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① 유해 수습 96%, 기적 같은 귀향

캔자스-박수영, 김구슬 parkg@rfa.org
2021-10-05
Share
[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① 유해 수습 96%, 기적 같은 귀향 카폰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관이 위치타 성당으로 입장하고 있다.
/RFA Photo

앵커: ‘한국전 예수’라 불리는 에밀 카폰(Emil Kapaun) 신부가 지난 9월 29일, 그의 고향인 캔자스 주 위치타에 영면했습니다.

그의 생애가 미친 영향력도 그렇지만, 유해 발굴부터 신원 확인까지 과정이 사실상 기적과 같다는 미 국방부 당국자의 설명은 그의 귀향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카폰 신부의 유해 확인과 귀향이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장례식 현장에 다녀온 박수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수습된 카폰 신부의 유해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되기까지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국전의 대다수 전사자가 시신이 손상되기 쉬운 압록강 근처에 묻혔고, 카폰 신부도 압록강 인근 합장묘지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카폰 신부로 추정된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됐지만, 2년에 걸친 분석 끝에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인물로 결론 난 적도 있었습니다.

성 미카엘 성당 소속 교구장 대리인 존 호즈 신부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앙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의 유해가 발견될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존 호즈] 우리는 유해 송환에 대한 희망을 거의 포기했었습니다. 제가 카폰 신부의 삶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은 카폰 신부가 합장묘지 중 한 곳에 묻혔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2019년에 발굴된 무명 용사의 유해에서 카폰 신부의 유전자(DNA)를 포함한 쇄골과 치아 등 5개의 증거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과 일부를 제외하곤 전체 유골의 96%가량이 수습됐습니다.

카폰 신부의 장례식에 참석한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DPAA)의 켈리 맥키그 국장은 이날 RFA에 “50년이 훌쩍 넘은 전사자 유해가 이토록 높은 수습률을 보인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며 “기적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켈리 맥키그] 수습된 유골들이 거의 완전한 뼈대를 이룬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온 유골의 경우, 유골들이 일방적으로 넘겨졌든, 우리가 수습했든 간에, 유골들이 파편들로 쪼개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카폰 신부의 유해는) 정말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맥키그 국장은 “이제서야 카폰 신부 유해가 확인돼 유족에 인도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며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장례 미사에 참석한 캔자스 주민 제인 조지 씨도 카폰 신부의 유해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 것은 기적과 다름없다며 감격해 했습니다.

[제인 조지] 저는 카폰 신부의 대부분 유해가 수습된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부 뼈나 조각 같은 것만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funeral_mass.jpg
카폰 신부의 장례 미사가 열린 허트맨 대강당 앞, 재향 군인들이 일렬횡대로 서 있다./RFA Photo


카폰 신부가 지역 사회에 끼친 영향

캔자스의 수도 토페카로부터 2시간가량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위치타에는 지난 9월 29일에 거행된 카폰 신부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영예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받았고, 지난 7월 27일 한국에서 개최된 '유엔군 참전의 날' 행사에서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것처럼 그는 고향인 캔자스 위치타에서도 영웅이었습니다.

제인 조지 씨는 카폰 신부의 일생과 그의 유해 발굴 과정을 그린 책 ‘종군 신부 카폰 (The Miracle of Father Kapaun: Priest, Soldier and Korean War Hero)’을 읽었다며 카폰 신부가 주변 동료와 전우들을 보살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장례 미사에 참석한 캔자스주 방위군 마이크 버나디 씨도 이날 RFA에 “그가 전우들에게 보여준 용기와 애민 정신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그의 영향력이 더 멀리 뻗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 버나디] (카폰 신부가 남기고 간 정신은) 한 단어로 잘 요약되어 있었는데, 그 단어는 이타심 (selfless)입니다. 카폰 신부는 도움이 필요한 전우를 돕는 것을 멈추지 않던 이타적이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국가와 신에 헌신했고, 놀라운 희생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카폰 신부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카폰 신부의 이름을 딴 ‘카폰 카멜 천주 고등학교 (Kapaun Mt. Carmel Catholic High School)’에 재학 중인 제이콥 니구옌 씨는 카폰 신부의 이야기가 본인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이콥 니구옌] 카폰 신부는 (저희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특히 저는 카폰 신부가 동료 군인들을 위해 한 일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카폰 신부를 대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날 카폰 신부의 장례 미사에는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장례 미사 이후 마차 운구식까지 참석했던 셰난 캘리 씨는 RFA에 “젊은 세대들이 한 전쟁영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직접 장례식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카폰 신부의 끼친 영향력에 감탄했습니다.

뉴먼 대학의 교무처장이자 신부인 아담 그렐린저 씨도 카폰 신부의 애민 정신은 천주교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갔다며 이번 장례 미사는 카폰 신부를 기리고 추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담 그렐린저] 카폰 신부의 영향력은 아주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복무한 카폰 신부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을 변호하고 그들을 돌본 카폰 신부의 용기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카폰 신부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쳐 누구든 관계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하러 온 것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유해에 남아있는 카폰 신부의 헌신과 사랑

위치타 교구의 칼 켐 주교는 이날 장례식장에서 카폰 신부의 유족인 조카 레이 카폰 씨와 함께 하와이주에서 개최한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에 참석해 카폰 신부의 유해를 직접 만졌던 순간을 회상했습니다.

켐 주교는 유해에 아직도 카폰 신부의 지혜와 용기, 사랑이 묻어있었다며 카폰 신부를 애도했습니다.

[켐 주교] 카폰 신부의 유해 중 일부를 조심히 만지는 것이 허락됐을 때, 그의 생전 사진처럼 그의 얼굴에서 자상하고, 조용하지만 강한, 성령과 덕이 있는 형제이자 친구, 그리고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 평온함과 용기, 위로를 불어넣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뿐 아니라 그의 생애를 통해 주변에 사랑을 베풀었던 카폰 신부는 장례 미사를 끝으로 위치타 대성당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지만, 그를 기리는 추모객들의 마음과 삶에 변함없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또 카폰 신부의 장례 미사에 위치타 주민들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추모객들로 붐비는 모습에서 그의 희생정신과 사랑이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