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3주기, 해상 위령제 처음 열려

200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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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북쪽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남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북한의 기습포격을 받고 침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한 해군이 교전을 벌이다 20여명의 병사가 사상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24일 음력으로 서해교전 3주기를 맞아 교전이 벌어졌던 서해 연평도 바다에서 첫 해상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남한은 월드컵 막바지 열기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수많은 총탄이 날아오는 가운데서도 20mm 발칸포를 쏘던 조천형 중사와 황도현 중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습니다. 41일 만에 인양된 배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상국 중사는, 옆구리와 등에 관통상을 입고도 침몰하는 참수리호의 방향타를 끝까지 잡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참수리 호의 책임자였던 정장 윤용하 소령 등 해군장병 6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5주년이 되는 하루 전인 24일은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 음력으로 3년 째 되는 날입니다. 대형 군함에 몸을 실은 유족과 생존병사 등 100여명은 이날 오후 2시쯤, 교전 지역 부근에 도착해 해상 위령제를 열었습니다.

교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열리게 된 해상추모제입니다. 남한 해군관계자는 남한 언론에, 교전 지역이 북방 한계선 부근 작전 지역인데다가, 남북간 해상 분위기가 진정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며 해상추모제가 그동안 열리지 못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해상 추모제 행사를 연 곳도 참수리호가 침몰됐던 지역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유사시에만 열리는 합참 통제선인 연평도 남쪽 20마일을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3년 만에 처음, 자식이 잠든 바다 부근을 찾은 부모들은 통곡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아버지들도 한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 부정장 이었던 이휘완 대위는 남한 언론에 3년 전 일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이 대위는 서해교전으로 한 쪽 다리를 잃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6·29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의 유가족은 5,600여 만원, 그 외 전사자 5명의 유족은 불과 3,100여 만원에서 3,300여 만원의 보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당시 군인연금법 규정은 교전에 의해 사망할 경우 ‘공무 사망’으로 간주해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사망보상금을 ‘사망 직전 계급으로 받았던 월 급여액의 36배’만 주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전사자들에 대한 사망보상금이 너무 적다는 여론이 군 안팎에서 일었습니다. 이에 서해교전 전.사상자들을 위해 해군, 육군, 공군 등 전 군과 일반 시민들이 나서 모은 돈 24억 원을 유가족들에게 추가로 전달했습니다. 2004년 1월, 남한 정부는 뒤 늦게, 군인연금법시행령을 개정,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최고 2억 원의 사망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서해교전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총상을 입고도 침몰하는 참수리호의 방향타를 놓지 않았던 고 한상국 중사의 아버지 한진복 씨도 남한 언론에 미국에서도 3주기 추모 행사가 열린다는데 정작 남한 국민들은 서해교전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며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 씨는 말했습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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