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만연한 밀수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10-20
Share
nk_women_b 북한 신의주시의 채하시장에서 장사하는 북한 여성.
사진 - 연합뉴스 제공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김혜영 씨,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북한 주민들이 돈 버는 재미를 알게 된 전반적인 배경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이번 시간부터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먹는 것, 또는 집에서 키운 채소를 파는 것으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점점 장사 품목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김혜영 씨] 네.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의 모든 공장이 다 멈춰서면서 처음에는 생필품부터 경공업 부문까지, 예를 들어 치약, 칫솔부터 시작해 땔감, 의류, 신발, 화장품, 그리고 집 짓는 자재들까지 모든 것들이 다 돈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나부터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점점 대범해졌는데, 그때 중국과의 밀수가 대대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중국에서 요구하면 뭐든 다 팔 수 있었는데요.
비교적 잘 사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은밀하게 중국과 밀수를 시작했는데, 잠시 뒤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밀수 품목은 셀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며칠 전에 북부 지방에 연락해보니 요즘은 저녁 6시부터 통행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누구도 만나지 말라고 했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돼 밀수를 못 하니까 사람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졌고,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 특히 중국의 사사여행자, 다시 말해 중국에 사는 친척들이 북한에 물건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장사를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물건을 팔았고, 어떤 장사가 돈을 잘 벌었나요?

[김혜영 씨] 네. 맞습니다.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올 때 북한 세관에서 검열을 하는데요. 중국 제품은 들어올 수 있어도, 한국 제품이나 미국 제품은 무조건 회수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가지고 들어온 물건들은 중국산 쌀이나 밀가루, 소시지 같은 식료품이나 소 힘줄 같은 술 안줏거리, 사탕, 과자, 그리고 의류품(옷, 속옷, 양말, 스타킹, 머릿수건, 겨울솜 동복, 이불 등)들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이런 것들에 대한 수요가 많으니 중국의 개인 무역일꾼들이 아예 북한 내 국경 지역에 자기 이름으로 상점을 냈고요. 또 물건을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백화점까지 생겨나면서 나중에는 가방, 책, 노트 등 학용품부터 전자제품까지 없는 것 없이 장마당에서 팔았습니다. 또 약품도 팔았는데요. 예를 들어 ‘정통평’이라고 하는 중국 약은 감기나 관절 환자들에게 좋았던 것 같고요, 자전거 같은 것은 개인 밀수로 들여왔습니다.

- 그러니까 당시 중국 사사여행자들이 북한에 갖고 들어 온 물건들을 북한 주민이 받아서 다시 팔았다는 말씀이시죠?

[김혜영 씨] 네. 그렇죠. 그러니까 중국의 사사여행자들이 북한에 들여온 물건들을 산 뒤 다시 시장이나 장마당에서 팔게 된 거죠.

- 혜영 씨도 북한에 계실 때 일본에 있는 친척으로부터 화장품을 들여와 팔아 본 경험이 있다고 하셨는데, 당시 장사가 잘됐습니까? 수익은 얼마나 됐나요?

[김혜영 씨] 네. 그랬습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일본에서 물건들이 차로 몇십 박스씩 들어왔어요. 당시 일본에 살던 저의 고모, 삼촌들이 매년 북한에 올 때마다 옷부터 이불, 화장품,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을 가져왔어요. 그때 저희 어머니가 화장품을 팔았는데, 처음에는 파운데이션 장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유명 회사의 BB크림이었는데, 당시 북한 사람들에게는 제일 좋은 화장품이었습니다. 주로 예술인들, 간부 집 여성들이 많이 사서 썼습니다. 그때 북한 돈으로 백 원이 넘었는데, 백 원짜리가 처음 나왔을 때니까 매우 비싼 가격이었죠. 그저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그럼 저희 어머니는 그 돈을 다시 엔화로 바꿔서 이윤을 남기는 장사도 했습니다.

- 지금도 북한에서 중국, 한국 제품에 대한 인기가 좋다고 하잖아요. 중국산, 한국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돈을 잘 벌었나요? 또 그런 물건은 어디에서 받습니까?

[김혜영 씨] 맞습니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중국산보다 한국산 옷이나 화장품을 더 선호하죠. 무역 대방들을 통해 한국에 사는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의류나 화장품들을 받으면, 상표도 다 떼고 화장품 용기도 바꿉니다. 그래서 한국산이라는 것을 속이는 거죠. 그래서 밀수나 무역을 통해 북한으로 들여가는데요. 장마당에서도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놓고 팔지 못하고, 은밀하게 팔고 있습니다.

- 또 외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장사도 있었다면서요?

[김혜영 씨] 일본에서 온 귀국자들도 살기 막막했죠. 당시 북한에서 우리 집이 좀 넓어서 어머니가 귀국자 몇 명과 함께 ‘귀국자 식당’을 차린 적이 있습니다. 간판은 없었고, 사람들이 ‘귀국자 식당’에 가자고 하면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처음 먹어보는 커피도 타주고 그랬는데, 북한말로 ‘가마치 물’ (누룽지 물) 같다고 했습니다. 한번 맛본 사람들은 계속 오고 줄도 서야 했죠.
그때 ‘이나기시밥(두부밥)’부터 스시밥, 카레밥, 돈가스 등을 우리 집에서 시작했는데, 손님이 많아서 돈을 많이 벌었대요. 그런데 곧 그만뒀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냉장고가 없으니까 오후 장사만 했거든요. 그리고 내일 음식 장사를 위해 고기를 삶아 밖에 놓아두면 밤새 도둑을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영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도 일본 음식, 외국 음식을 파는 창광 음식 거리가 생겼는데, 인민반마다 상품권이 몇 개씩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창광음식 거리에 나가 온 가족이 외국 음식을 맛보는 날이기도 했죠.
지금은 누구라도 식당을 개업하고, 목욕탕도 개인이 운영하고, 집까지 판다고 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다양하게 돈을 벌게 된 겁니다.

- 외국 제품을 북한에 들여와 파는 것도 돈이 됐겠지만, 반대로 북한 물건을 외국에 파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물건을 팔았습니까?

[김혜영 씨] 제가 무역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주로 약초나 일본 중고 자동차를 중국에 팔았습니다. 또 희금속에는 여러 가지 금도 있고, 보석도 있었고요. 예술 작품들도 팔았습니다. 한번은 수예를 놓아 만든 ‘최후의 만찬’의 예수님 모습을 대형 작품으로 요구하는 외국인들도 있었습니다. 무역 품목은 무역회사마다 달랐죠.
개인들의 밀수로는 당연히 니켈이나 동선, 금, 희금속들과 약재들이 기본이었고, 풍산개까지 팔았습니다. 골동품도 팔았는데요, 중국 상인들이 이런 골동품을 원한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은 그 가치를 모르니까 헐값에 팔기도 했습니다. 골동품은 상품마다 가치가 다르지만, 고려자기나 이조자기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사고파는 사람들 마음이었어요. 적게는 몇백 달러에서 좋은 고려자기는 몇만 달러씩 받고 팔았습니다. 주로 중국과 물물교환을 통해 서로를 이용하면서 개개인의 장사가 된 겁니다.
밀수는 뭐가 됐든 다 불법이지만, 나라가 못 먹고 못 사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네. 북한 주민이 돈버는 재미에 눈을 뜨면서 장사 품목이 어떻게 다양화됐는지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 (0)

전체 질문 보기.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