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의 연말특수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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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의 연말특수 북한 평양시 서성구역 종합식당가에서 판매하는 다채로운 설 음식. 떡국, 평양온반, 수정과를 비롯해 꿩고기 쟁반국수, 타조불고기, 양불고기 등이 있다.
/연합뉴스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네.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김혜영 씨, 안녕하세요. 어느새 연말입니다. 연말연시는 상인들에게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요. 연말에 북한 시장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김혜영 씨] 북한에서는 연말이 되면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가정마다 곧 다가올 새해를 맞아 설날을 잘 보내고 싶어 하죠. 북한 주민들은 설날에 잘 먹고 잘 지내야 그해 일이 잘 풀리고 운이 따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연말이 되면 설날 준비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몰리고요. 그만큼 사람들의 지갑도 많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럼 연말에 시장에서는 어떤 품목, 어떤 장사가 잘되나요? 

[김혜영 씨] 아무래도 쌀입니다. 설날에는 떡을 해 먹거든요. 그래서 찹쌀이나 입쌀을 많이 사고요. 사탕과자나 육류, 수산물, 과일 등도 잘 팔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것이 술입니다. 명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거든요. 그리고 각종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선물은 주로 옷이나 양말, 아이들에게는 학용품이죠. 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고요. 아무래도 겨울이다 보니까 땔감이나 장갑, 방한화 같은 방한용품 등도 잘 팔립니다.  

     - 북한에서도 연말은 돈을 버는 특수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럼 이때를 노리고 장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나요?

[김혜영 씨] 물론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설 명절에 제일 잘 팔리는 것이 술입니다. 그래서 연말 특수를 노리고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 종류는 다 다르죠. 제일 도수가 낮은 농태기부터(일반 주민들이 만들어 먹는 밀주) 도수를 높여 색깔과 향을 넣은 뒤 멋진 병에 담아 상표를 붙이고, 공장 제품처럼 상자에 담아 파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돈을 비싸게 받고 팔기도 하죠. 비싼 술은 설날에 처가댁이나 시댁에 갈 때, 또는 간부집에 선물할 때 사서 가는 겁니다.

     - 그렇다면 평소에는 장사하지 않은 사람들도 연말연시에는 장사에 나선다는 말씀이시죠?

[김혜영 씨] 그렇죠. 평소에는 장사를 잘 하지 않던 사람들도 설날을 앞두고 여러 가지 떡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나오고, 술도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때 한몫 크게 챙겨서 많은 돈을 벌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연말이 되면 공식 시장이 아닌 비공식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붐빕니다. 아무래도 공식 시장에서 자릿세를 낼 수 없는 빈곤층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들은 시장 입구부터 두 줄로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부터 온갖 품목을 들고나와 파는데, 그 줄이 몇십 미터씩 됩니다.

     - 그럼 이들에 대한 단속도 심해질 수 있겠는데요. 모순적입니다만, 단속하는 사람들에게도 연말이 특수가 될 수 있겠군요.

[김혜영 씨]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시장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단속 대상이죠. 시장 안에서 자릿세를 내고 장사하라는 것이 당국의 지시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장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나비 장사꾼'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단속원들이 나와서 장사하지 말라고 호각이라고 불면, 장사할 물건을 담은 바구니를 안고 저쪽으로 '와~' 밀려갔다가, 다시 단속하면 이쪽으로 또 '와~~' 밀려오고, 그 모습이 나비 같다는 건데 그렇게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단속원들도 이같은 연말이나 연시에 단속을 많이 하면 할수록 먹거리나 술 등을 몰수할 수 있고, 그것으로 자신들도 명절을 지내기도 하니까 그들 나름대로 특수라고 할 수 있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상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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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나진 지역의 장마당 모습                                                      /NED 제공


     - 일반 상인들도 그렇지만, 큰돈을 굴리는 돈주들도 연말 특수를 노릴 것 같은데요. 취급하는 품목이나 규모도 남다른가요? 

[김혜영 씨] 그렇습니다. 돈주들도 연말을 노려 장사 품목을 더 늘리거나 값을 비싸게 높이기도 합니다. 북중 무역이나 밀수가 잘 될 때는 많은 종류의 먹거리나 생필품을 대규모로 들여와서 중간 상인들과 시장에 풀고, 자신이 관리하는 시장 매대에서도 판매하니까 그만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북중 국경이 봉쇄된 이후부터 밀수나 무역이 거의 안 되니까 매우 힘든 시기일 겁니다. 요즘은 일반 상인이나 돈주 모두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올해는 지난 1월 이후 북중 국경의 봉쇄로 무역이나 밀수가 없다 보니 연말 특수를 누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혜영 씨는 요즘 북한 주민에게서 들으신 소식이 있나요?

[김혜영 씨] 네. 저도 종종 북중 국경지방의 소식을 듣곤 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국경연선이 막혀서 무역도, 밀수도 못 하니까 사람들이 힘들어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배고파 굶어 죽는 사람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올해는 연말 특수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 침체가 심각하고, 특히 현금 수입이 없어서 사람들이 물건을 못 사거든요. 시장에 물건이 있으면 뭐 합니까. 돈이 없어서 사질 못하는데요. 그러니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올해는 연말 특수고 뭐고 다 틀렸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연말연시에 장사가 잘되고 바쁜 이유는 그만큼 가족과 친척끼리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마지막으로 혜영 씨가 북한에 있을 때 기억하는 연말연시의 모습은 어땠는지요?

[김혜영 씨] 설날이면 우선 고운 새 옷으로 사 입었고, 설 전날에는 온 친척들이 모여 앉아 만두도 만들고, 떡도 하고요. 고기도 많이 삶고, 농마국수도 눌러 놓은 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창고에 얼려 놓았다가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꺼내 먹기도 했습니다. 사탕이나 전 같은 간식도 많이 먹었고요. 또 삼촌이나 고모가 조카들에게 설 명절 선물도 주고, 아이들은 세뱃돈 받은 것으로 학용품도 사고, 그렇게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연말연시가 되면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주변에 선물도 하면서 풍성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러고 보면 북한에서도 연말연시는 돈을 쓰는 시기였고, 상인들에게는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때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네. 지금까지 북한의 '연말 특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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