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새해초 71번째 38선 횡단 계획"-유대지 씨 부부

새해 예순살이 되는 동갑내기 유대지 씨와 이순필 씨 부부는 38선 부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4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38선을 70번을 횡단을 하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서울-이현주 xallsl@rfa.org
2008.12.30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 반대라는 의미를 널리 알리고자 시작한 38선 부부의 여행은 남쪽에서는 갈 수 없는 38선의 끝, 북쪽 옹진반도를 갈 수 있을 때가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2009년 첫번째 <만나고 싶었습니다> 의 주인공은 71번째 38선 횡단에 나서는 유대지 씹니다.

MC: 유대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유대지 씨: 네 안녕하세요.

MC: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이 71번째 횡단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럼 70번을 갔다오셨다는 얘긴데요.

유대지 씨: 1994년 남북한이 핵문제로 전쟁 발발 직전이다 이런 말이 있었어요. 국민들이 라면 사재기도 하고 그랬죠. 굉장히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는 때였어요. 그때 저희 부부가 걸어서 휴전선 155마일을 20일 동안 걸어서 백령도까지 갔죠. 그 이후에는 38선을 횡단합니다.

MC: 그때는 걸으셨고 그 뒤엔 쭈욱 자동차로만 다니신 거예요?

유대지 씨: 걷기도 하고요.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도 이용하고 주로 차량을 이용하지만 그때 그때 상황을 봐서 꾸준하게 이렇게 14 년째 하고 있어요.

MC: 14년 동안 70번 횡단하신 거면 일년에 5번 꼴이네요?

유대지 씨: 아닙니다. 그전에 2000년부터 3년간은 3년 6개월 동안은 매달 다녔어요. 6.25 전쟁이 3년 6개월 동안 계속됐으니 그런 의미에서 기간을 지키면서 횡단을 한 겁니다. 그래서 횟수가 많죠.

MC: 그런데 왜 38선이세요?

유대지 씨: 38선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가슴에 와닿는 비극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38선 영역에서 죽었습니다. 휴전선하고 38선 개념이 좀 다릅니다. 휴전선을 속초 위에 고성 전망대에서 시작하고 강원도 양양 38선이 있어요. 국도 따라서 하광정을 출발해서 한계령 원통 이렇게 해서 국도를 따라 38선과 가장 가까운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한 12시간 걸립니다.

MC: 쉬지 않고 달릴 경우 12시간이라는 말씀이죠?

유대지 씨: 네 쉬지 않고 달려야 12시간 안에 들어가죠.

MC: 화장실이나 식사는?

유대지 씨: 알아서 해결합니다. (웃음) 식사는 집사람이 주먹밥을 만들어요.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6.25 참전에 대해 생각을 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MC: 94년도에는 북핵 위기 때문이 처음 휴전선을 걸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올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떠나십니까?

유대지 씨:제발 2009년 기축년 한해 조국의 평화와 안정을 줬으면 하는 메세지를 가지고 1월 1일날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MC: 모두 자비로 하시는 거죠?

유대지 씨: 네 (웃음 )

MC: 말이 12시간 동안 차로 이동하는 거죠.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하실려면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유대지 씨: 아버지가 얼굴도 모르는 유복자예요. 이 행사의 동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12~13시간 정도지만 아버지가 6.25 때 전쟁에 희생된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국민들과 전후 세대에 전쟁의 무서움과 가정의 소중함을 알리는 행사를 한다는 자체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 성원도 많았습니다.

MC: 항상 부인과 함께 하시나봐요?

유대지 씨: 네, 제가 처음에 이걸 하자고 그러니까 저희 집 사람 친정 오빠가 6.25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몸을 다쳤어요. 어렸을 때부터 전쟁이 무섭다 이런 생각 하고 있었는데 시집을 와서도 시아버지도 안 계시고 그러니 전쟁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처음부터 동의를 했어요. 고생을 했지만 힘 안 들고 차 안에서 이야기도 하면서 다니고 있어요.

MC: 자녀들도 계시죠?

유대지 씨: 네. 딸이 4명 있는데 어떤 때는 같이도 떠나고 이해를 많이 해줘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MC: 저도 임진각이이나 오두산이나 통일 전망대 이런 곳을 가보면 참 황량해요. 한국에서 가장 발전도 안 된 곳이 바로 이런 곳들인데요, 다니면서 보시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유대지 씨: 38선 주변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이 안 좋아요. 이 길을 달리면서 1950년 전쟁 발발해서 1953년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죽었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로서 표현 못할 느낌을 가지고 달리게 되요. 내년이면 59년이 되는데요 아직도 전쟁의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행사를 계속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요.

MC: 북쪽 땅도 보이세요?

유대지 씨: 임진각을 건너보면 북쪽이 보여요. 말로 할 수 없죠. 비둘기나 산새도 날으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못가는가 옹진반도까지 38선이거든요. 언젠가는 옹진반도까지 달리고 싶다는 그런 소망도 나름대로 가져봅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겠죠?

MC: 38선 상에서 해돋이 보실 텐데요, 올해는 어떤 소원 빌어보시겠어요?

유대지 씨: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빌고 이 행사가 밀알이 되서 조국의 평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을 해요. 아마 한계령에서 해돋이를 보게 될텐데 다시는 이런 전쟁이 있으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MC: 앞으로 김 선생이 몇 번이나 38선을 횡단을 하셔야 옹진반도까지 달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그날이 그다지 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다니시면서 38선에 그런 소망 많이 뿌려주시구요. 무사히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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