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고향을 찾는 사람들 - 3회

200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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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실향민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주간기획 ‘고향을 찾는 사람들’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순서로 북한에 두고 온 동생들을 그리는 조영환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조영환 할아버지는 매달 말이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황해도민회 월례모임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입니다. 40년 미국생활을 하면서 도민회 일을 챙기다보니 이제 도민회 일은 할아버지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고향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도민회 일에 열심인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헤어진 동생들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헤어진 지 벌써 50년이 넘었지만 동생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조영환: 마을 동산에서 연 날리고 말 듣지 않는다고 몇 대 때리기도 하고. 여동생은 항상 업고 다닌 기억이 나고.

할아버지가 동생 진환, 봉자 씨와 헤어진 것은 한국전쟁이 난 이듬해인 1951년 초였습니다. 남한 군이 북진을 했다 중공군에 밀린 이른바 ‘1.4 후퇴’ 때였습니다. 할아버지 가족도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행렬에 몸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8남매 대가족이 한꺼번에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절반이 먼저 떠나고 어머니와 밑으로 동생 넷은 뒤에 떠나기로 하고 남았습니다. 막내 봉자 씨와 일곱째 진환 씨도 어머니와 함께 남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잠시 헤어져 있으면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가족은 동생들과 생이별을 하는 슬픔을 맞게 됩니다.

조영환: 어머니가 여섯 살, 일곱 살짜리를 남겨 두고 다른 두 동생들을 데리고 피난민들이 탄 배에 올랐는데 인민군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배가 떠나고 말았지요.

점점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래도 배를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동생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바다에 뛰어들려던 어머니를 주변사람들이 간신히 말렸습니다. 어머니는 남으로 오자마자 동생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피난생활을 꾸리며 어렵게 구한 돈을 써가며 백방으로 찾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동생들을 잃은 어머니의 상심은 컸습니다. 동생들을 데려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어머니를 늘 괴롭혔습니다. 자책감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속병을 심하게 앓았고 결국 암까지 얻게 됩니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면서도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조영환: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동생들에게 못 전한 말을 꼭 대신 해달라고 하셨어요. 오래 오래 살아서 통일이 되면, 동생들을 찾아서 엄마가 잘못했다는 말을 전하라고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이때부터 동생들을 찾는 일에 밤낮으로 매달렸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에 헤어진 동생들을 50년이 지난 지금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에 이산가족상봉 신청도 해보고 북한과 연락이 닿는 사람들을 통해 이리저리 수소문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동생들을 만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동생들을 하루도 만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동생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씁니다.

조영환: 조익환, 조봉자 보고 싶다. 나는 두 번째 형 조영환이다. 몸 건강히 잘 있기를 바란다. 어머니, 아버지 너희들 많이 보고 싶어 했고 부모님으로서 자식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그 아픈 가슴 갖고 시시다가 떠나셨다. 언젠가는 너희들을 만나서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아픔을 풀고 싶구나. 건강해라. 잘 있어라.

이동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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