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건 없는 대북 백신지원 힘들 것”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1.07.16
“미국의 조건 없는 대북 백신지원 힘들 것”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송에 사용된 박스.
/AP

앵커: 북한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코로나 백신 지원에 대해 ‘정치적 수단’ 운운하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내심 백신지원을 고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조건 없이 백신 지원을 받아내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미국의 대북 코로나 백신지원 가능성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백신을 두고 협상에 나선 북한

[북한 관영매체] 순간이나마 각성을 늦추고 마음의 방비를 푼다면 지금까지 다지고 다져온 방역장벽이 불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심장 깊이 쪼아박아야 합니다.

국경까지 꼭꼭 걸어잠그고 2년째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음의 방역’까지 다그치고 있지만 정작 코로나와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백신 확보는 기약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한 술 더 떠 미국이 북한을 포함한 저소득 국가 대상으로 지원할 예정인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 ‘불순한 정치적 목적’ 운운하며 받지 않겠다고까지 밝혔습니다.

백신 지원을 분배감시나 인권문제 등 다른 사안과 연계하지 말라고 미리 선을 그은 겁니다.

북한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지원을 두고 이처럼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배경은 뭘까?

한국의 북한 관련 단체인 샌드연구소는 최근 (6월) 발표한 정세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백신 국수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는 것은 역으로 백신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보건 전문가인 한국통일료연구센터 안경수 소장도 북한이 오히려 백신을 더 많이 공급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안경수] 부작용 때문에 특정 백신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아스트라제네카만 있어도 맞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작용은 표면적인 이유고 백신 지원 양을 늘리기 위해 협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북한이 백신 지원이 시작되기 전 내정간섭 불가 조건을 선제적으로 내걸었다는 지적입니다.

대북 의료지원 활동을 벌여온 박기범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북한의 백신 분배감시 수용 불가 요구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기범] 무엇보다도 이것(조건을 내 거는 것)은 위선적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알기로는 다른 나라는 그들 나라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혜국은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백신을 가장 먼저 제공하기로 약속해야 한다"라고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준, 책임 및 보고 요건은 모든 국가에서 동일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북한이나 백신을 공급받는 다른 나라들이나 동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약계층 인권 보호 위해 분배감시 필수”

이에 대해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는 (15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백신 수혜 국가에 요구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킹]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백신) 지원을 받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그들(북한)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다른 나라에게 도와달라면서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북한이 "당신이 우리를 돕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공여국들이 북한을 돕기 어렵게 만듭니다.

킹 전 특사는 이어 북한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대신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중이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이 저소득 국가에 분배할 예정인 화이자 백신 5억 회분 중 북한에 돌아갈 몫은 크지 않을 걸로 전망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한 데 비해 수요는 많은 상황으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제시한 분배감시 등 기준을 충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킹 전 특사는 미국이 북한에 백신을 무상지원하기 위해서는 분배감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백신을 사회적 약자가 아닌 엘리트 계층에게 먼저 분배하기 위해 미국의 분배감시 요구를 기피하는 걸로 풀이했습니다.

[로버트 킹] 사실, 미국 법률은 인도주의적 원조가 필요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실제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원조가 어떻게 분배되는지 감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도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백신 지원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미국은 원래 북한에 식량이나 약품과 같은 지원물자가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정말로 분배될 수 있는지 아닌지 면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백신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에 다른 선택지 있을 것”

한편 안경수 센터장은 북한이 미국에 기대지 않고 중국과 러시아 등에 백신 지원을 요청할 걸로 예상했습니다.

[안경수] 북한은 (백신 지원과 관련해)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 등이 있죠.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로부터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애써 백신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12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16일 기준) 35억 회분 이상 진행된 가운데 접종을 시작조차 못 한 나라는 북한을 포함해 5개국뿐입니다.

기사 작성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 기자;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