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④ 북한 떠나 비로소 찾은 삶의 의미

제주-노정민, 천소람 nohj@rfa.org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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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④ 북한 떠나 비로소 찾은 삶의 의미 첫 제주도 여행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김서영 씨(가명)와 이수진 씨(가명).
/RFA Photo

앵커: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떠나는 여행은 재충전의 계기가 되곤 합니다. 한국에 정착한 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두 탈북 여성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탈북 때부터 한국 정착까지 매 순간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의 특별한 여행을 노정민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일상을 떠난 특별한 힐링 여행

[기내 방송]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제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사랑과 낭만의 섬 제주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8월의 어느 화창한 주말. 탈북민 김서영 씨(북한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와 이수진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가 한국의 최남단 섬,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한국 정착과 함께 시작된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으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데다 각자 학업과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재충전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두 사람 모두 제주도는 처음이기에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느라 전날 밤잠도 설쳤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제주도는 많이 가보고 싶었죠. 여행지로 제주도가 유명하잖아요. 이전부터 많이 가보고 싶었어요.

[이수진 씨(가명)] 저는 추억을 많이 남길 거예요.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고된 탈북 여정을 함께 했던 두 사람에겐 이번 여행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비행기는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타봤지만, 당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김서영 씨(가명)]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우리가 그곳에서 올 때는 아직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함에 주변을 살폈거든요. 지금은 마음 편히 여행하는 거니까...

[이수진 씨(가명)] 나는 언니랑 모든 여행을 같이하는 것 같아. 지금도 그렇고, 거기서 올 때 산도 같이 넘었고. 다 같이 했어.

[김서영 씨(가명)] 그래서 우리가 통하는 것이 있어요. (웃음)

전날까지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렸던 제주도는 이날만큼은 두 사람을 응원하듯 화창한 날씨입니다.

[현장음] 하나, 둘, 셋! (찰칵). 언니도 예쁜 곳에서 찍어줘야지.

공원을 찾아 예쁜 사진을 찍고, 처음 해보는 가상현실 게임은 신기함과 재미가 으뜸이었습니다. 무서울 것만 같던 승마는 말이 달릴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으로 쌓였던 모든 응어리가 확 풀리는 기분입니다.

[이수진 씨 (가명)] 저는 첫 여행이라 정말 설렜고요. 그동안 공부만 하고, 대학교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시기였는데, 제주도는 추억에 남을 곳이라 생각이 들었고...

[김서영 씨 (가명)] 한국에 온 뒤 휴식과 여유가 없었고, 코로나 상황에서 많이 못 돌아다녀 봤어요. 울적했던 기분과 모든 것을 털어놓고 가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았어요.

제주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두 사람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만약 내가 아직도 북한에 있었다면 이런 삶이 가능했을까’

특별할 것이 없던 일상의 반복, 어떠한 동기 부여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았던 북한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것이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이수진 씨 (가명)] ‘제주도에 오면서 지금 내가 북한에 있다면 뭘 했을까’를 생각했는데, 그냥 평범한 일상이 반복됐을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랑 만나 운동했을 테고, 집에 들어와 밥 먹고 잤다가 12시쯤 일어나 또 친구 집에 갔다가 7시쯤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식구들과 대화하다가 잠드는 일상의 반복이었을 것 같은...

[김서영 씨 (가명)] 원래 살던 곳에서 이곳에 오기까지 많이 힘들었는데, 솔직히 이곳에서도 어려움이 있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우리가 살기 싫은 곳에서 뛰쳐나와 이곳에 왔는데,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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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정부터 한국 정착까지 어려운 순간을 함께 한 두 사람은 앞으로도 돈독한 우정을 약속했다. /RFA photo


언니∙동생으로 서로 의지하는 존재

탈북 여정부터 한국 정착까지 매 순간을 함께 한 두 사람은 어느새 많이 의지하는 다섯 살 터울 언니와 동생 사이가 됐습니다. 당시 함께 왔던 13명의 탈북민들 가운데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이입니다.

이 씨는 당시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제3국까지 올 때 김 씨가 구출팀과 긴밀히 연락하며 다른 사람들을 잘 이끌어줬던 사실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모두가 예민해져 있던 때에 김 씨가 아니었다면 무사히 올 수 없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이수진 씨(가명)] 언니가 리더 역할을 잘해요. 사람들을 잘 챙겼고, 성격도 활발했어요. 언니가 리더 역할을 할 때 사람들이 언니에 대해서 뭐라 하는 것 같았어요. 언니도 느꼈을 텐데, 표현을 안 하더라고요. 인내심이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김 씨는 한국에 정착해서도 동생처럼 잘 따라주는 이 씨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김서영 씨(가명)] 동생 같죠. 저에게는 여동생이 없거든요. 언니라고 불러주고, 가끔 전화해서 ‘집에 놀러 가도 돼’라고 물어보는 게 너무 좋아요. 이 언니가 생각나 전화할 때면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이수진 씨(가명)] 제가 한국에 온 뒤 속마음을 잘 안 말해요. 다른 사람에게도 자존심을 세우고 센 척하는데, 언니 앞에서는 제 속마음을 그대로 전해요. 제가 제일 힘들 때 전화하는 사람이 언니가 된 것 같아요. 저를 동생이라고 챙겨줄 때면 북한에 있는 언니들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탈북 과정에서 같이 생사를 넘나들며 고생했어도 한국에 정착하면 더는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고 힘을 주는 사이가 된 겁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대답하는 두 사람의 눈은 금세 촉촉해집니다.

[김서영 씨 (가명)] 저는 우리가 언니 동생처럼 지내왔듯이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전화해서 ‘언니네 놀러 가고 싶다’라고 하면 언제든 반겨줄 거고요. 참, 왜 눈물이 나죠? 외로움도 이겨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과정이 지나면 외로움도 없어질 거라 생각해요. 힘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수진 씨 (가명] 저는 언니, 동생 사이가 정말 좋고요. 언니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무리 힘들어도 언니의 꿈을 다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언니가 포기한다면 제가 옆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속마음을 통해 서로의 우정을 재확인한 두 사람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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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첫날 밤, 저녁 식사와 함께 한국 정착 생활을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운 두 사람. /RFA photo


힐링 여행, 다음을 위한 쉼표

이튿날 아침, 푹 자고 일어난 두 사람은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해변을 걷기도 하고, 발도 적셔보고, 바위틈에 숨은 작은 게도 잡아봅니다. 그래도 바다까지 왔으니 물에 들어가 보고 싶은 유혹은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장음] 물에 들어가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금세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 동심으로 돌아가 파도에 몸을 맡겨보고, 내친김에 바나나 보트에도 도전해 봅니다.

거침없이 물에 뛰어드는 김 씨. 함성과 함께 파도를 가르며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착 기간 정신없이 달려 온 두 사람에게 다음 여정을 위한 쉼표가 됐습니다. 둘만의 특별한 여행을 마칠 즈음 두 사람은 눈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짧은 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수진 씨 (가명)] 뜻밖의 제주도 여행, 내가 제일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 의미 있었다. 또 20살의 모습과 22살의 모습, 대한민국에서의 2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바쁜 시간을 살아왔지만, 조금은 나의 모습이 성장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번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함께한 모든 시간이 정말 행복했고, 앞으로도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오늘을 떠올리며 살자.

[김서영 씨 (가명)] 이번 제주도 여행은 저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순간들이었고, 또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정착하는 순간마다 긴장했던 마음과 지친 몸을 오늘의 여행으로 모두 날려버린 느낌이랄까요. 참 행복했고, 그냥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 더 좋았어요. 동행해주신 분들, 고마웠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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