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루트 현장을 가다] ① 한국행 탈북자 13명, 제3국 밀입국

동남아-노정민 nohj@rfa.org
2019.10.21
thai_defector1.jpg 13번의 이동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한밤에 7개의 산을 넘어 무사히 제3국에 도착한 탈북자들이 강변에서 건너편 땅을 바라보고 있다.
RFA PHOTO/노정민

Updated 2019-10-22

앵커: 탈북자 13명이 최근 동남아시아의 제3국에 밀입국한 뒤 국경 인근 지역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했습니다. 북한을 떠나 제3국에 도착하기까지 6천 킬로미터, 국경만 4개를 넘는 두 달 동안의 고된 여정이었지만, 탈북자들은 곧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탈북자들은 이곳의 이민국 수용소로 이송돼 면담과 조사 등을 거친 뒤 한두 달 내에 4천 킬로미터를 날아 한국으로 향할 예정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탈북자 13명의 목숨을 건, 1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여정과 이들을 돕기 위한 한국 인권단체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박한 구출작전을 서울과 동남아시아 현지 밀착취재로 생생하게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긴박했던 밀입국 당시 상황을 현지에서 노정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3명 탈북자들] “우리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

탈북자 13명이 지난 10월 중순,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밀입국했습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인 이들 중에는 12살 남자아이와 2살 여자아이도 포함됐습니다.

북한을 떠나 이곳에 오기까지 두 달이 넘는 기간, 중국 내 감시와 단속을 피해 일주일 넘게 숨어있기도 했고, 갈아탄 이동 교통수단만 13번, 한밤중에 넘은 산도 7개나 됩니다.

국경지역의 강을 건널 당시에도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작은 쪽배에 의지한 채 물살을 갈랐습니다. 강을 건너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갈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불빛 하나의 약속을 의지하던 끝에 결국, 이들을 찾아 헤매던 한국 인권단체 나우(NAUH)의 관계자들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현장음] 찾았다. 어유~ 안녕하세요 고생 많았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6천km의 탈북 여정에 나선 두 살배기 여자아이.
엄마 손을 잡고 6천km의 탈북 여정에 나선 두 살배기 여자아이.
RFA PHOTO/노정민

이들 13명의 탈북자 중 직행, 즉, 북한에서 나와 중국 등 제3국에 정착하지 않고 곧바로 이곳에 들어온 사람만 8명에 이릅니다.

이 중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펼치기는커녕 의무 군대에 입대해야 했던 탈북 여성 김진혜 씨(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는 자유가 그리워 지난 7월 북한을 떠났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털어놨습니다.

[김진혜 씨] 마음고생이라 할까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데, 내가 이 길을 꼭 가야 내 꿈이 성취되고, 내 앞길이 개척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지는 않았어요.

북한 당국의 무능력과 강력한 단속, 북한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싫어 탈북했다는 50대 여성 이춘화(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씨도 다른 나라에 마음대로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 씨는 오늘날 북한에는 돈이 많아 잘 사는 사람 중에도 탈북을 바라고 이들이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이춘화 씨] 사람들의 의향이 무엇인가 하면 ‘국가에서 우리의 돈을 빨아내는데, 이것(장사)이라도 풀어주면 좋겠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이럴 바에는 우리 모두 가자. 한국에서는 장사도 마음껏 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까 자유를 찾아가자.’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도 오고 싶어 한단 말입니다. 너무 힘들게하니까.

경찰서로 향하기 전 휴대전화에 저장한 문장. '한국에 가고 싶어요'란 말이 영어로 번역돼 있다.
경찰서로 향하기 전 휴대전화에 저장한 문장. '한국에 가고 싶어요'란 말이 영어로 번역돼 있다.
RFA PHOTO/노정민

이곳에서 꿈같은 하룻밤을 보낸 탈북자들은 다음날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현지 경찰에게 보여줄 휴대전화에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이 영어로 번역돼 있습니다.

빨리 자수해야 하루라도 일찍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경찰서를 향하는 탈북자들의 마음은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두 살배기 딸과 조카를 데리고 제3국까지 힘든 길을 걸어 온 이정심 씨(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는 한국에 있는 엄마를 13년 만에 만날 생각에 눈물만 흐릅니다.

[이정심 씨] 이제 다 와서 엄마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엄마랑 헤어진 지 13년 됐어요. 13년 만에 만난다니까 눈물이 납니다.

아직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20대 여성 박수영 씨(자신과 북에 남은 가족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도 경찰서를 향하기 전 불안함은 전혀 없다며 한국에 가서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박수영 씨] 위험한 고비를 다 넘겨서 도착했을 때 여러분이 도와주셔서 정말 기쁘고, 많은 분 덕분에 저희가 무사히 한국에 가는 길에 올 수 있었고, 앞으로 한국에 가서 열심히 살 겁니다. 전 불안함은 없어요.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에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무섭다거나 불안함은 없어요. 이제 앞으로 남은 기간 잘 지내다가 한국에 도착해서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13명의 탈북자를 구출한 나우의 지성호 대표는 북중 국경과 중국 내 단속이 크게 강화되면서 수많은 탈북자가 도중에 체포됐고, 실제로 제3국까지 오는 탈북자 수도 많이 감소했지만,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성호 대표] 이제 모든 것을 다 마쳤습니다. 마음을 많이 졸이기도 했고, 정말 눈물의 감동도 있었고, 눈물의 헤어짐도 있는데, 여기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으로 오는 관문이나 마찬가지니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경찰서에 자수한 탈북자들은 앞으로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돼 신원 조사와 면담 등을 거친 뒤 약 한 두달 내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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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상기 보도는 노정민 기자의 10 21일자 기사를 탈북자들의 안전을 위해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