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국산품 애용의 한계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1-09-02
Share
[돈 버는 재미와 돈맛] 국산품 애용의 한계 평양의 한 실크 공장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REUTERS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북·중 국경 봉쇄가 장기화화고, 중국으로부터 물품 수입이 원활치 못하면서 어떤 품목은 북한 국내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 김정은 총비서가 이번 기회에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있는데요. 생활용품 가운데 중국산 대신 북한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가요?

[김혜영 씨] 네. 말씀하신 대로 북·중 국경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최근에는 국내산(북한산) 물품들이 주로 유통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물품이 잘 들어오지 않고, 또 물건이 있다고 해도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요즘처럼 현금이 부족한 일반 주민들은 국내산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죠. 기초적인 조미료, 예를 들어 간장이나 된장을 비롯해 화장품, 당과류 등은 요즘 국내산이 잘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8월 중순, 한국 해안가로 떠밀려 온 북한 쓰레기를 보면 북한산 유제품과 과자, 과일주스, 치약통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품목들은 여전히 자체 생산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산을 대체할 만한 국내산 품목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김정은 총비서가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려 해도 현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신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혜영 씨] 저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가장 기본적으로 국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겁니다. 물건을 생산할 기본 원자재도 부족하지만, 극심한 전력난으로 공장이 돌아갈 수 없는데, 어떻게 충분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이전에도 북한의 전력난이 심각했지만, 최근에는 더 악화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반 가정에 공급하는 전기는 끊을지언정, 생산시설이나 당·행정기관, 협동농장 등에는 전력을 우선 공급했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부족해 마비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농장에서도 전기가 부족해 펌프 기계를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고요. 그러다 보니, 공장과 농장이 멈춰서고 국내산 생산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또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중국과 무역을 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원자재가 들어오지 못해 할당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고, 책임자가 문책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원자재 수입이 막힌 대부분의 이유는 북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북한이 검열 또는 장군님 지시라며 마음대로 거래를 중단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원자재 수입이 안 됐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북∙중 국경을 봉쇄하면서 생긴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죠.

- 기본적인 원자재, 전력난 등으로 충분한 국산품을 생산해낼 수 없다는 지적을 하셨는데요, 국산품 애용을 가로막는 두 번째 이유는 뭘까요?

[김혜영 씨] 제가 볼 때 2년 가까이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대부분 물자의 조달과 유통이 멈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주민들과 물자의 이동을 철저하게 단속하거나 통제하고 있으니까요. 한 예로 북·중 국경의 봉쇄로 지방에 물건이 부족하니까 일부 상인들은 평양의 마트나 외화상점의 물건들을 지방에 가져다 팔려고 합니다. 평양에는 국내산 물건이 많은데요. 하지만 국경 지역으로 가기 위한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평양행 증명서는 빨간 줄 2개, 국경지역으로 가는 증명서는 파란 줄 2개로 표시되는데요. 이 파란 줄 증명서를 받기가 평양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국내산을 전국으로 유통해 팔려고 해도 운송수단이 부족한 것은 물론, 이동통제를 매우 엄격하게 하기 때문에 국산품을 손쉽고 싸게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 북한에서는 현금 대신 물물교환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이동통제 때문에 어려움이 크겠군요.

[김혜영 씨]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황해도와 같은 곡창지대를 ‘앞지대’라고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공업품을 가지고 가서 식량과 바꾸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를 한 번 가려 해도 전력난 때문에 기차 이용이 매우 어렵고, 자동차로 가려 해도 여러 개의 검문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뿐인가요. 운전사에게 돈과 기름값도 줘야 합니다. 그러니 일반 상인들에게는 남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식량과 바꿔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인데요. 그나마 물건이 있어 물물교환이 가능하다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digestive_medicine.jpeg
북한 염주군고려약공장에서 제조된 한방소화제. /NK News


- 중국산보다 북한산이 더 매력적인 부분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품질이 중국산보다 좋다거나 가격이 싸서 중국산보다는 북한산을 선호하는 제품이 있을까요?

[김혜영 씨] 북한에서 만든 옷이나 당과류, 식료품 등의 품질은 중국산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중국 제품처럼 계절별, 종류별로 가짓수가 다양하지 않은 것이 한계죠. 옷 같은 경우 북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국산 의류보다는 국내산 천을 사다가 재단을 해서 맞춰 입는 거죠. 또 북한산은 중국처럼 가짜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국내산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국산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있기 때문이죠.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 다양한 중국 상품들이 들어올 테고, 사람들의 수입과 선호도에 따라 중국산을 구매하겠지만, 무조건 북한산보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 요즘처럼 경기침체로 현금 수입이 급감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진 것도 국산품을 애용할 수 없는 또 다른 한계가 아닌가 싶은데요.

[김혜영 씨] 맞습니다. 최근 국경지역의 시장이 조금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 중간 브로커로부터 혜산시의 시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신의주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동안 가정마다 현금 수입이 많지 않아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물가도 많이 오르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북한산이 중국산보다 가격이 싸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요. 돈주나 중산층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 기회를 엿보고 돈을 벌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반 주민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현금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해 지금도 식량을 구매하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국산품을 애용함으로써 자력갱생을 실현하자는 김정은 총비서의 구호와 목표에 대해 북한 주민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김혜영 씨] 제가 볼 때 김정은 총비서가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나름 애를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 동영상에 소개된 평양 내 백화점에 국내산 식료품과 화장품, 과자 등을 판매하고, 포장 수준도 향상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민들이 국산품을 애용할 수 있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만, 아직은 평양에만 국한된 것 같고, 지방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하기까지는 먼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또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서 제조업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소비재를 수입하는 대신 생산을 장려하고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전국적으로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려면 모든 주민이 손쉽게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북한의 여건은 그렇지 않죠. 원자재와 전력난 등으로 공장 운영이 어려워 충분한 국내산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열악한 운송수단과 이동통제 때문에 국산품이 전국으로 유통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또 국산품을 구매할 수 있는 주민들의 구매력이 매우 저하돼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요. 말로만 ‘국산품 애용을 통한 자력갱생’을 외치지 말고, 그렇게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대책이 뒤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도 봅니다.

- 네. 오늘은 ‘국산품 애용의 한계’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