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값은 고작 8천 위안($1,100)이었어요”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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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성에게 팔려와 랴오닝성에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
중국 남성에게 팔려와 랴오닝성에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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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매년 7월 30일은 유엔이 정한 ‘인신매매 반대의 날 (World Day Against Trafficking in Persons)’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탈북 여성이 인신매매에 노출돼 있으며 성노예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지금은 서울에 정착해 살고 있는 한 50대 탈북 여성의 증언을 통해 인신매매 현장의 모습과 피해 여성들이 겪었던 비참한 삶을 되짚어봤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인신매매 조직의 북한 여성 거래 현장

/Illustration-Rebel Pepper

2000년 봄, 중국에서 헤어진 딸을 찾기 위해 세 번째로 압록강을 건넜던 탈북 여성 박지영(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사용 요청) 씨. 이미 두 차례나 탈북에 실패해 북송됐던 박 씨의 당시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에 다시 붙잡혀 중국 장백 지역의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중 공안국장으로부터 이색적인 제안을 받게 됩니다.

/Illustration-Rebel Pepper

  • 당시 받았던 제안이 구체적으로 뭐였습니까?


[박지영 씨] 당시에 저는 딸을 찾기 위해서 중국에 넘어갔다가 붙잡혔습니다. 그때가 세 번째였는데, 북한에서도 한두 번은 용서해주지만, 세 번은 용서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중국 공안국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 자리에는 조선말을 하는 사복 공안들도 있었는데요. 저를 북한에 넘기지 않을 테니 우리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겁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북한에서 넘어 온 여성을 파는 중국 인신매매단을 검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수감된 북한 여성들 중에 3~4명을 골라 북한에서 막 넘어 온 것처럼 옷도 초라하게 입고, 알려 준 집에 들어가라는 것이었죠.

당시 중국 공안은 인신매매 조직의 거주지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 박 씨를 비롯한 북한 여성들을 미끼로 앞세운 겁니다.

절망 속에 지내던 박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 당시 검거 작전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박지영 씨] 일을 도와주면 딸도 찾아주고, 조용히 북한에 넘겨주겠다는 계약서를 쓰고 지장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바로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믿을 만한 북한 여성 3명을 뽑았고요. 사복을 입은 공안 3~4명이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알려준 집으로 갔죠. 그 집 문을 두드리면서 “우리를 살려주세요. 북한에서 왔는데, 배고파 죽겠습니다. 살려주세요”라고 말하자,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물어서 “북한에서 방금 막 넘어왔는데, 이 집으로 가면 좋은 곳에 시집 보내준다고 들었다”라고 답했습니다.

/Illustration-Rebel Pepper

그 집에서 목욕도 하고, 새 옷도 입혀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화장도 곱게 해주고, 밥도 잘 줬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이도 물어봤고요. 같이 간 여성들은 20대라고 하고, 저는 30살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뒤 중국 사람이 오더니 우리를 다 세워놓고 가격을 매기더군요. 젊은 처녀인데 곱게 생긴 여성은 당시 중국 돈으로 1만 원(이하 위안), 또 다른 27세 처녀는 5천 원이었는데, 이유는 외모가 못생겼다는 거죠.

  • 실례지만, 당시 지영 씨는 얼마라고 했습니까?


[박지영 씨] 저는 8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굴은 예쁘게 생겼는데, 나이를 먹었다며 8천 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옷과 머리 등을 해준 비용으로 1천 원이 들었다며, 그 비용을 제하고 다 차에 태운 겁니다.

  • 지영 씨도 그 차에 함께 타신 거죠? 그 차는 어디로 갔습니까?


[박지영 씨] 네. 저희를 싣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저희가 탄 차 뒤로 중국 공안 차가 몰래 따라왔고요. 차가 어느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반대편에서 우리를 인계할 차가 왔습니다. 파는 사람이 중국말로 다시 가격을 부르고, 사는 사람은 흥정을 막 하는 겁니다. 그리고 파는 사람이 돈을 받은 뒤 우리에게 다른 차로 옮겨 타라고 했습니다. 우릴 산 사람의 차에 올라탄 거죠. 한 명, 두 명 올라탈 때 중국 공안이 현장을 덮쳤습니다. 우리를 팔았던 사람과 사려 했던 사람이 다 붙잡혔는데요. 인신매매는 중국에서도 마약처럼 매우 엄중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렇게 인신매매 조직을 검거한 뒤에 다음 날 또 다른 집에 보낸 거죠. 그렇게 여섯 번 정도 인신매매 조직 검거에 이용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 씨의 몸값으로 책정된 당시 중국 돈 8천 위안은 현재 미화 약 1천100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입니다. 당시 1위안에 한 끼를 해결할 정도였으니 8천 위안은 매우 큰 돈이었지만, 한 여성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마저도 나이와 외모에 따라 더 비싸지거나 싸지기도 했는데, 그렇게 팔린 북한 여성은 대부분 신붓감이 귀했던 중국 농촌 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도문 수용소에서 만난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

