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슈퍼 도입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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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의 일요일 풍경. 유람선을 타거나 강변 한 켠에 들어선 공기총 사격 체험을 하는 평양 시민들. (2011년8월)
평양 대동강의 일요일 풍경. 유람선을 타거나 강변 한 켠에 들어선 공기총 사격 체험을 하는 평양 시민들. (2011년8월)
사진: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인민생활 부문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문성희 박사 모시고 북한의 인민생활 부문 살펴보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 북한에서도 슈퍼라고 불리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보셨는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대표적 슈퍼인 광복지구 상업중심에 오픈된 지 5개월 정도 뒤에 한 번 가봤어요.

<기자> 당시 가게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매장에 손님들은 좀 있던가요?

문성희: 가게는 넓었고 각국에서 볼 수 있는 슈퍼처럼 각 코너마다 상품들이 진열돼 있었어요. 가게가 열리지마자 갔는데 손님들은 비교적 많이 오고 있었던 셈이지요.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지방에서 일군으로 보이는 분 들도 견학하러 와 있었거든요. 아마도 지방에 돌아가서 광복지구 상업중심 같은 슈퍼 방식의 가게를 꾸리기 위해 배우러 온 것이 아닌가, 그렇게 추측이 되는데요.

<기자> 실제 그 이후에 북한의 평양 이외 다른 지역에서 슈퍼 형택의 가게가 들어섰나요?

문성희: 당연히 큰 지방도시, 함흥이랄까 원산 이런 데서는 아마 좀 닮은 가게들이 생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기자> 북한 당국의 방침은 슈퍼를 지방으로 확산시킨다는 거였다는 말씀이시지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당시 제가 본 일군들만도 한 100명 가까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 어쨌든 ‘광복지구 상업중심을 본보기로 하라’ 그런 뜻이겠지요. 북한 당국의 지시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진열된 상품들은 국산품이 많던가요? 혹은 외국제품, 중국산이 더 많았던가요?

문성희: 2012년, 제가 갔을 때에는 외국상품이란 거의 없고 국산품이 기본이었어요.

<기자> 가격은 다른 상점에 비해서 어떻던가요?

문성희: 국영상점보다는 좀 비싸지만 시장보다는 싸다고 느꼈어요, 중간가격 느낌이 들었거든요. 빵 가격을 하나 예로 들어봅시다. 국영상점인 평양제1백화점에서 한 개에 북한 돈으로 200원(2011년9월 당시 가격, 달러로 환산하면 7센트 정도) 하던 빵이 슈퍼에서는 268원. 국영상점보다는 약간 비싼 셈인데, 시장보다는 싼 값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광복거리 상업중심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며칠 전에 직접 방문했던 곳이지요? 그 당시의 이야기를 북한에서 들어보셨나요?

문성희: 네 저를 안내해주신 분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직전 방문했을 때의 얘기를 해주셨어요. 김 위원장은 그 당시 몸이 아픈데도 1층부터 3층까지 모두 돌아보고 국산품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등 여러모로 자세한 지도를 했답니다. ‘북한에서 생산된 화장실용 휴지를 보고는 매우 기뻐하기도 하셨다’면서 안내원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얘기로는 여기가 슈퍼 형태로 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였다는 것이에요.

<기자>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슈퍼가 생겼다다는 말인데, 북한에서 슈퍼 형태의 상점이 생긴 배경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성희: 북한에서 배경에 대해서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기에 추측으로 밖에 얘기를 못하는데 하나는 북한의 유통체계를 간소화해야 된다는 지도부의 의도가 있었다고 봐야지요. 슈퍼에서는 각 상품들을 고르면서 바구니에 담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산하면 되는 것이니까. 쇼핑하는데 시간 절약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또 여러가지 상품을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측면에서 슈퍼 가 매우 편리하다는 것이겠죠? 북한 인민들에게도 그게 편리하지 않습니까?

<기자> 그러니까 주민들의 편리를 중시했다는 말씀이신데 슈퍼가 확산되려면 제춤이 일단 생산돼야 하는데 제품공급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고려나 준비가 있었나요?

문성희: 아마 초창기에는 중국산, 그런 상품들을, 아시는 바와 같이 광복거리 상업중심은 중국과 합영으로 운영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중국제품을 보태고, 국산품이 모자라면,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었고. 첫 시기에는 그랬지만 점점 국산품을 늘려라, 그런 지시에 따라 계속 국산품을 늘렸던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은 들었구요. 자기들도 말하고 있었어요. 첫 시기에는 국산품이 많이 없었는데 지금은 많아졌다. 그런 식으로 점점 생산이 따라간다는 게 (북한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모자라긴 했겠지요.

<기자> 예를 들어 일단 제품을 먼저 생산하고, 생산을 갖춘 다음에 유통을 정비하는 순서였을 것 같은데 북한은 슈퍼를 먼저 보급하고 국산품 생산을 늘려라, 뭐 이런 식으로 간 듯하군요.

문성희: 그렇지요. 건물을 먼저 만들어야지 생산이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다간 슈퍼 같은 건 만들지 못하니까 우선은 슈퍼 건물을 먼저 세워놓고 거기에 놓는 상품이 많아지도록 그렇게 하려는 게 아니었나 싶어요.

평양 대동강변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 (2011년 8월)
평양 대동강변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 (2011년 8월) 사진: 문성희

<기자> 북한에서 슈퍼와 다른 상점, 특히 국영상점과의 차이점은 뭔가요?

문성희: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국영상점에서 물건을 살려면 쿠폰과 돈이 필요합니다. 즉 공급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공급 쿠폰이 없는 사람은 물건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슈퍼에서는 쿠폰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그 날에 구할 수 있거든요. 다만 식료품이나 일용품 같은 것은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산하는 방식이 도입돼 있었던데 제가 2층에서 스포츠 의류를 구했을 땐 아직도 옛날 방식이었어요. 그건 우선 상품을 구하기 전에 돈을 물고 그것을 증명해주는 표를 받은 뒤에 그것과 상품을 교환하는 방식이에요. 가게원한테 직접 돈을 내고 상품을 구입하는 형태가 아니었거든요. 좀 불편했죠. 반면 이런 불편이 없는 건 시장이지요. 시장에서는 돈으로 물건을 직접 살 수 있지요. 북한에는 시장이 있는 한편 국영상점이 남아 있고 최근에는 대성백화점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개장했는데 샤넬 명품을 팔고 있다면서요. 뭐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가 있는 거죠.

<기자> 그런데 돈으로 물건을 직접 사지 못하고 돈으로 상품권을 사서 그 상품권으로 물건을 교환해야 했다, 이게 슈퍼는 만들었는데 그 안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체계는 예전 방식 그대로였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문성희: 1층의 식료품이나 일용품 매장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볼 수 있는 슈퍼 형태, 물건을 바구니에 담아서 마지막에 정산하는 방식,….

<기자> 돈으로 물건을 바로 살 수 있다?

문성희: 네, 네. 하지만 2층에서는 가방이나 스포츠 의류나 코트나 구두같은 제품을 팔고 있었는데 그런 건 아직까지 돈으로 표를 먼저 산 다음에 돈을 냈다는 증명서를 받아서 물건을 사야하는 예전 방식이었죠. 이게 2012년 이야기니까 지금 7년이나 지났으니까 지금은 혹시나 의류나 구두를 사는 것도 그냥 슈퍼 형태로 바뀌었을 지도 모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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