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수해가 할퀴고 간 북한] ①코로나 탓 피해규모 파악도 한계

워싱턴-노정민, 한덕인 nohj@rfa.org
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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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8월 19일) 밀반입한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전해 준 수해 지역의 상황과 북한 당국의 대응.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8월 19일) 밀반입한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전해 준 수해 지역의 상황과 북한 당국의 대응.

앵커: 올해도 북한은 폭우에 따른 수해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홍수 피해를 입은 황해남북도 일부 지역의 농장원들은 벼가 물에 잠기면서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가 하면, 수해 복구와 지원물자를 마련하느라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엄격한 통제가 이어지면서 정확한 수해 규모를 파악하기는커녕 복구 노력도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올여름 집중 호우로 북한이 입은 수해 규모를 진단하고, 이번 수해가 앞으로 미칠 영향과 복구 대책 등을 전망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북한 안팎에서 전하는 홍수 피해의 실상을 들어 봤습니다.

보도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북 농장원들 “수해로 할 일이 없어졌다.”


“벼가 물에 잠겨 수정도 안 되고, 올해 농사는 망쳤다.”

“농장원들이 올해 일할 것이 없어졌다고 할 정도다.”

“수해 지원 물자 마련을 위해 인민반별로 10위안씩 바치라고 한다.”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 각각 살고 있는 주민들이 최근(8월 19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해 준 북한 내 홍수 피해 지역의 상황입니다.

주민들은 수해가 심각한 황해남북도, 강원도 등지의 친인척과 지인들로부터 농장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며 “피해를 입은 농장에서는 복구가 안 될 정도로 벼가 물에 잠겨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농장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할 일이 없어졌다”며 “올해 농사는 망쳤다”는 푸념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주민들은 전했습니다.

또 수해 지역에 대한 지원물자로 북한 당국이 농장원들에게 한 달 분량의 식량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주(8월13일) 일본 ‘아시아프레스’에 의뢰, 북한 주민들에게 ‘최근 북한에 내린 폭우로 수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홍수 피해에 따른 주민들의 생활은 어떤지’, ‘북한 당국의 대책과 지원, 주민들의 민심은 어떤지’ 등을 물었습니다.

예상대로 주민들은 큰 수해를 입었다며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알려왔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홍수 피해에 대한 지원 물자 마련을 위해 인민반별로 중국 돈 10위안씩을 거둬들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황해남북도나 평안남도, 강원도에 친척이 있는 사람에게 현지 상황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수집한 정보를 문자로 받은 것인데, 역시 농사에 막대한 영향이 생겼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농사를 망쳤다는 것도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입은 것은 사실인 것 같고요. 수해 지역에 지원물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수해 지역 농민이 지원 물품으로 한 달 분 공급을 받았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주요 피해지역은 황해남북도와 강원도로,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 따르면 (8월 13일) 이번 홍수로 22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됐으며, 8천 가구 이상(8,256)의 집이 파손되거나 침수됐습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8월 13일 개최)에서도 황해남북도와 강원도, 개성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농작물 피해면적이 3만 9천296정보에, 살림집 1만 6천680여 세대, 공공건물 630동이 파괴되거나 침수됐고, 많은 도로와 다리, 철길 등이 끊어졌다는 피해 규모가 공개됐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한국 GS&J 인스티튜트 북한 동북아연구원장은 최근(8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에서 발표한 농경지의 피해 규모만 보더라도 최근 20년 이내에 일어난 수해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고 진단했습니다.

[권태진 원장] 과거와 비교하면 2013년에 발생한 홍수의 농경지 피해 규모가 약 2만 헥타르가 채 안 됐는데, 올해는 그때보다 2배나 큰 것으로 보이고, 2012년에는 8만 헥타르가 피해를 입었는데, 그때보다는 절반 정도입니다. 2007년 당시는 20만 헥타르 이상으로 굉장히 컸고요. 적어도 올해 수해는 최근 20년 내 일어난 피해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피해 복구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겁니다. 8월 초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만 해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국제기구·민간단체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 어려워”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정확한 수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한계도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엄격한 방역 지침에 따라 주민들의 이동과 정보 공유 등이 통제됐을 뿐 아니라 북한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들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북중 국경이 봉쇄된 이후 접근이 제한되면서 수해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8월 19일) 밀반입한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전해 준 수해 지역의 상황과 북한 당국의 대응.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8월 19일) 밀반입한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전해 준 수해 지역의 상황과 북한 당국의 대응.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코로나19’ 방역 조치 강화로 북한 내 소식통들이 황해남북도와 강원도 등의 수해 상황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동 통제로 직접 현장에 가보는 것은 물론, 도청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전화 통화로 현지 사정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코로나19’ 때문에 북한 내부의 통제가 매우 심합니다. 사람 왕래가 이뤄지고, 물자 유통이 잘 돼야 정보 공유가 가능한데,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이동이 막히면서 정보 유통이 원활치 않습니다. 또 휴대전화로 알아보는 것도 내부 단속이 너무 심해서 ‘왜 자꾸 수해 지역 상황을 물어보냐’며 상대방도 싫어하고, 이 때문에 감시대상이 되면 좋은 것이 없으니까 내부 협조자들도 많이 꺼립니다.

