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쥐꼬리 생활비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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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쥐꼬리 생활비 지난달 23일 수도 평양에 주택 1만세대를 짓는 착공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쌍안경으로 착공식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이 최근(3 23진행됐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올해안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라는데요, 가능할 걸로 보시는지요?

문성희: 올해 1월에 진행된 8차당대회에서 5개년계획이 발표되었는데 그에 따른 것입니다. 1년에 1만 세대씩 평양시에 주택을 건설하고 5년간 5만 세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에요. 김정은 총비서가 인민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기때문에 무조건 건설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겠지요.

<기자> 그런데 어째서 주택인가요?

문성희: 주택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2010년에 북한에 갔을 때도 주택 건설이 한창이었지요. 그 만큼 주택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평양시민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그래서인지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과업으로 나서고 있어요. 현 상황에서는 평양종합병원과 같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주택같으면 비교적 건설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기뻐하겠지요.

<기자> 한편에서 북한에서 물자가 부족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문성희:네,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읽었습니다. 물자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에서 근무하던 각국 외교관 성원들이 탈출하고 있는 것 같네요. 북한주재 러시아대사관은 페이스북에서 그런 사실을 밝혔지요. 영국, 독일 등 12개국 대표부의 건물에 열쇠가 잠가졌다고 해요. 현재 북한에서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나 중국, 쿠바 등 9개 나라뿐인 것 같습니다.

<기자> 외국대사관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북한 사람들은 더더욱 물자를 구하기 어렵겠네요?

문성희: 아마 그렇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생활이 어려워졌던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보는데 물자가 안 들어오면 아무리 임금을 받아도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자> 그 임금 문제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문성희: 네, 그렇게 하지요. 북한에서 임금을 생활비라고 한다는 것은 청취자 여러분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리라고 봅니다. 제가 박사논문에서 북한 사람들이 받는 임금의 뜻으로 생활비를 썼는데 지도교수님이 흔히 생활비라고 하면 생활에서 쓰이는 돈을 말하는 것이니까 생활비의 개념을 별다로 써야 한다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지요. 그랬더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쓰는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생활비에 관한 해설이 있었어요.

<기자> 어떻게 설명하고 있던가요?

문성희: 간단하게 말하면 소모한 노동력을 보상하고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국영 경리부문, 그러니까 국영공장이나 기업소, 상업망 등에서 번 돈의 일부를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사회에서 말하는 임금인 것이지요. 어째서 임금이라는 말을 안 쓰는가 하면, 북한식으로 말하면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서 자본가와 노동자사이의 적대적 대립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어서라고 합니다. 임금이라는 것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의 가격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에 사는 저 같은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상품으로서 팔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자본가는 임금이라는 형태로 지불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북한의 생활비는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가 노동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보장해주기 위한 경제적 공간이라는 것이에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수탈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흔히 노사분쟁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기자> 네 그런데 북한에서 생활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요. 사실은 어떤가요?

문성희: 보통 노동자나 사무원들이 받는 생활비는 한 달 3천원-4천원 정도입니다. 322일 쌀 가격이 1킬로그램당 평양 3700, 신의주 3900, 혜산 4300원이라고 하니까, 생활비만으로는 쌀 1킬로그램도 살 수 없는 것으로 되지요. 물론 이것은 시장가격이기 때문에 국정가격으로 공급이 된다면 좀 이야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2012년에 현지에서 들었을 때도 생활비로 살아가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국가가 주는 생활비라는 것은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명목상 준다고 할까 북한이 목표로 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보장해주는 수단으로 안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기자>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것으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를 보장해주는 기업도 있다지요?

문성희:네, 일부 잘 가동하는 공장 등은 그렇지요. 예를 들어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는 2016년의 생활비가 ‘45만원-60만원이었다고 해요. 평양326전선공장에서는 20128월부터 단계적으로 생활비가 인상이 되어 20135월에는 전년대비 20-30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2010년대 중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약간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북한이 최근 힘을 놓고 있는 유트브를 보니까 상점에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하는 과자 등이 많이 진열되어있어 아마도 여기 공장 생활비는 낮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같은 장소는 몰라도 다른 공장이나 기업소에서는 여전히 높은 생활비는 보장하지 못할 듯한데요, 그렇게 되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해 나가는가요?

문성희: 그러니까 부업을 하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당국도 묵인하고 있어요. 다만 북한에서는 세대주는 반드시 직장에 가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남성들이 부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부업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지요. 그렇지만 남편이 죽었거나 이혼한 경우에는 여성이 세대주가 되기 때문에 그럴 경우에는 여성이라도 (직장에 나가야 하니까) 부업은 못합니다. 그럴 경우가 가장 생활이 어려워지지요. 공장에 가도 제대로 생활비는 못 받는데 부업도 못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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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강도의 한 아파트. 북한의 지방 아파트에서는 돼지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2011년 8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그렇지만 북한에서 직장에 가도 제대로 생활비가 안 나오면 불만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요?

문성희: 그렇지도 않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까 생활비가 안 나와도 할 수 없다, 어쨌든 자력갱생으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그런 쪽으로 사고가 가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털어놓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이제 생활비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겠지요.

<기자> 어떤 뜻인가요?

문성희: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기업이나 공장에서 주는 생활비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요. 모두 부업이나 장사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과 상관없이 지위에 따라 공급이나 특권이 있기 때문에 생활비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생활비에 신경을 안 쓴다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요?

문성희:그래도 그런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제대로 된 생활비를 보장할 수 있는 장소도 있는 것이니까  남겨놓아야 하지요. 제가 2003년에 평양특파원으로 있을 때 평양여관에서 일하던 한 여성 종업원이 너무 착실해서 놀란 적이 있어요. 그 여성종업원은 조금이라도 자기 생활비를 올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문성희:당시 마침 경제개혁이 실시된 시점이라 사람들마다 “일한 것 만큼, 번 것 만큼생활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었지요. 평양여관에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2, 4, 5층에 커피숍이 있었습니다. 각 층마다 개성이 있었지요. 저는 제가 숙박하는 방이 있는 4층 커피숍에 자주 가고 있었던데 그 여성 종업원은 2층의 커피숍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많은 손님들을 부르기 위해 메뉴판을 고안해서 제조하고나 그렇게 해서 재일동포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기자> 손님이 많이 오면 생활비에 영향이 있는가요?

문성희: 손님이 많이 오면 그만큼 매상이 올라가지 않습니까? 매상이 올라가면 그 만큼 생활비가 올라간다는 것이었어요. 성과제라할까, 그래서 피타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다른 커피숍 종업원들은 그렇지도 않는데 그 여성 종업원만은 그런 측면이 농후했어요. 그래서 보통 같으면 결혼하면 호텔을 나가야 되는데 결혼한 뒤에도 계속 일하고 있었어요.

<기자> 그런 측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가요?

문성희:아마도 그렇다고 봅니다. 자주 거론한 금컵공장이라든가 역시 개성적인 일을 하면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매상도 올라가지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생활비는 올라갑니다. 과거에는 일해도 그만, 일 안해도 그만, 그렇게 되면 적당히 일하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생산성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악습관은 이제 없다고 보고 생산을 못하는 공장, 기업소는 비판을 받거나 자연적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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