁니다.

Jung Chang: During the Korean War Kim wanted to stop the war way before the war actually was stopped.

김일성은 전쟁이 시작된 후 1년동안 미군의 폭격으로 북한전체가 초토화되자 유엔군과 휴전협상을 벌이자고 중국측에 요청했습니다. 중국이 1950년 10월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북한군 지휘권까지 넘겨받았기 때문에 휴전도 중국의 뜻을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오쩌뚱은 미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김일성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1951년에 들어와 전세가 점점 불리해지자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유엔측과 1951년 7월 휴전협상에 들어갔습니다.

마오쩌뚱은 전쟁포로 송환을 핑계삼아 협상을 질질 끌었습니다. 미국은 중국군 포로들 가운데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중국에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포로들이 중국에 돌아가서 처형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중국군 포로 2만명 중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과 싸우던 국민당소속 군인들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포로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무조건 돌려보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공산당에 충성심도 없는 국민당 소속 군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오쩌뚱은 중국 군인들이 얼마나 희생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전쟁을 오래 끌면서 러시아로부터 군수산업 지원을 받아낼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Jung Chang: Mao didn't want to stop because Mao was using the war to get military industries out of Stalin.

1953년 미국이 중국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소련은 전쟁을 끝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중국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결국 마오쩌뚱은 소련의 압력에 굴복하고 휴전협상에 본격적으로 들어갔습니다. 18개월을 끌던 전쟁포로 송환문제도 미국의 주장대로 중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만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6만 명이 넘는 남한군 포로들은 북한에 계속 억류됐습니다. 마오쩌뚱이 포로들을 계속 붙잡아두라고 김일성에게 지시했던 겁니다. 김일성은 연합군의 눈을 피해 남한군 포로들을 시골구석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에는 탈출을 막겠다는 뜻도 있었습니다. 챙정씨는 남한군 포로들이 아직 살아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시골벽지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김연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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