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갈취한 가상화폐 현금화 쉽지 않아”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1.02.23
“북, 갈취한 가상화폐 현금화 쉽지 않아” 지난 2018년 해킹을 당한 서울의 한 가상화폐거래소.
/AP

앵커: 최근 미국 정부가 북한의 불법 해킹 활동에 대대적인 주의보를 내리며 대응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전문가들은 해킹이 코로나19 시국에 북한이 보유한 대표적인 자금확보 수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가상화폐의 경우 현금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의도한 현금확보가 즉각적으로 이뤄지긴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북한의 불법 해킹 활동이 이어지면서 역설적으로 북한의 대규모 외화벌이 수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최근 (19일) 미국 뉴욕의 민간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관한 한 북한 관련 화상토론회에서 ‘북한의 해킹활동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우회하는데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 북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물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김병연 한국 서울대 교수는 북한의 해킹 등 대북제재를 우회하는 불법활동의 범위가 커질수록 대북제재의 구멍(loophole) 역시 커지게 된다고 내다봤습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 2019년 한 해 동안 북한의 무역적자는 20억 달러 정도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제 생각에 일부는, 적자의 반 정도 수준은 해킹과 관광, 러시아와 중국과의 교류 등으로 메워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외화벌이를 위한 이런 활동의 범위가 확대할수록 분명 대북제재에도 큰 구멍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다만 북한이 해킹으로 확보한 가상화폐가 즉시 현금화로 이어지긴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외화 확보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 북한의 이같은 해킹 활동이 얼마나 성공적일지에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들이 갈취한 가상화폐 중 여전히 많은 양이 아직 현금화(cash out)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가상화폐를 우회적으로 현금화해 실제로 북한 내부로 들여오기는 쉽지 않은 과정일 겁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최근 미 법무부가 가상화폐를 해킹한 혐의로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해커 3명을 기소한 사건을 언급하며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북한의 이같은 불법 해킹은 현금 확보를 위해 남은 ‘유일한 자금줄’이라 평가했습니다.

현재 북한 당국에 가장 궁핍한 것은 결국 돈이라는 겁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외부에서는 물론 내부적으로도 현금을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현금에 손을 얹기 위한 많은 우회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고, 해킹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성공을 달성할 수 있었던 분야입니다.

뱁슨 전 고문은 현재 북한의 팍팍한 경제와 외부와 단절된 최근 상황으로 볼 때 향후 북한 당국이 해킹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역량 강화를 계속 시도하며 자금확보에 고삐를 당긴다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 북한이 해상 환적을 통한 원유 구매를 추진한다 해도 결국에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수출을 통한 자금확보도 (제재로) 막힌 상태이고, 돈을 어떻게 내겠습니까? 해킹은 현재 북한이 지닌 유일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대북전문매체 NK뉴스의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피터 워드는 북한이 계속해서 해킹을 통한 자금 갈취를 이어가고 있는 최근 정황은 역설적으로 북한 사람들의 ‘재주(ingenuity)’가 뛰어나다는 점을 증명하기도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터 워드: (북한 해커에 대한 법무부 기소건은) 불편한 소식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북한에서 이같은 해킹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의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불법 해킹에 가담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그들의 역량을 합법적인 측면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의회에서도 북한의 불법 해킹에 대한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습니다.

앞서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 즉 제3자 제재를 명문화하는 대북제재법안인 ‘오토웜비어법’이 국방수권법에 포함돼 통과하도록 입법활동을 펼친 크리스 밴 홀렌(민주∙메릴랜드) 상원의원은 최근(1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화이자 제약사에서 코로나19 백신의 원천기술을 해킹으로 빼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매우 걱정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밴 홀렌 의원은 조만간 벤 새스(공화∙네브레스카) 의원과 함께 “미국의 첨단 기술과 주요 혁신을 가로챈 외국 기업을 제재하기 위한 (미국 지적재산권 보호)법안을 재발의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6월 상원 은행위원회에 처음 발의된 이 법안(S.3952: Protecting American Intellectual Property Act of 2020)은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 외교정책 또는 경제 및 보건 등에 관한 기밀을 유출하는 데 고의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거나 이익을 얻은 개인 및 기관에 대한 목록을 의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이에 따라 보고서에 명시된 개인은 재산과 비자 발급에 대한 제재를 받고, 미국 대통령이 해당 기업들에 대해 부동산 또는 수출차단 제재를 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초당적 법안은 지난해 12월 상원 심의를 무난히 통과했지만 하원의 심의를 거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관련 기술을 탈취하려는 북한의 해킹 시도가 적발되는 등 대북 사이버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여서 입법에 탄력을 받을 수 있어 눈길을 끕니다.

최근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안보·기간시설 안보국(CISA)도 연방수사국, 그리고 재무부와 함께 북한의 이어지는 가상화폐 탈취 해킹 시도에 대해 경고하는 합동 주의보를 내렸습니다.

고갈된 현금을 불법 해킹을 통해 확보하려는 북한과 이를 차단하려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싸움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