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세포비서의 생활고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1-04-15
Share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세포비서의 생활고 지난해 9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장마당에 마스크를 쓴 이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최근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당세포비서 대회에서 또 한 번의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대변하는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요. 혜영 씨의 고향인 양강도 혜산시의 현재 상황은 어떻다고 하나요?

[김혜영 씨] 네. 저도 고향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계속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데요. 최근에도 연락해 보니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더 통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나온 이후 탈북민들의 송금을 대행해주는 돈데코(환전상)들을 무조건 단속하고, 그 돈을 받은 사람들도 다 체포하면서 하룻밤 지나고 나면 사람들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동 통제 때문에 옆 동네도 못 가게 하고요. 밀수업자들에 대한 단속도 계속되면서 북․중 국경에는 철조망도 모자라 장벽을 쌓으려 한다는 말까지 들립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도와주고 싶어 중간 브로커에게 물어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양강도에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경비대 한 소대가 무기를 소지하고 중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강도가 공포 분위기라고 합니다.

   - 그만큼 생활고를 통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도 점점 커질 것 같은데요. 양강도 혜산시의 민심은 어떻다고 하나요?

[김혜영 씨]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지금 양강도에서는 시장 활동도 어렵고, 대부분 식료품값이 크게 올라서 김정은 총비서가 말한 것처럼 이미 고난의 행군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다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들 한답니다.

또 중국 휴대전화로 하는 문자 메시지(위챗) 단속을 매우 엄격하게 해서 전화 사용도 어렵기 때문에 저도 요즘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혹시 무슨 일은 생기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도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머니 소식을 들은 지 오래돼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고난의 행군'을 언급할 정도면 실제 일반 주민들이 체감하는 생활고는 훨씬 더 심각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보는데요. 최근 북한 노동당 세포비서대회가 평양에서 열렸습니다. 당세포는 당의 가장 말단 조직이라고 들었는데요. 혜영 씨가 알고 있는 당세포비서는 어떤 직책입니까?

[김혜영 씨] 당세포비서는 말씀하신 대로 당의 말단 비서들입니다. 위로는 초급당이라고 해서 직장이나 회사의 초급당비서들이 있는데요. 이들이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세포비서들은 북한 사회 곳곳에 어느 단위에나 다 있는데요. 당의 방침에 따라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담당 구역인 노동자나 농민들의 생활을 돌보고, 직장 등에서 당과 최고지도부의 지시를 이행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아래 사람들을 잘 이끌어주기도 하고, 상담도 해주고, 고민이 있으면 집에 찾아가 들어주면서 혁명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말단 세포비서들의 역할입니다. 또 그 위의 초급당비서들은 말단 세포비서들이 활동을 잘 할 수 있게끔 이들을 잘 가르치고, 회의를 통해 당의 지시를 선전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세포비서들을 움직이는 역할을 합니다. 

- 당세포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려면 세포비서들이 주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호흡도 잘 맞아야 할 텐데,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민들의 경제활동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분위기였을 텐데요. 그러면 당세포조직도 잘 안 움직이게 되는 거죠?

[김혜영 씨] 당세포비서들도 일반 주민들과 똑같이 밥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당에서 세포비서나 초급 당 비서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없죠. 그러니 오히려 당세포비서들도 회의나 강연 등의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보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세포비서라 해서 남들보다 잘사는 것도 아니고,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기대도 점점 사라지면서 요즘은 오히려 당원이 되지 않는 것을 선호하게 됐죠.

당세포비서들도 주민들을 관리하려면 그들이 우선 잘 먹고 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요즘 북한은 지난 일 년 넘게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이동 통제로 장사도 잘 안되는 데다 물가는 크게 오르고, 주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또 당세포비서들도 경제적으로 어렵죠. 조금 전 말씀 드린 대로 세포비서들은 일반 주민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상담도 해주면서 관리하고 이끌어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당연히 당의 지침을 전달하고 이행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money.jpeg
북한 노동당 최말단조직 대표자 회의인 세포비서대회 참가자들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당세포비서들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세포비서들은 어떤 수단으로 돈을 버나요? 이들도 직접 장사를 하나요?

[김혜영 씨] 당세포비서라 해서 따로 배급이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당세포비서나 초급당비서들은 늘 다른 사람의 모범이 돼야 하지만, 이들도 똑같이 배고프고, 생활고로 힘들죠. 당연히 장사를 해야 먹고 삽니다. 그렇게 해야 밥 먹고, 애들도 키우면서 사는 거죠. 당 세포비서들도 자신의 역할을 하고 싶지만, 일반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먹는 장사부터 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품목의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 당세포비서는 뇌물도 많이 받는 자리라고 하던데요.

[김혜영 씨] 그래도 북한에서 당원이라는 신분이 중요하죠. 당원이 아니면 어디 가서도 졸부대접을 받습니다. 당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세포비서나 초급당비서들의 보증이 있어야 당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뇌물을 건네기도 하고요. 돈이 많은 사람은 아예 돈을 주고 당원증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주민들이 당의 지침을 이행하지 않을 때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이 오가기도 하는데요. 이런 비리들이 적발되면 당원 신분이 박탈되기도 합니다.

- 요즘 북한에서는 당 세포비서들의 위신이 길거리 장사꾼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도 돈이 있어야 인정받는데, 당세포비서들도 생계난에 허덕이니까 주민을 통제할 힘도 없다고 하거든요. 혜영 씨가 북한에 있을 때는 어땠습니까?

[김혜영 씨]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세포비서 당신들은 장사하면서 왜 우리는 못 하게 하냐’라는 거죠. 공장 지배인이나 초급당비서들의 말은 좀 듣지만, 세포비서들은 간부 취급도 안 하고, ‘똑같은 굶는 처지에 누가 누구를 통제하느냐’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혹 당에 입당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포비서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겠지만, 결국 입당은 더 높은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에 세포비서가 할 수 역할도 한계가 있거든요. 때로는 세포비서들이 주민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 총비서가 말단 계급인 당세포비서들의 역할을 강화해야 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요. 글쎄요, 애초 주민들을 따뜻하게 돌보라는 것이 세포비서들의 역할인데, 아마 국경연선에서 있는 세포비서들은 누구도 탈북할 수 없게 감시하는 일은 할 겁니다. 세포비서들이 직책은 낮지만, 주민들과 잘 소통하고 연대하라고 이번 대회를 열었을 텐데요. 정작 북한 주민들은 세포비서들을 우습게 알고 무시하기 때문에, 역할을 잘 해낼지 모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김정은 총비서가 당세포가 비사회주의 현상을 뿌리 뽑는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가능할까요? 

[김혜영 씨] 당세포비서들은 비사회주의를 척결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자기 구역 내 주민들을 늘 감시하고, 통제하고 그들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도 나라가 배급을 주거나 뭘 좀 줘야 통제도 제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세포비서들이 일반 주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데 누굴 감시하고, 비사회주의 현상을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당세포비서들이 더 비사회주의 행동을 할 수 있죠.

비사회주의라고 하면 장사도 단속해야 하는데요. 혹시나 장사하는 물건들을 몰수하지는 않을지. 보위부 눈치도 봐야 하고, 당세포비서의 감시도 피해야 하고, 그러면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북한 주민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인데, 말로만 해온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날이 언제쯤 올지 참 안타깝습니다. 

-네. 북한에서도 신분과 명예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당세포비서의 경제력'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