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의 불편한 진실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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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의 불편한 진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단둥의 국경세관에서 무역상들이 물품을 북한으로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네.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사회주의 북한에서 돈을 많이 벌어봤던 탈북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에는 이것이 없어서 돈을 벌 수 있었다’라고 하거든요. 그것이 무엇인가요?

[김혜영 씨] 네. 북한에는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가 없어서 돈을 벌고 모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무역일꾼으로 일하면서 돈도 벌어보고, 한국에서 작은 규모의 사업도 해 보니까 그 차이를 더 확실히 알게 됐는데요. 오늘은 북한에서 돈을 벌고 모을 수 있었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 '북한에는 세 가지가 없어서 돈을 벌고 모을 수 있었다'라는 내용이 매우 궁금해지는데요. 세 가지 중의 첫 번째는 무엇인가요?

[김혜영 씨] 우선 북한에서는 정확한 경제 관념이나 체계, 전산화 등이 잘 안 되어 있어서 돈을 벌고 모으기 쉬웠는데요. 쉽게 말해 제가 무역일꾼으로 일할 당시에는 무역이나 장사에 관한 체계적인 규정이나 정확한 국가 통계가 없었습니다. 주먹구구식이 훨씬 더 많았죠. 공식 무역도 국가에서 지정한 것 외에는 전산화가 안 돼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무역하는 사람들이 무역와끄(허가증)를 만들어 문서처리만 하고, 할당량 이외의 것은 개인 장사로 하거든요.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통제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 무역이나 장사를 해서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다 내 돈이 되는 겁니다.

- 무역일꾼들이 무역와끄를 받아서 거래를 하지만, 이를 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것으로 개인 장사를 한다고 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김혜영 씨] 무역와끄로 거래할 수 있는 품목들이 많아도 해당 물건이 없으면 다른 무역회사와 합작해 무역와끄를 돌려가면서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면 남는 무역와끄가 생기는 거죠. 그러면 이를 이용해 무역일꾼 간판을 내세워 개인 장사를 할 수 있는데요. 무역와끄에 해당하지 않는 금속이나 골동품, 귀금속 등을 찾는 주문이 오면 이를 취급하는 중국 상인들과 개인 밀수를 통해 거래하는 겁니다. 그것은 온전히 내 돈이 되는 거죠. 이처럼 북한이 체계적이지 않고 빈틈이 많기 때문에 이를 잘 이용하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 명확한 경제 체계가 없는 것이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첫 번째 환경이었다면, 두 번째는 뭘까요?

[김혜영 씨] 은행과 같은 금융 기관이 없는 것도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됐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도 은행이 있기는 하죠. 평양이나 지방에서도 누구나 통장을 만들 수 있고 저축도 할 수 있지만, 은행에 돈을 맡기면 나중에 온전히 돈을 찾을 수도 없고요. 그래서 무역일꾼이나 개인 장사꾼들이 스스로 은행이 되는 겁니다. 국가가 할당한 것만 내고 나면 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돈이고요. 그 돈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다른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 개인이 은행 역할을 하면서 내 맘대로 돈을 굴릴 수 있는 겁니다.

제가 1980년대에 은행에 돈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제 돈을 찾으려면 맡긴 돈의 1/3을 주고 찾아야 했어요. 내 돈인데 억울했죠. 또 국가가 돈이 없으니 좀 기다리라고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은행을 믿지 않고 자신이 번 돈은 모두 스스로 관리하게 됐는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 은행이 있어야 경제 활동에 도움이 될 텐데, 오히려 없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김혜영 씨] 다시 말해 금융 거래의 전산화 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돈에 대한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암시장과 같은 지하경제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당국의 눈을 피해 현금 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겁니다. 제가 북한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와 보니까 더 그런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은행에서 대출도 받고, 이자를 내면서 성공한 뒤 갚으면 신용을 잘 지켰다고 해서 다음에 더 큰 기회를 주잖아요. 또 각 은행과 기관들이 전산으로 다 연결돼 있어서 거짓 없이 투명성 있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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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사용 중이거나 개발 중인 전자카드 종류. 북한은 평양 정보기술국 산하 카드연구소가 전자카드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 캡쳐


- 무역이나 경제활동의 명확한 체계, 금융 거래의 전산화 등이 없어서 돈을 벌고 모을 수 있었다면 마지막으로 북한에 없어서 돈을 벌 수 있었던 환경은 무엇인가요?

[김혜영 씨] 바로 세금입니다. 저도 북한에 있을 때 그랬지만, 북한 주민들은 세금이 뭔지 모릅니다. 북한에서는 세금 제도가 없으니까 내가 버는 것은 다 내 돈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한국에서 세금을 걷기 때문에 살기 힘든 것으로 알거든요. 무역하는 사람들도 세금을 내야 하는데, '내가 힘들게 번 돈을 왜 세관에 내야 하나'라는 의식이 강해서 무역도 밀수로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내 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세금이 있어야 그 돈으로 국가 경제가 돌아가고, 나라의 복지와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은 세금도 걷지 않고 모든 것이 무상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거든요. 차라리 북한도 세금을 걷어서 산업 시설과 복지 등에 투자도 하고, 북한 주민들이 더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세금이 없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할당량이 있고, 북한 주민들이 국가에 내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하나의 세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혜영 씨] 그것은 세금이라기보다 착취라고 봐야겠지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내가 번 돈을 국가가 세금으로 착취해간다’라고 가르치거든요. 대신 북한은 ‘세금도 없고, 국가가 인민의 모든 재산과 의료, 교육 등을 책임지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선전하는 것이고요. 또 북한 주민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이 세금 제도를 통해 국가에 어떤 이득이 되고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주민들에게도 경제 관념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얼핏 들으면 명확한 경제 체계나 세금, 금융 거래 등이 없어도 당장 돈을 버는 북한 주민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북한 경제에는 안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과 비교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김혜영] 그렇게라도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좋을 수 있지요. 하지만 체계도 없는 북한에서 개인이 은행의 역할도 하면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살아가야 하니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세금을 안 걷으니까 나라에는 돈이 없고, 그래서 시설 투자나 복지도 없으니까 점점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생활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은행이 없으니까 투자도 안 되고, 돈의 선순환 유통이 안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회도 가질 수 없고요. 결국, 일부 소수만 돈을 벌 고, 노동자나 농민 등 나머지 사람들은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더 안타까운 것은 북한 주민들이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는 건데요. 북한에서 돈을 벌어 본 사람들만이 아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네. 지금까지 '북한에서 돈을 벌 수 있었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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