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② 탈북 지원단체와 2년 만의 재회

서울-노정민, 천소람 nohj@rfa.org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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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② 탈북 지원단체와 2년 만의 재회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헤어진 뒤 2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한 탈북민 김서영 씨(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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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동남아시아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목숨을 걸고 탈북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고 있었는데요. 그때 맺은 소중한 인연도 여전히 마음속에 꼭 간직하고 있습니다.

[RFA 개국 25주년 특별기획 Then & Now: 희망일기, 새 꿈의 나래를 펴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2년 만에 재회한 감격과 반가움의 순간들을 노정민 기자가 기록했습니다.

버릴 수 없는 가방과 휴대전화

지난 8월 말 한국 인천시 남동구의 한 아파트. 2019년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만났던 김서영 씨(북한에 있는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가 현재 살고 있는 곳입니다.

‘2년 만에 만나는 김 씨는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현장음 (초인종): 딩~동]

[김서영 씨(가명)]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준 김 씨는 밝고 편안한 모습입니다.

거실에 작은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김 씨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분홍색 이불이 깔린 침대에 대형 냉장고와 텔레비전, 깔끔하게 정돈된 화장대에서 안정된 한국 생활이 엿보입니다.

냉커피를 내온 김 씨와 제3국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해 봅니다.

[기자] 여기 기억나요?

[김서영 씨(가명)] 아~, 여기 강 넘어서 처음 만났을 때..., 맞네요.

[기자] 우리 여기서 만났잖아요.

김 씨는 자신도 보여줄 게 있다며 아파트 한쪽에 보관해 놓은 검은색 가방과 휴대전화를 꺼내왔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이 가방은) 버리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때 추억이 있어서요. 이 가방을 메고 힘들게 산을 넘었는데, 의미가 있는 물건은 버리기 쉽지 않잖아요. 소중하죠. 그때를 떠올리면서 힘들 때마다 보고 있어요. 그냥 보면 일반 가방 같지만, 저에게는 의미 있는 가방이라 할 수 있죠.

[기자] 생사고락을 같이 한..., 그럼 그 휴대전화는 뭔가요?

[김서영 씨(가명)] 이 휴대전화는 제가 오면서 연락을 했던, 제일 중요한 거죠. 연락이 안 되면 어찌할 수 없잖아요. 올 때의 여정이 담긴, 추억이 담긴 거라고 볼 수 있죠. 이 전화가 없었으면 어떻게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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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정에서 메고 왔던 가방, 구출팀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휴대전화. 김 씨는 힘들 때마다 꺼내 본다며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이라고 소개했다. / RFA photo



한국에 도착하면 열심히 살겠다는 2년 전 다짐처럼 그녀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우리가 이렇게 산을 많이 넘고, 긴장하며 이런 길을 걸어 힘들게 왔잖아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힘든 길을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 발 더 다가선 꿈

[기자] 반가워요. 와~ 몰라보겠어요.

역시 2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이수진 씨.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환한 미소와 함께 쑥스러운 악수를 건넵니다.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머리도 멋스럽게 길렀습니다.

이 씨는 한국에서 14년 만에 엄마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릴 때 자신을 두고 혼자 탈북한 엄마를 잠시나마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수진 씨(가명)]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너무 기뻤어요. 하나원에서 나올 때 이제 엄마와 둘이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였어요. 다시 만난 엄마와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만나서 너무 좋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북한에서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토대(신분)가 좋지 않아 의과대학에 진할 수 없었던 이 씨는 자신의 꿈을 좇아 탈북했습니다.

북한에서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 가장 서글펐다는 이 씨는 한국 정착과 동시에 대안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과과정 자체가 다른 한국 학교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수진 씨(가명)] (정착 후) 일 년은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성적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어요.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어요. 북한에 있을 때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점수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1학기 성적을 받았는데 너무 엉망이니까 정말 힘든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놀러도 안 가고 계속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평균 성적을 유지하면서 괜찮았어요.

하지만 이 씨는 의대 진학의 꿈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신 간호대학에 진학해 간호사가 되는 걸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그는 진로에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의료계에 종사하고 싶은 목표는 그대로라며 5개 대학에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기자에게 이 씨로부터 문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명문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이 씨가 북한을 떠난 이유였고, 힘든 탈북 과정 내내 자신을 붙들어주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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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4년 만에 엄마를 만나고, 대학진학을 앞둔 이수진 씨(가명, 왼쪽). 지난 9월 초,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른쪽) / RFA photo



“늦게 찾아와 미안합니다”, “잘 정착해줘서 고맙습니다”

가을에 접어든 지난 9월 초. 김서영 씨와 이수진 씨는 2년 전 자신들을 동남아시아 제3국까지 무사히 인도하고 구출해 준 한국의 인권단체 ‘나우(NAUH)’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현장음]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니 반가움은 더 커집니다.

[지철호 팀장] 만나니까 실감이 나네요. 그때는 긴장해서 대화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모두 당당하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됐으니까 전과 다르게 편안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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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권단체 ‘나우’ 사무실에서 2년 만에 재회한 김서영 씨(가명), 이수진 씨(가명)와 나우 관계자들.



탈북민 구출 현장에 직접 나섰던 최시우 사무국장도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또렷이 떠올립니다.

[최시우 사무국장] 당연히 기억나죠. 생생하죠. 그때를 어떻게 잊겠어요. 국경에 가 있다는 것은 늘 긴장감이 있어요. 탈북민들은 국경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잖아요. 또 만나는 장소가 정해지긴 했지만, 긴 국경 지역에서 딱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죠. 못 만나게 되면 밤새 헤매야 한다는 걱정도 있었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공포심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당시 만났을 때는 환하게 웃었지만, 긴장감이 너무 커서 신경도 날카로워지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김 씨와 이 씨는 더 빨리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앞섭니다.

[김서영 씨(가명)] 감사하죠. 솔직히 저쪽(북한)에서는 희망 없는 삶을 살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한국에) 오면 자유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내가 노력한 것에 따라 성과가 있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오면서도 많이 감사했고, 도착해서도 감사함이 더 느껴지는 거예요. 감사하다는 말은 한 번으로 다 안 될 것 같아요.

[이수진 씨(가명)] (구출팀을 만나) 정말 기뻤고요. 거기에서는 스트레스 가운데 생활했는데, 지금은 마음의 긴장이 풀렸잖아요.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할 때, 제일 힘든 시기에 이렇게 만나서 정말 기쁘고요. 조금씩 힘들고 지칠 때마다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후원해주시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지철호 나우 구출팀장은 두 사람을 보면서 탈북민 구출과 지원 활동을 계속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지철호 팀장] 2년 전에 실제 탈북자분이 맞는지, 어떻게 살다 오셨는지를 제가 인터뷰했는데, 실제로 만나니까 정말 반가운 것 같아요.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이런 열매를 보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비루스의 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나우’의 탈북민 구출 활동도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북∙중 국경 봉쇄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경까지 통제가 강화되면서 탈북민들의 이동이 불가능해진 겁니다.

[지철호 팀장] 우리 단체에서는 코로나 대유행 이후 한 명도 구출하지 못했고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국경마다 봉쇄가 너무 강화됐고, 중국에서는 인공지능, 드론을 활용한 감시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은 하루빨리 국경이 열리기를 기대할 뿐, 한 분을 구출할 수 있다고 해서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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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김서영 씨(가명)와 이수진(가명) 씨를 배웅하는 나우 관계자들 / RFA photo



생사의 갈림길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 두 사람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현장음] 잘 가요. 또 놀러 와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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