/Illustration-Rebel Pepper

인신매매 검거에 이용됐던 박 씨에게 돌아온 것은 강제북송이었습니다. 중국 공안이 약속한 것과 달리 박 씨와 함께 수감된 북한 여성들을 모두 북한 보위부에 넘겨버린 겁니다. 당시 박 씨는 탈북에 간첩 혐의까지 더해져 1년 넘게 비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약 1년 3개월 뒤 감옥에서 풀려난 박 씨는 여전히 찾지 못한 딸을 찾기 위해 다시 중국 땅을 밟았다가 네 번째로 공안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중국 도문(투먼)에 있는 수용소에 수감되면서 많은 인신매매 피해 여성의 사연을 직접 접하게 됩니다.

  • 탈북 여성들을 상대로 한 중국 내 인신매매,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요?


[박지영 씨] 제가 다시 네 번째로 붙잡혔을 때 도문에 있는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중국 각지에서 붙잡힌 북한 사람이 모였는데, 인신매매로 팔려 갔다가 도망쳐 온 여성들이 잡혀 오기도 하고, 오갈 곳이 없어 다시 북한으로 보내 달라며 자수한 사람, 술집 등에 팔려 가 짐승이나 노예처럼 대접받고, 성매매를 하게 된 북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당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너무나 치욕스러웠습니다.

  • 당시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인신매매 대상이 됐다고 하던가요?


[박지영 씨] 어떤 사람은 속아서 팔려 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정말 살기 힘들어서 스스로 팔려 갔다고도 했는데, 제가 도문 수용소에 수감됐을 때 들은 기막힌 사연이 많았습니다. 엄마와 딸이 같이 팔려 갔던 사연, 그 와중에 엄마와 딸이 헤어지기도 하고, 중국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중국 남편의 친인척들이 자신을 노리개 취급하고, 이를 견디다 못해 뛰쳐나왔다는 이야기 등 그곳에 온 북한 여성들의 끔찍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뒤에도 탈북자에 대한 당국의 엄격한 처벌이 두려워 피해 여성들은 인신매매의 실체는 물론 피해 사실도 제대로 알릴 수 없었습니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 여성들이 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는 더 기승을 부렸지만, 이를 근절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노력은 미미했습니다.

//Illustration-Rebel Pepper

박 씨는 이런 북한 당국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털어놨습니다. 듣기 좋은 선전과 달리 자국민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무능력에 실망감은 커졌고, 이는 훗날 다섯 번째 탈북을 시도한 계기 중 하나가 됐습니다.

[박지영 씨] 북한의 주체사상, 즉 ‘사람이 제일이요’,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요’, ‘세상에 부럼없이 사는 나라요’ 등 모든 좋은 말을 다 쓰는데, 실제로 북한 여성들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부모 형제와 헤어지고, 어디에 있는지 행방도 모르고, 그렇게 물건 팔리듯 팔려나갔습니다. 또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살면 좋겠지만, 얻어맞고, 마치 개처럼 줄로 묶어 놓기도 하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과연 사회주의 나라가 이런 것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훗날 이 사실을 책으로 써서 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하고 소름이 다 돋죠.

최근(2019년) 영국의 민간단체인 ‘코리아미래계획(Korea Future Initiative)’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 여성의 60%가 중국에서 인신매매에 따른 성노예로 팔리고 있고, 피해 여성의 대부분이 10대 초반에서 20대이며 이들을 앞세운 성매매 시장의 규모가 연간 1억 달러가 넘습니다.

미국 국무부 역시 올해 발표한 ‘2020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을 인신매매 실태가 최악인 ‘3등급(Tier 3) 국가’로 지정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인신매매 피해 방지나 근절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으며 기본적인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로써 북한은 18년 연속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박 씨가 20년 전 직접 경험했고 들었던, 탈북 여성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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