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③ 이 악물고 공부해 대학에 합격

서울-노정민, 천소람 nohj@rfa.org
2021-09-29
Share
[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③ 이 악물고 공부해 대학에 합격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김서영 씨(가명)
/RFA Photo

앵커: 꿈과 자유를 찾아왔지만, 낯선 한국 땅에서 혼자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 경제적 압박, 사회적 편견 등은 탈북민들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인데요.

[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삼킬 때도 많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버텨 나가는 탈북민들의 일상을 노정민 기자가 동행했습니다.

정착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

한국에서 혼자 사는 김서영 씨(북한에 있는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의 하루 일과는 단순합니다.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인천의 한 직업전문학교에서 세무∙회계 수업을 듣는 것이 주요 일과입니다. 코로나비루스 국면에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습니다.

하루빨리 성공해야 북한에 있는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학원 수업은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기에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버스를 기다릴 때도 동영상 강의에서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김서영 씨 (가명)] 제가 배우는 것은 회계 1급과 세무 2급이에요.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하다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회계∙세무) 자격증을 따게 되면 그 분야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제가 열심히 해야겠죠.

sp3_23.jpg
버스를 기다리며 동영상 강의를 보고, 집에서 문제 풀이를 하며 자격증 취득시험을 준비하는 김서영 씨(가명). 김 씨는 “경쟁 사회에서 열심히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RFA photo


김 씨도 하나원을 퇴소한 직후 한동안은 막막했습니다. 본격적인 정착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도 김 씨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하나원에서 나와서) 첫 두 달 동안 고민이 많았어요. 일을 해야 하는데, 해본 일이 없잖아요. 또 코로나가 시작돼서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었고, 모르는 것이 많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한두 달 지나 일도 하다가 결심한 것이 (자격증) 공부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학원에 다니며 회계와 세무 자격증 취득시험을 준비 중인 김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와 경제적 문제입니다. 한 달 고정 수입이 한시적 생계 급여인 약 50만 원인 데 반해 고정 지출은 아무리 아껴 쓴다 해도 100만 원이 넘습니다.

매달 부족한 생활비는 그동안 식당일을 해 모아둔 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김 씨의 꿈과 희망마저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김서영 씨 (가명)] 여기가 다시 태어난 곳이라 할 수 있죠. 빈손으로 다시 시작하는 거라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등도 고민이죠. 그런데 이것은 우리만 고민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한국 분들도 진로에 확신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그때(탈북 과정)를 생각하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힘든 길을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악물고 성격까지 바꿨어요”

하나원 퇴소 후 대안학교에 진학한 이수진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북한에서 친구와 놀기 좋아하는, 매우 쾌활한 성격이었습니다. 특별히 걱정할 것도, 진로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옛 습관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수진 씨 (가명)] 저를 바꾸겠다고 결심했어요. 북한에 있을 때는 활발하게 노는 것이 전부였지만, 한국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성격도 바꿨어요. 조용한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기자] 성격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수진 씨(가명)] 네.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4.jpg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성격까지 바꿨다는 이수진 씨(가명). 자신 만큼 한국 사회도 외로워 보인다는 말에 지난 2년간 정착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 RFA photo


가끔 북한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낸 친구들이 그립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도 외로워 보인다는 그의 말에 지난 2년간 이 씨가 탈북민으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애써 감추려 했던 마음의 상처가 어땠는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수진 씨(가명)] 북한에서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던 친구들의 느낌이 아니구나.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이 다 외로워 보여요. 저만 외로운 줄 알았는데, 한국 사람도 외롭구나.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랐다 해도 외로워 보였어요.

[기자] 본인도 외로움을 느낍니까?

[이수진 씨(가명)] 저도 가끔 외로움을 느껴요. 주말에 기숙사 친구들이 다 나가고 저만 혼자 있을 때...

이 씨는 탈북민이라는 출신에 가끔 위축된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말투 때문에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탈북민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있을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이수진 씨 (가명)] 한국 사람에게 탈북민이 나쁜 이미지로 보이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몇몇 사람들 때문에 탈북민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 두려워요. 저는 북한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말투가 다르니까 한 번에 알아보거든요.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 북한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씨에게는 14년 만에 만난 어머니가 큰 힘이 됩니다.

‘너무 외로워하지도 말고, 행복한 척도 하지 말고, 그 순간을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20대이고,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엄마의 조언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이 씨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매일 혼자 대하는 식탁... 가족 생각에 ‘눈물’

학원 수업을 마친 저녁 시간. 버스에서 내린 김 씨는 식사 준비를 위해 동네 마트에 들렀습니다. 냉동만두 하나에 두부 한 모, 냉면 한 묶음. 혼자 해 먹는 저녁이기에 사는 품목도 간단합니다.

아무도 없는 집, 매일 혼자 해 먹는 저녁도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요리하기가 취미라는 김 씨. 파를 썰어내는 칼질이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고향에서 즐겨 먹던 인조고기밥과 감자녹말 수제비입니다.

[기자] 제일 잘하는 요리가 뭐예요?

[김서영 씨(가명)] 인조밥이요. 여기서 말하는 콩고기에요. 원료가 콩인데, 이 고기도 탈북한 거예요. 밥에 간을 살짝 맞춰서 인조고기에 넣어서 양념을 발라 먹는 거죠. 한국 분들은 조금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신기하죠. 가끔 고향 음식 생각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해 먹고 있어요. 또 친구들이나 손님이 올 때 북한 음식을 해주면 좋아하죠.

서둘러 준비한 뒤 혼자 먹는 저녁 식사. 요리할 때는 외롭지 않다지만, 혼자 식탁을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외로움을 매번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처럼 북한 음식을 해먹을 때면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김서영 씨 (가명)]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외로울 때 많이 생각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맛있는 것 먹을 때, 그리고 밖에서 가장 생각날 때는 여행을 가거나 식당에 갈 때, 가족들끼리 모여있는 것을 볼 때, 그때가 가장 생각나죠.

5.jpg
김서영 씨(가명)가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혼자서 먹는 저녁 식사. 이날처럼 고향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면 북한에 있는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하다./RFA photo


요즘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도 어려워졌습니다.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내부 통제도 강화되면서 통화를 못 한 지도 오래됐습니다.

애써 참아보지만, 문득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리운 부모님 생각에, 나 혼자만 한국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미안함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김서영 씨(가명)] 자식이라는 게 좋았을 때보다 힘들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제가 여기 온 것을 잘했다고 말씀하시죠. 일단 제 마음은 빨리 모셔오고 싶은데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모셔오는 순간까지 부모님이 건강해야겠죠.

손으로 눈물을 훔친 김 씨는 자신이 가장 즐겨 듣는다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노래 하나를 틀었습니다.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고,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

정든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쉼 없이 달려 온 시간. 북한에 있는 가족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는 김 씨의 다짐을 이 노래가 대신합니다.

[김서영 씨 (가명)] 이곳에 오기까지 눈물도 많이 흘렸고, 정들었던 고향과 사람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를 악물고 힘들게 왔기 때문에 저에게는 여기에서 사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냥 막살면 안 되죠. 성공해서 잘 살아야 하고, 잘 살아서 부모님도, 동생도 데려오고 싶고...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하고 싶은 말 (0)

전체 질문 보기.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