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병진론, 경제에 방점 찍혀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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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은 정권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경제에 방점이 찍힌 정책”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원은 21일 ‘신대북정책 제안, 신뢰 프로세스의 진화를 위하여’라는 이름의 학술회의에서 북한이 경제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이에 맞는 새로운 대북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내용의 병진노선은 김일성 주석이 이미 60년대 초반에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는 1966년 10월 당대표자회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됩니다.

당시 북측은 중소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자주국방이 필요했으며, 따라서 “말로는 병진이었지만, 실제로는 국방에 방점이 있었다”고 아시아 지역안보 연구소인 동아시아연구원(EAI)은 21일 서울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현 김정은 정권의 병진노선은 색깔이 정반대라고 풀이합니다. “경제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겁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핵은 외부로부터 체제를 지키는 힘이지만, 내부를 단단히 결속시키는 동력은 경제 발전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또한 김정은의 치적은 “쌀밥에 고깃국”으로 상징되는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북측이 지난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로 제시한 병진노선은 “나름대로 정치군사적 안정성은 확보되었다는 판단 하에서 경제사회적 안정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서는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개선을 위한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고 보고서는 덧붙입니다.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 비확산 체제의 엄격한 제재를 고려할 때 핵무력 건설과 본격적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북한이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북한 당국에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당사자는 남한이어야 한다는 게 보고서가 갖고 있는 시각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현재의 병진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비판만 가할 경우, 북한은 이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북측이 병진노선의 성격을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합니다.

이른바 ‘병진론 2.0’, 다시 말해 새로운 병진론을 북한이 추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병진론 2.0’의 핵심은 ‘경제건설’과 ‘비핵안보’라고 설명합니다. 핵무기를 통한 안보가 아니라 과거 김일성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재래식 무기를 통한 안보를 추구하면서 경제건설을 추진하라는 겁니다.

다만 보고서는 어떻게 북한이 핵을 버리고 재래식 안보를 추구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사실은 핵이라는 것은 (북한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낸 묘안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것은 삶과 동시에 일정한 정치 권력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대안의 모색은 좀 더 우리가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연구 보고서의 특징은 북한의 입장을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를 직설적으로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북한이 외세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토론회 발표자들은 설명합니다.

전재성 서울대학교 교수: (북한은) 이미 핵국가로 공언했고 헌법에도 명시했기 때문에, 이를 비핵화로 만들려면 (북한의) 체면을 살리면서 북한식 논리를 더 많이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김정은 정권이 추진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를 놓고 발표자들과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도훈 외교부 북핵기획단장은 김정은의 병진노선도 “핵보유 의지를 우선시하는 정책”이라면서,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헌법과 당 규약, 그리고 공식문건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지속적으로 재확인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보고서도 북한이 현재 “경제에 초점을 맞추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말 그대로 ‘병진’ 정책이라는 겁니다. “더욱이 경제 건설과 핵 건설이 상충해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북한은 아직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 건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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