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돈주’ 출현 ①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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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변 그늘에서 가라오케, 즉 노래방을 즐기는 평양 시민들 (2011년 8월).
평양 대동강변 그늘에서 가라오케, 즉 노래방을 즐기는 평양 시민들 (2011년 8월).
사진: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은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유층의 출현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북한 경제의 시장화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유층의 출현도 그 중 하나입니다. 문성희 박사님, 얼핏 들어선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와 비슷한 듯한데요, 북한에서 ‘돈주’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건가요?

문성희: 간단하게 말하면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 그리고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의 필자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유통 시장, 부동산, 금융, 임대, 고용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돈주는 자본가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북한에서 자본가가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자본가라는 개념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드는군요.

문성희: 북한에서는 자본가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 장사꾼이나 돈주, 이런 사람들을 자본가로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북한에서는 자본가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실제 하는 역할은 자본가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기자> 결국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이런 부분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듯한데요, 북한을 방문하셨을 때 현지에서 돈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문성희: 제가 15차례 북한을 방문했지만 ‘돈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만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의 입에서 ‘돈주’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신흥부유층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현지에서 들었어요.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그 여성의 지갑에는 북한 돈 200원 정도, 약 100달러 상당의 돈밖에 안 들어 있었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망한 뒤 재혼했는데 이 재혼한 상대의 연줄을 통해 평양에서 호텔을 경영하게 됐답니다. 2011년 당시 남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됐다는 것이었어요. 또 평양호텔 앞에 평양대극장이 있는데 여기에 ‘대극장식당’이라는 가게가 있어요. 결혼식도 할 수 있는 넓은 방도 있는 고급가게인데요. 여기 주인도 여성이라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때 (일본에서) 북한에 귀국한 내 친구가 지방도시에서 유통사업을 하는데, 트럭을 한 대 사서 사업을 하는데, 굉장히 성공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돈주가 유통 시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그 친구가 아마 ‘돈주’였을 수 있어요. 자기 집에 24시간 사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있다면서 저 보고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어요. 2010년 정도 얘기인데 그 당시는 돈주라는 존재를 제가 몰라서 전혀 생각을 못 했지만 그런 사람들이 다 돈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자> 네,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에서 개인사업을 해서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연을 쭉 설명하셨는데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예를 드셨던 여성이 원래 돈이 없었는데 재혼을 한 뒤 호텔경영까지 하게 됐다, 그러면 재혼한 남편의 영향력을 통해 사업에 성공했다는 추측도 가능하겠군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저는 직접 그 여성을 만나 본 적이 없고 그런 얘기만 들었는데 재혼한 남편이 돈이 많았거나 영향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기자> 그렇다면 북한에서 직접 목격하셨던 북한의 신흥부유층의 모습, 어떻던가요?

문성희: 2011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재일교포도 북한을 방문하면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안내원이라는 사람들이 붙는데  그 사람들 임금은 정말  한심해요. 해서 감사의 뜻도 있고 해서 안내원과 북한에서는 ‘운전수’라고 불리는 운전기사와 식사를 하면 돈을 내는 것은 항상 저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안내원이 식사비를 내준 적이 있어요. 그것도 저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재일교포 식사비도 그가 내주었어요. 북한의 일반 사람들은 흔히 안 다니는 고급식당에도 불구하고 돈을 내준다니 어찌 된 일이냐고 궁금했지요. 해서 그 분한테 물어보니까 ‘여동생이 평양에서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다’고 답했어요.

평양 방문 때 안내를 맡은 운전기사 딸이 만들어준 토끼탕. 딸은 평양에서 토끼요리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2011년 9월 22일)
평양 방문 때 안내를 맡은 운전기사 딸이 만들어준 토끼탕. 딸은 평양에서 토끼요리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2011년 9월 22일) 사진: 문성희

그리고 2011년에 저를 담당한 운전기사의 딸은 토끼 요리 전문 식당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어요. 운전기사, 안내원과 함께 소풍을 나갔을 때 그 운전기사가 토끼탕을 가져와 주었는데 맛이 있었어요. 그 딸 가게도 붐비고 있다는 것이였어요.

<기자> 그러니까 미장원이나 식당, 이런 소규모 가게를 하면서 돈을 모은 사람들이 점차 돈을 불러 가면서 돈주가 되기도 하겠네요.

문성희: 그런 것도 추측이 가능하고 아예 처음부터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부유층이 돼 가지고 그걸로 투자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연줄이 있다거나 (당) 간부들(의 친인척)이라거나 하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물론 제가 직접 그런 걸 취재해 본 적은 없는데 그런 추측이 가능한 거죠.

<기자> 다 같이 어렵게 사는 북한에서 이런 상대적으로 부유한 돈주들이 나타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반감이나 시기심, 이런 것들은 혹시 느끼시지 못하셨나요, 북한에 계실 때?

문성희: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좀 부러워했다고 할까,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제 주변에는 많았어요.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나도 돈을 좀 벌고 싶다, 이런 얘기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그렇죠. 공무원 해봤자 임금이 많지도 않은데 오히려 장사하면서 돈을 버는게 낫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아까 수중에 100 달러밖에 없었는데 남편 잘 만나서 호텔까지 경영하게 된 여성 얘기를 하면서 ‘나도 좀 장사를 해 보고 싶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았습니다.

<기자> 북한의 고급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자금 융통에도 관여한다는 측면에서는 이 돈주들이 북한 경제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한데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아까도 몇가지 실례를 들어 말씀드렸는데 신흥부유층이라고 할까,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말을 많이 들어봤어요. 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도 언제인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의 대상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장사를 하자면 자본이 필요하지요. 원래 자본이 있으면 좋지만 그런 돈을 가진 사람은 북한에서 아직 많지 않지요. 평범한 사람이 장사를 시작하자면 돈주로부터 돈을 빌려야 됩니다. 결국 그런 측면에서는 북한 경제의 변화를, 돈주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돈을 빌려주면서 자본주의 (현상을) 침투시킨다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는 굉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할까,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재 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현장과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재 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현장과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Photo: RFA

<기자> 네 북한사회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회, 이런 것들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빈부격차도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문성희: 그렇죠. 결국 돈주로부터 돈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면 갚을 수 있지만 잘 안 되고 적자만 불어나면 결국 돈주에게 돈을 돌릴 수 없게 되지요. 그러나 돈주는 무자비하게 이자나 돈을 회수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돈주는 더 부자가 되고 장사에 실패한 사람은 생활은 어려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해서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기자> 문성희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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