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을 넘은 한류, 북한을 깨우다] ②재미∙멋에 매료…모르면 바보취급

워싱턴-노정민, 한덕인 nohj@rfa.org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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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넘은 한류, 북한을 깨우다] ②재미∙멋에 매료…모르면 바보취급 평양의 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 한 여성이 겨울 코트를 입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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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90년대 이후 20년 가까이 북한에 확산한 한류 문화는 북한 사회와 주민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수익 창출은 물론,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게 됐습니다. 또 탈북민 가족이 전하는 소식은 한류로 접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더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북한 사회가 한류의 영향에 젖어 들었지만, 오랜 기간 받아온 체제 선전과 사상 교육, 각종 사회적 제한 등은 한류 확산에 변수로 꼽히는데요.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특별 기획 ‘분단을 넘은 한류, 북한을 깨우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한류가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과 한계, 잠재력 등을 노정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의 옷차림과 말투에서 자유 느꼈다”

2019년에 탈북한 박진희(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씨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제품을 사용하면서 한국에 대한 동경심이 생긴 경우입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옷차림과 말투 등을 통해 자유를 느꼈고, 이는 곧 한국에서 살아보고픈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열망이 현실이 되어 한국 땅에 와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꿈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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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씨(가명)] 북한에서 한국 화장품, 비누 등을 사용하거든요. 저도 북한에서 사용해봤는데, 일단 제품이 좋은 거예요. 북한이나 중국산과 비교해도 일단 제품이 정말 좋고, 북한에서 봤던 한국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는 ‘저것이 다 진실일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보이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한국에 대해 잊지 않을 것 같고, 갈망하면서 한국에 오고 싶어 할 것 같아요.

박 씨처럼 한류 문화를 많이 접하고 유행을 따라 하는 북한 주민들 가운데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북한 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는 것도 한류의 영향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탈북민 가족들이 한국 생활을 전할 때마다 이미 한류 문화를 통해 간접 체험한 한국의 좋은 점을 더 확신하게 되고, 이는 북한 주민들의 생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고 탈북민들은 전합니다.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탈북 여성 노수현 씨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노수현 씨] 북한에서 두세 집 건너 한 집이 탈북해 한국에 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전화도 하고, 돈도 보내주니까 북한에서는 이전 90년대 중반까지 알았던 남한 사회와 지금이 다르다는 것을 다 알죠. 또 한국에서 음식이나 옷차림 등이 유행하면 북한에서도 이를 모방하면서까지 유행이 된다는 거죠. 늘 그랬습니다. 음식이나 한류 등이 북한 사회에는 큰 영향을 주는 거죠.

북한 연구를 위해 많은 탈북민들을 심층 면접했던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한류 문화에 관해서는 오히려 탈북민들이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경험담을 소개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 등 20년 가까이 한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이미 한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안경수 센터장] 제가 지금까지 탈북민들을 가장 많이 면담한 사람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면담 중에 제가 밀리는 부분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분야입니다. 이 분야는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보는 거예요. 또 한국 드라마를 한 번이 아닌 계속 돌려보니까 그 장면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특히 음악에 대해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다 알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북한 주민들은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사는지 다 압니다.

한류의 유행은 북한 주민들에게 적지 않은 수입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드라마가 담긴 USB, 즉 컴퓨터 저장장치를 넘겨주면 한 번에 수백 달러의 수입이 생기는가 하면 한국산 옷이나 생활용품도 돈이 많은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리에 팔리는 효자 품목입니다.

눈치 빠른 상인들은 유행이 될 만한 한국 제품을 서둘러 확보하기도 하고, 눈썰미가 좋은 재단사들은 한국 옷과 비슷하게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특히 한류의 확산은 북한 시장의 힘이 컸는데, 시장에서 암거래가 성행하고 한류 제품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 주민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졌다는 것이 탈북민들과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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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탈북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제한적”

한국 드라마와 가요, 한국 제품 등이 북한 주민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무조건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이나 탈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받아온 체제 선전과 사상 교육 때문입니다.

[노수현 씨] 한류가 나름대로 영향이 있지만, 북한 주민들의 생각이 바로 바뀌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것이 있잖아요. 오직 수령과 당, 또 배고픔 속에서도 지켜왔던 신념이 있는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긴 하지만 여기도 내 땅이고, 내 조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한국 노래를 즐겨 부르고 한국 제품을 많이 써 본 김선영 씨(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도 한류 문화를 접했다고 해서 북한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김선영 씨(가명)] 그런 생각(북한을 떠나야겠다)은 해본 적이 없어요. 세뇌 교육 때문에 그런 거죠. 저도 북한에서 나름 외국물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런 생각(탈북)까지 해 본 적은 없습니다.

개성 출신의 김진아 씨도 한류 때문에 북한을 떠나 한국에 온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한류 문화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와서야 북한 체제가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김진아 씨] 북한 체제에 길들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제품을 써 보고 한국이 좋아서 그 나라로 가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그 삶에 길들여지고, 그 삶밖에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죠. 이제 한국에 와 보니까 지금 누리는 이 삶과 자유가 소중하고, 북한이 나빴다고 깨닫게 된 것이지, 한류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탈북민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최근 10년 사이 탈북민들의 주요 탈북 동기를 분석해 보면 단순히 한류의 영향만으로 북한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한국 드라마를 보고 동경심이 생기겠지만, 그것만으로 한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탈북한 분들의 탈북 동기는 첫째로 생활에 대한 불만, 둘째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 그리고 한국이 잘 살고 자유가 있다는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만 보고 한국이 좋아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죠.

또 한류 문화의 접촉 횟수와 지역, 출신 성분 등에 따라 한류가 북한 사회와 주민에 미친 영향이 다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주요 일간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에 ‘한류가 김정은 정권의 가장 큰 두려움’이란 제목으로 기고문을 게재한 미 기업연구소의 올리비아 쉬버 선임연구원은 한류 문화가 북한 주민들의 인식 변화에 당장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탈북민들의 견해와 관련해 접촉 빈도, 개인별 경제 상황, 지역, 출신 성분 등에 따라 한류의 영향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올리비아 쉬버 연구원] 북한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출신 성분, 가족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요. 국경 지역에 사는 주민이라면 외부 정보를 접할 기회도 많고, 심지어 탈북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지만, 내륙지방에 살고 외부 정보에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면, 변화에 대한 흥미나 욕구가 생길 수 없고, 북한 당국의 말에 대해서 어떠한 의구심도 생기지 않을 수 있죠. 어디 출신이냐, 외부 정보에 얼마나 노출됐느냐에 따라 (그 영향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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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한류 문화의 영향에 젖어든 북한 사회.

이미 한류 문화가 북한 사회의 일부분이 됐다는 견해와 함께 여전히 한류 문화에 대한 노출 빈도와 파급력 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고 한류를 접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질수록 북한 체제에 대한 사고와 행동 양식에서 나타날 변화의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것이 많은 탈북민들과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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