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북한인권 운동가 남재중 박사 별세


2005.06.08

미국의 대표적 북한인권운동가인 남재중 박사가 지난 6일 밤 워싱턴 근교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남 박사의 갑작스런 별세소식이 전해지자, 미국과 남한 등 국제사회에 북한의 비참한 인권실상을 알리는데 함께 활동을 해온 미국 내 인권운동가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난 6일 향년 60세로 타계한 남재중 박사는 미국 동부 워싱턴 근교에서 이비인후과병원을 운영해온 전문의로, 또 ‘이지스 재단 (Aegis Foundation)’이라는 대북인권단체의 이사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다음 달 개최될 북한인권을 위한 국제기도회를 조직하는데 몰두해오던 남 박사는 지난 6일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쓰러져 근처의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 박사와 함께 오랫동안 북한인권을 위해 뛰어온 박세광 이지스재단 사무총장은 북한인권을 위해 할 일이 아직도 태산 같은데 너무 빨리 가셔서 안타깝고 서운하다고 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박세광: 그런 분을 갑자기 저희가 잃어버리게 돼서 큰 손실이고 정말 말할 수 없는 심경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남 박사님이 뜻하셨던 일들을 계속 사람들이 추진해나가서 빠른 시일 내에 북한주민한테 자유와 행복 이런 것들을 가져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오던 남 박사가 북한인권에 헌신하게 된 것은 그가 1998년 말 남한의 서울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참석했다가 탈북동포들의 비참한 실상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게 된 후부터입니다. 이미 미주한인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남 박사는 이듬해 1월 미주 한인들을 규합해서, ‘이지스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지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의 방패로, 탈북자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이 같은 이름을 만들었다고 남 박사는 생전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박 사무총장은 남 박사가 북한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여론화하는데 단연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남 박사의 주요 북한 인권 활동은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 포스트에 최초로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 기사가 실리도록 한 일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 성사, 독일인 의사이자 북한 인권운동가인 폴러첸 씨의 미국 초청 등을 들 수 있지만, 이밖에도 보이지 않게 추진한 일들은 열거할 수조차 없이 많다고 박 사무총장은 덧붙였습니다.

박세광: 남 박사님께서 그동안 해 오신 북한인권운동의 의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실태를 미국 내 정치인들이나 정책결정자, 종교단체, 인권단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알리시고 여론을 환기시켜서 지금 미국에서 이만큼 북한인권에 대해 신경을 쓰고 사람들이 개선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계기를 제공하신 분이예요.

디펜스 포럼 재단의 수전 숄티 (Suzanne Scholte) 대표도 지난해 미국의 공식법으로 발효된 북한인권법이 미국 상하원에 상정되고 통과되기까지 함께 미국 연방의회 건물을 뛰어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 남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며 충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Suzanne Scholte: We're all really in shock, but he was very dedicated to helping promote North Korean freedom and also helping refugees in China and his contribution is really tremendous.

숄티 대표는 그러나 남 박사의 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해 남 박사에게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북한주민들이, 그리고 중국 내 탈북자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역시 재미교포로 북한인권을 위해 뛰고 있는 남신우 씨도 애도의 마음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남신우: 돌아가셔서 너무 깜짝 놀랐고, 안됐고, 인권일을 하시는 분이 없어지니까 북한사람들이나 탈북자들에게는 큰 손실이죠.

남재두 전 남한 국회의원의 동생인 남 박사는 고려대 의대 전신인 수도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민해 미국 시민권자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조지타운대학교 의대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1983년부터 워싱턴 근교에서 개업의로 일해 왔습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남윤희 여사와 두 아들이 있습니다.

장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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