국제 민간구호단체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8월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관영 매체가 밝힌 것 외에 자세한 수해 피해를 알지 못하지만, 홍수 피해가 발생한 지역 주민의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구호단체의 관계자도 (8월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북한을 오랫동안 방문하지 못해 이번 홍수 피해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한 북한 당국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의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북한의 ‘코로나19’ 방역을 지원했던 ‘국경없는의사회’ 측도 “현재 북한에 상주하는 관계자가 없기 때문에 올해 수해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수해 현황 파악과 관련해 한국 통일의료복지센터(dprkhealth.org)의 안경수 센터장은 북한 스스로 집계한 피해 규모조차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 사례와 비교를 통한 경향만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경수 센터장] 북한도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부 통계를 집계하는 과정이나 그것이 상부로 올라가는 과정이 미국, 한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매우 다릅니다. 따라서 (북한 발표를 바탕으로 한)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내용이 완벽히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어떤 경향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는 거죠. (피해) 규모를 보고 과거와 비교하면 커졌다고 알 수 있는 것이지, 정확한 통계는 아닙니다.

북한 당국과 주민의 복구 대책 마련은 물론 국제기구, 민간단체의 지원에 앞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이지만,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조사와 평가가 아닌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발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체제와 정치적 이익에 따라 피해 규모가 얼마든지 은폐 또는 부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엔기구도 북한의 홍수 피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수해 상황을 파악하고 평가해 맞춤 지원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RFA 그래픽

전문가들 “복구도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

수해가 발생한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직접 수해 지역인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방문한 데 이어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면서 민심 다독이기에 나서는 등 북한 당국도 수해 복구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습니다. 그만큼 홍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안경수 센터장] 실제로 홍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규모 파악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지만,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에서 어떤 대응을 했다는 것에 비춰볼 때 수해 피해가 컸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조치에 따라 초소마다 체온 검사는 물론 의심 지역에서 온 인원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면서 지원물자나 복구인력에 대한 지원이 영향을 받는 등 수해 복구 노력에 크고 작은 지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또 ‘코로나19’대유행에 따른 경기 침체로 수해 복구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한 데다 오랫동안 생활고를 경험한 북한 주민들이 이번에 홍수 피해까지 겪으면서 삶은 더 팍팍해질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권태진 원장] 지금이 가장 식량이 부족할 때입니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보릿고개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미 이모작으로 생산한 곡물도 소진됐고, 작년에 생산한 것도 이미 소진됐고요. 일부 수입한 것으로 버티고 있거든요. 지금은 농촌에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도시에서 장사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올해 코로나 사태, 경제제재 때문에 어려운데 수해까지 겹쳐서 북한 당국이 긴급 상황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취약계층은 올해를 어떻게 넘길지 우려되고요. 북한 전역도 그렇겠지만, 평양도 일부 배급계층 외에 식량을 구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농사가 잘 안됐다는 정보가 북한 내에 많이 확산하면 북한 주민들의 심리적인 타격, 즉 불안감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 상황이 매우 나빠지지 않았습니까? 정말 현금이 없어서 먹을 걱정이 큰 상황인데, 여기에 농사까지 잘 안되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불안감이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평양 시민, 간부들에까지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 주민들의 심리적인 영향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는 멈췄지만, 수해가 할퀴고 간 지역에서는 식량, 보건, 경제 부문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작지 않습니다. 또 언제 다시 태풍과 폭우 등이 북한에 피해를 줄 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매년 반복되는 북한의 홍수 피해이지만, 특히 올해는 오랜 대북제재에 이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기에 북한 주민들에게 이번 수해가 더 뼈아프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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