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참여로 포장된 강제노역에 북 주민 고통
2021.07.21
앵커: 최근 북한이 자력갱생을 앞세우면서 주민들의 노력동원을 거듭 독려하고 나섰습니다. 자발적 참여로 포장된 이같은 북한 당국의 노력동원 탓에 북한 주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장시간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북한 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자발적 노동 동원”의 실태를 파해쳐 봤습니다.
북한, 무언의 “자발적” 노동 강요
“제집 쌀독이야 좀 비면 뭐라나요. 하지만 나라의 쌀독이 비게 되면 정말 큰일이에요…(중략).”
북한 관영매체가 최근 (7월21일) 공개한 한 협동농장 작업반 반장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 매체는 그녀를 ‘참된 애국 농민’의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들이닥친 무더위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황해도 지역 농민들뿐 아니라 공장과 기업 근로자들 그리고 인민반 구성원들까지 자발적으로 농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앞서 지난 5월 80명의 고아가 당의 사랑에 백만분의 일이라도 갚겠다며 탄광과 농촌 등에 필요한 막노동에 자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지난 해 9월 태풍으로 북한 전 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을 당시에도 평양 노동당원들이 자발적으로 각 재해지에 나가 수해복구 작업에 나섰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 모인 평양 당원 1만2천 명은 환호 속에 버스에 올라 태풍 피해를 입은 함경도로 떠났습니다.
[평양 노동당원] 김정은 동지의 호소를 피 끓는 심장으로 받들고 태풍 피해 복구에 용약 돌출하자.
북한 매체들은 약속이나 한듯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력동원에 참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일까? 북한 전문가들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당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문성희 박사는 북한 당국이 당을 위해 희생하는 당원들을 보여주면서 북한 주민들이 본받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희]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은 하나의 북한식 교양 방법이라 할까요. “국가는 피해자들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한 측면이 있고, “평양 당원들처럼 하라”는 압박이기도 하지요.
미국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창도 북한 당국이 자발적으로 일할 것을 주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이제 그들(북한 주민들)은 자원봉사를 하라고 강요받고 있습니다. 봉사활동과 애국활동을 명령받은 것입니다. 북한이 그들에게 노역에 참여하라고 할 때 왜 그들이 기꺼이 그래야 하는 건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이 질문을 하면 큰 일 나기 때문이죠. 또 북한 당국은 노역에 참가하는 것이 애국이고 자원봉사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발적 노동” 핑계로 무분별 노동 착취
자발적인 참여를 가장한 강제 노력동원에 내몰리고 있는 건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국의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밝혔습니다.
이 단체가 최근 (5월5일) 공개한 2020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한 탈북자는 “미성년자였지만 새벽부터 17~18시간 동안 감시를 받으며 농촌에서 노동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다른 탈북자도 “10~11살 정도부터 졸업할 때인 18살까지 매년 여름과 가을에 농촌 동원을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강제 노력동원 관행은 최근 (7월13일) 북한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유엔 회의에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화상으로 이뤄진 유엔 고위급 정치 포럼(HLPF)에서 송한나 북한인권정보센터 국제협력디렉터는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에게 노동력 착취 근절을 촉구했습니다.
[송한나] 북한은 취약계층을 보호하기는 커녕 자력갱생이라는 이름 하에 광산 노동에 어린이들을 동원하고 정치범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적 차별을 철폐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북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앞서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유엔에 제출한 북한인권 관련 보고서를 통해 “농업, 도로 건설 등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은 70~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터로 나가야 한다”고 폭로했습니다.
보고서는 “15일 이상 근무지에 참석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되고 실직 상태이거나 직장에 다니지 않는 주민들은 강제 노동을 시키기 위해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노역에 필요한 자원도 숙식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주민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의 강제 노력동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공급체계가 붕괴된 상황 아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 당국은 현재 주민들에게 강제 노역은 요구하면서 지원은 않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래그 스칼라튜] 김일성 주석 시대에는 민중 동원과 강제 노동 때 당으로부터 지급되는 자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과 김정은 체제 하에는 민중 동원과 강제 노동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원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이를 스스로 찾아내고 얻어내야 합니다.
문성희 박사는 특히 부족한 농촌 일손을 보완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멀리서 오는 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야 하는 농민들에게도 부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성희] 모내기 같은 것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하게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동원된 학생들이 모내기하면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것도 있지요. 그런 것은 농민들이 다시 고쳐야 하니까 오히려 부담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북한에 있을 때) 들어본 적이 있어요.
미국 국무부는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북한이 자국민들을 착취하고 자원을 빼돌려 불법 핵 및 탄도 무기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국무부는 이 달 초(1일) 발표한 2021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북한의 노동자 대부분이 비자발적으로 노역에 참여하고 있다며 북한 당국이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의 70~90%를 착취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식량 배급 체제가 붕괴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생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데 더해서 강제된 노동에는 순응해야 하는 이중고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기사 작성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 기자;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