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 미북∙남북 정상회담 소식 몰라”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8.03.12
nk_lecture_b2 지방 도시에서 진행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정치학습 집회.
사진 제공-아시아프레스

앵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에 나서기로 했지만, 정작 북한 주민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정상회담의 의제가 ‘비핵화’가 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김정은 체제의 근간이 되는 ’10대 원칙’에 명시한 ‘핵보유국’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 하나의 이유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오는 4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데 이어 5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지만, 정작 북한 주민에게 이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북한 현지 시간으로 12일까지 북한의 관영 언론은 미북∙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소식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 주민도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내용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도 미북∙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 접촉한 3명의 북한 주민이 모두 정상회담 소식을 모르고 있으며 북한 주민에 대한 정치학습이나 선전 등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북한 정부가 스스로 자기 입장을 표명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북한 내부 협조자에게 물어봤더니 며칠 사이에 3명과 접촉했는데 남북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중요한 정책을 북한에서 내세울 때는 반드시 주민에 대한 정치 학습을 하지 않습니까? 아직 주민을 대상으로 교양 사업도 하는 것 같지 않고요, 공식 국영 매체에서도 하나도 언급이 없습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방향이나 발표에 대한 정리가 아직 안 돼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그동안 주민을 대상으로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은 정의의 보검', '우리는 핵 강국' 등의 주장을 되풀이해왔는데 미북∙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어떤 견해를 밝힐 지 또 이를 북한 주민에게 어떻게 선전할지를 고민 중일 것이란 설명입니다.

한국 통일부도 1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입장 정리에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고, 한국 전문가들도 핵 보유를 강조해 온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다룰 비핵화 의제를 주민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난감한 상황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병순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의 설명입니다.

[이병순 수석연구위원] (정상회담은) 비핵화가 핵심 의제입니다. 지금 북한이 이를 내부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상회담을 보도하려면) 어떤 주제로 한다는 내용이 한 줄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밝히기 힘듭니다.

이시마루 대표도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고려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매우 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의 기본이 되는 10대 원칙에 ‘핵보유국’이라고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쉽지 않은 것은 2013년에 ‘당의 유일적영도체계 10대 원칙’에 핵보유국이라고 썼어요. 10대 원칙은 북한 체제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고의 강령이기 때문에 이것은 바꾸려면 정말 체제의 성격 자체를 바꿔야 하니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앞으로 비핵화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결심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한편,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고위급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했음에도 주민들의 사상 투쟁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인민반 회의에서 보안원들이 “남북 간에 대화는 하지만, 적들의 흉계에 속지 말 것”을 호소했으며 “한국과 미국이 늘 전쟁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적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항상 전투태세를 갖춰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미북∙남북 정상회담을 결정한 이후에도 북한의 언론매체는 미국에 대한 비난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어 대화 국면에 나선 북한의 의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직 북한 내부에서 정리가 안 된 상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북한 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최대의 적이었고,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적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적대의식, 경계의식을 선전하면서 내부 결속을 해왔다는 부분이 강하죠. 그런 상대와 화해를 시도하는 점, 30년 동안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개발한 핵과 미사일을 간단히 포기해도 되는가?의 문제도 있고, 국내 외에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라는 점에서 여러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김정은의 측근 중에는 미국을 믿어도 되느냐? 위험하지 않겠느냐? 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정작 북한 주민은 핵과 미사일에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로 경제 상황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핵과 미사일을 포기해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확산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가운데 북한 당국으로서는 미북∙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의 권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비핵화'라는 의제를 국내 외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란 게 대다수 전문가의 관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