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동남아 제3국, 서울, 워싱턴 - 천소람, 노정민 nohj@rfa.org
2021.12.12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탈북민들이 밀입국하는 순간.
/RFA

앵커: 20대 여성 두 명이 2019년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탈북 경로였던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만난 RFA 취재진에 “북한에서 여자로 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여전히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는 가부장적 사회, 직업 선택과 외모까지 통제받는 북한에서 젊은 여성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도 꿈을 성취하면서 여성으로 당당하게 살고싶은 욕구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특집: 북한 여성 오늘] 여자로 당당하게 살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나온 탈북 여성들과 북한에서 고위층 여성들과 교류했던 영국 외교관 부인의 증언을 통해 신세대 북한 여성들이 느끼는 좌절과 희망을 짚어봅니다.

천소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에서 희망 없는 삶이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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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평양직물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Reuters


[탈북 구출단체] 여보세요. 강 넘었습니까? 환하게 불빛이 비칩니까?

[김서영] 네, 보입니다.

[탈북 구출단체] 우리가 흰 차고, 그쪽에 와서 깜빡깜빡하시오.

[김서영] 2분이면 나갑니다. 2분.

[탈북 구출단체] 어! 찾았다.

2019년 10월 18일 늦은 밤 동남아시아 제3국 국경.

20대 여성 김서영(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이수진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가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시아 제3국으로 밀입국했습니다.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무려 6천km의 여정. 두 사람이 부모와 형제를 두고 북한을 떠나온 이유는 여자로 당당하게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김서영] 솔직히 저쪽(북한)에서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았잖아요. 그런데 여기(한국에) 오면 자유롭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노력한 것에 따라 성과가 있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여기 오니까 더 감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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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5살이었던 김서영 씨는 탈북 경로인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만난 RFA 기자에게 여자로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수진 씨도 꿈을 좇아 탈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수진] 저는 그저 내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제일 서글펐어요. 의대를 몹시 지망했는데, 토대(출신성분)가 걸려서 갈 수 없었거든요. 머리가 아무리 좋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토대 때문에 못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 씨는 주변에서 ‘나이가 차면 좋은 남자 만나 일찍 결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항상 들었는데, 이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잘 살면 된다”

[북한 매체]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손자에게 3대째 권력이 대물림된 ‘21세기 봉건 왕조체제’ 북한에서 결혼은 여성들에게 여전히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의무였습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2017년부터 2년 동안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살았던 영국인 린지 밀러 씨는 북한의 노동당 간부나 고위 관료 집안의 미혼 여성과 자주 교류했습니다. 밀러 씨는 북한의 특권층 여성들도 결혼과 출산에 대해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했다고 말합니다.

[린지 밀러] 결혼을 위해 연애를 하거나 부모님이 신랑감을 찾는 등 정말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제게 털어놓곤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평양 여성에게 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부모님이 결혼에 대한 부담을 준다고 말이죠. 나이가 들면 신랑감을 찾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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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가 평양의 한 공원에서 웨딩화보를 촬영하고 있다. /AFP


즐거워야 할 연애 역시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는 북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린지 밀러] 제가 북한 여성들과 나눴던 대화에서 그녀들이 느꼈던 가장 큰 압박은 연애하는 것이었어요.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나는지’를 물어보면 선, 즉 부모님 혹은 가족을 통해 소개받는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한 번은 어떤 북한 여성이 정말 이런 관계가 진실되지 않고, 마치 강요당하는 (fabricated and forced)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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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결혼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강요된 의무이기도 합니다. 노동이 당과 인민을 위한 무급 봉사로 간주되는 북한에서 직업을 갖지 않은 미혼 여성은 ‘2중 의무 위반자’로서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젊은 북한 여성들은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서영 씨와 이수진 씨도 예외는 아닙니다.

[김서영] 북한에서는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으면, 여자로서 본인의 인생은 끝나는 거거든요. 젊었을 때 품었던 희망은 시집가서 아이를 낳으면 없어지는 거예요. 참 서럽죠.

[이수진] 저는 북한에 있을 때도 ‘시집을 늦게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모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여자는 시집을 빨리 가서 자리 잡는 게 좋다’고 말하곤 했는데, 저는 그 말이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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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등에 업은 여성이 북한 군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다. /Reuters


1인 3역에 허덕이는 북한 여성들

젊은 북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2012년 탈북한 40대 박선화(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는 육아를 비롯한 집안일과 경제 활동, 각종 강제동원까지 1인 3역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박선화] 북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생계를 유지하고 풍요롭게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여자들이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고, 북한은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집안일도 해야 하고요. 여성들이 살아가기에 참 힘든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2002년에 탈북한 50대 김혜영 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도 각종 환영 행사부터 제설작업까지 동원됐던 당시를 떠올리며 한숨을 짓습니다.

