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이민국 수용소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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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 이민국 수용소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 동남아시아 제3국의 이민국 수용소에서 탈북민들이 시청했던 한국 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 (왼쪽)과 ‘동이’ (오른쪽) 포스터.
사진 – 위키피디아

앵커: 북한을 떠나 동남아시아 제3국에 도착한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기 전 이민국 수용소에 체류할 때 다양한 종류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대형 텔레비전으로 매일 자정까지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요. 열악하고 무료한 수용소 생활에 한국 드라마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드라마를 통해 한국 사회를 미리 엿볼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는 탈북민을 배려하는 관계 당국의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사극, 현대물부터 오락용 드라마까지 다양

2019년 동남아시아 제3국에 밀입국한 뒤 현지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민 김서영 씨(북한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와 이수진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그곳에서 본 한국 드라마를 잊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최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밀입국을 자수한 경찰서 유치장에서 일주일을 체류하고 이민국 수용소로 이감된 뒤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무료함을 달랬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할 것이 없는 수용소 생활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이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김서영 씨(가명)] ‘동이’, ‘푸른 바다의 전설’, ‘지붕 뚫고 하이킥’ 등 그곳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어요. 미리 준비해놨더라고요. 밤 12시까지 보면 텔레비전이 끊어집니다.

[이수진 씨(가명)] 한국 드라마 CD가 많이 있었어요. 수용소 안에 엄청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데, (드라마 CD)를 계속 넣어서 봤어요. 그 안에만 있으니까 그걸(한국 드라마) 놔둔 것 같더라고요.

그곳에서 탈북민들이 본 한국 드라마는 사극부터 현대물, 오락극까지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과거 시간제한이 없을 때는 밤새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 탈북민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이민국 수용소에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에 대해 탈북민들과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긍정적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미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10월 5일) RFA에 탈북민들의 무료하고 열악한 수용소 생활을 개선하려는 관계 당국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우리 모두 이민국 수용소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북한 난민에게 한국 드라마를 보여줌으로써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들의 생활을 조금 개선해주려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국에 오기 전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기회죠.

북한 전문가인 문성희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킨요비(주간 금요일) 한반도 담당 편집위원도 한국행을 앞둔 탈북민들에게 한국 드라마 시청으로 자유 세계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려는 관계 당국의 배려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문성희박사] 갑자기 한국에 가야 하니까 미리 훈련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동안 (한국 드라마를) 못 봤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에 갈 탈북민들에게 ‘보고 싶었던 한국 드라마를 자유롭게 봐라. 앞으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며 자유 세계에 왔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 주민들이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겠지만, 이민국 수용소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북한과 달리 한국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멋진 드라마를 만들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겁니다.

올리비아 쉬버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도 RFA에 한국 드라마는 북한을 넘어 동남아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기에 현지 이민국 수용소에서도 시청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한국 문화가 북한과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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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씨(가명)와 이수진 씨(가명)가 동남아시아 제3국에서 밀입국을 자수하고 체류했던 경찰서 유치장 내부 모습. / RFA photo



경찰서 유치장∙이민국 수용소 생활은 열악

김서영 씨(가명)와 이수진(가명) 씨는 경찰서 유치장과 이민국 수용소의 생활이 매우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일주일간 머문 유치장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그 안에 공개된 화장실까지 있어 불편함이 더 컸다고 두 사람은 회상했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경찰서에서 절차를 마치고, 수수료를 낸 뒤 작은 감옥에 들어간 거죠. 방 크기는 정말 작았는데, 남자를 빼고 한 1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공기가 안 좋았고요. 화장실도 같이 있는데, 밥도 그 안에서 먹고요.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수진 씨(가명)] 경찰서에 있을 때는 사람이 있는 공간에 화장실이 같이 있으니까 정말 힘들었는데, 화장실 자체가 다 공개돼 있으니까 ‘정말 사람이 사는 건가’란 생각을 했었고요. 바로 앞에 남자들 감옥이 있어서 여자들의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정말 불편했어요.

추방 재판을 받고 이감된 이민국 수용소의 환경은 조금 나았습니다. 방도 넓었고, 화장실은 분리돼 있었으며 이틀에 한 번씩 산책뿐 아니라 간단한 음식도 살 수 있었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이민국 수용소는 좀 넓어서 괜찮았어요. 식사도 주는데 입맛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곳에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국말을 조금 알더라고요. 바나나, 사과 등 간단한 말이요. 그곳에서 이틀에 한 번씩 산책하러 나가면 그 안에 마트가 있었어요. 중국 돈을 현지 돈으로 바꿔주면 그걸로 과자도 사 먹었고요.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동남아시아 제3국의 이민국 수용소 환경이 열악하지만, 탈북민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저도 이민국 수용소에서 생활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정부가 중국과 달리 탈북민들을 한국, 또는 제3국으로 보내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북인권단체로서 이민국 수용소를 비롯한 그 안의 탈북민들의 생활 개선 노력을 해야 하지만,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는 관계 당국의 역할도 인정해야 합니다.

실제 김 씨도 이민국 수용소가 한국에 가기 위한 과정이기에 기꺼이 불편함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서영 씨(가명)] 많은 사람이 볼 때는 감옥이지만, 우리에게는 한국으로 가는 길, 여정으로 생각되는 거죠. 그 느낌이 다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이민국 수용소에 체류할 당시 함께 메콩강을 건너온 11명 외에 다른 탈북민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북∙중 국경 경비와 중국 내 단속 강화, 높아진 탈북 비용, 코로나비루스의 시작 등으로 탈북 자체와 이동이 어려워진 탓에 탈북민 수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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