[여성 군악대의 북소리와 여성들 구호] 야, 야~~!!

[김혜영] 아침 출근 시간에는 여맹원들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선동 활동도 해야 하고요. 인민반에서 내라는 여러 가지 할당들도 감당해야 합니다. 한 예로 새벽마다 온 마을 청소부터 시작해 눈이 오면 큰길도 치워야 하고, 제설 작업도 해야 하고요. 외국 정상이 평양을 방문하거나 큰 정치 행사가 있으면 추운 날에도 한복을 입고 나가 환영식에도 참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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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평양 여성들이 깃발을 들고 율동을 하고 있다. /AP photo


김서영, 이수진 씨에게 북한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무시당하고, 많은 짐을 진 존재’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김서영] 많이 힘든 것 같아요. 많은 짐이 여성들에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참 답답해요. 제가 고향을 떠나서 여기에 온 지가 몇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변화가 없고 더 힘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파요.

[이수진] 북한에서는 여자를 무시하는 편이죠. 여자들은 시집을 가서 애를 낳고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한국은 여자와 남자가 똑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점이죠.

“나를 찾고 싶어요”... 작은 변화의 시작

반면 전통적 여성상을 강요 받아온 북한 여성들의 마음속에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싹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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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확실히 여성들이 이전보다 아이 낳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애를 낳고 왜 고생을 하냐는 거죠. 낙이 없고 답이 없는 곳에서, 솔직히 우리 생활도 적당치 않은데 애까지 낳아서 왜 힘들게 사냐는 거죠.

[린지 밀러] 그들은 항상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꽤 흔하지 않은 직업을 갖고 있거든요. 자영업(self-employed)에 대해서 설명해주려 노력했어요. 전 프리랜서 음악가거든요. 하는 일이 계속 바뀌고 장소도 자주 바뀌죠. 한 기관, 한 명의 상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노동 조건이 북한 여성들에게는 매우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은 흥미로움으로 다가간 거죠.

개인행동이 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사회에서 여성들의 옷과 머리 모양도 단속 대상이지만, 외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여성들의 ‘일탈’도 조금씩 시작됐습니다.

[린지 밀러] 아주 사소한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거나 표현할 수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발로 말이죠. 평양 여성들은 가끔 아주 높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곤 했습니다. 신발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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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지하철역에서 여성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photo


북한 경제 전문가인 문성희 박사는 북한의 유명 호텔과 식당의 지배인과 경영자로 성공한 여성도 나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성희] 평양역 인근 대동강 맥주 비어홀이 있는데 그 곳 지배인도 여성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유명한 호텔 지배인도 여성이고, 평양대극장 안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사람도 여성이고요. 여성들의 파워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또 여성 스스로 자신의 신체와 인권을 보호하는 ‘미투 운동’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선화] 웬만하면 여성들이 말하기가 부끄러우니까 신고를 안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담한 여자들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안전부에 신고를 해서 남자들을 적발해 교화소로 보낸 여성들도 몇몇 있어요….

“한국에서 여성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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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주도에서 여행을 즐기는 김서영 씨와 이수진 씨. /RFA Photo


[김서영] 와~ 정말 꽃 속에 묻혔다. 나이스, 잘 찍었어?

[이수진] (웃음)

[김서영] (바닷물 소리) 시원하다. 이쪽으로 와.

한국 정착 2년 차인 김서영 씨와 이수진 씨는 지금 자신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김서영] 물론, 여기에서도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노력하면 생각한 만큼 바라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수진] 저는 꼭 간호사가 돼서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능숙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일하고 싶어요.

린지 밀러 씨는 북한 여성들에게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라고 조언합니다.

[린지 밀러] 제가 북한의 젊은 여성, 특히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도록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보라’는 겁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일 수 있겠죠. 그들은 정말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특히 젊고, 언어적 재능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죠. 해외에도 나갈 수 있고 말이죠. 그들에게 기회를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 할 수 있도록 말이죠.


박선화 씨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한 여성들이 용기를 더 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박선화]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 조금 더 한 발자국 더 내딛어서 세계를 더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북한 여성들도 하고 싶은 것 하고, 할 말도 다 하면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틀에 갇혀 살아 온 여성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면서 북한에서도 여성으로서 존중받고, 선택의 자유를 누리며 꿈을 이루는 날이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