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상하수도 문제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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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상하수도 문제 북한의 한 시범농장에서 여성이 물지게로 물을 나르고 있다.
AFP PHOTO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에서도 사회기반시설 정비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지 오래입니다.  특히 상하수도를 비롯한 물 문제의 해결은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문 박사님, 오늘은 북한의 물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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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 박사

문성희: 네, 제가 2010년인가 2011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북한에서는 ‘3개의 ㄹ’ 해결이 절실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슨 말이냐 해서 물었더니 물, 불, 쌀, 모두 아래 ‘ㄹ’받침이 붙지요. 그래서 나온 말이랍니다. 그 당시 이 3가지 문제 해결이 북한에서 절실했다는 것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물 문제, 전기 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네요. 2010년대 초반에도 그리 상황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문성희: 그런 것 같습니다. 뭐 제가 보기엔 당시만이 아니라 계속 절실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사실 평양은 나은 편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지방에 가면 아직 물 물제 해결은 멀다는 점을 느꼈지요.

<기자> 어떤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느끼셨나요?

문성희: 지방 호텔에 가면 물이 안 나올 때가 많아요. 그래서 욕조에 물을 채워 놓는데 그리 맑은 물이 나오지 않고 색깔이 갈색인 물이 나올 때도 있었지요.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닌 장소가 대부분이었지요. 물론 호텔은 수세식이지만 물이 흘러가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럴 때는 채워놓은 욕조의 물을 이용하기도 했지요. 물은 미네럴 워터, 즉 병에 든 생수를 사서 마시고 양치를 할 때도 그걸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절대 수돗물은 안 썼어요.

<기자> 문 박사님은 생수를 사서 쓰실 수 있어도 당시 북한 주민들은 돈을 주고 병물을 사거나 하지는 못 했을 듯한데요.

문성희: 그거야 그렇지요. 제가 수돗물을 안 쓴 중요한 이유는 설사를 하니까요. 그건 북한의 물이 나쁘다는 뜻보다 일본의 물과 북한의 물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언제나 장기 체류를 할 때 1주일 정도 지나면 반드시 설사를 하고 있었어요. 신경을 써서 수돗물을 안 써도 역시 어딘가에서 북한의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만 1주일 정도 지나서 심한 설사를 한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니까 사람의 적응 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평양의 물 사정은 어땠나요?

문성희: 평양에서도 가끔 물이 안 나올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종업원이 사전에 알려줍니다. “선생님, 물을 욕조에 담아 놓으세요”라고. “물이 안 나오게 됩니다”고 하시는거에요. 저도 익숙하게 된 일이었으니까 “예,알았습니다”라고 해서 욕조에 물을 담아놓지요. 평양에서는 더러운 물이 나오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그 물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숙박하던 당시 호텔에서 언제나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어요. 전기 문제로 그러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시간은 식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이니까, 그 시간에 맞춰서 샤워를 한 기억이 있어요. 뜨거운 물이 나오면 얼마나 기뻤던지 모릅니다.

<기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평양에서조차 물 문제가 심각한데요,  북한 주민들은 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요?

문성희: 그들의 생활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제가 호텔에서 하고 있었던 것처럼 욕조에 물을 담아 놓는 방법이 일반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한 번 어느 가정을 방문했을 때 욕조에 물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그것을 부엌 일이나 그런 것에 이용을 하고 있었어요. 듣고 보니 물이 나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처럼 수도꼭지를 틀면 항상 물이 나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요.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은 수도꼭지를 완전히 닫지 않고 약간 열어놓은 채로 생활하고 있었어요. 언제 물이 나올 지 모르니까요.

<기자> 평양이 그렇다면 지방에서는 더욱 심각하겠네요?

문성희: 그럼요. 아까도 좀 이야기를 했는데 지방에서는 맑은 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호텔이 그러니까 일반 가정에서는 더 한심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북중 국경지대에서도 강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 모습이 가끔 포착되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들 나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 지방에 가면 물이 얼마나 맑은지. 정말 이렇게 맑은 물이 아직도 지구상에 있구나, 라고 감탄을 할 정도이니까. 그런 물 같으면 마시거나  부엌 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신덕샘물이나 금강샘물 등 북한이 제조하는 미네럴워터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물론 돈을 내고 사야 되지만 그런 물들은 정말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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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천2호발전소 공사장에 게시된 물길굴공사 진행도 표지판. (2011년8월) 사진:문성희

 

<기자> 그런데 과거에 북한에서 수해가 나면 전염병이 생기곤 했다면서요?

문성희: , 지금은 그런 일은 없다고 보는데 1996년에 수해 지역을 취재했을 때 들은 이야기로는 하수도 상수도가 잘 정비가 안 되고 있어, 물이 범란하면 거기서 역병이 유행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실지로 환자를 본 것은 아니니까 진실은 잘 모르고 어떤 역병이 유행하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2011년에 들은 이야기로는 능라도 돌고래 수족관, 북한에서는 곱등어관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세운 목적 중 하나가 물 문제 해결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무슨 말인가요?

문성희: 그러니까 대동강을 거쳐서 서해의 바닷물을 릉라도 곱등어관까지 끌어오는데 그 때 동시에 (하수를 서해로 빼 내서) 평양의 하수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지요. 이것도 전문가한테 들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신빙성은 잠담할 수 없지만, 주민들 안에서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정도로 물 문제 해결이 절박하다고 할까 그래서 그런 이야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서해의 바닷물이라고 하면 서해갑문이 생각이 나는데요,  이것도 일종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사업이었지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1986년 8월에 완공된 북한 최대 규모의 갑문이고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습니다. 27억 톤의 담수능력을 지닌 인공호를 조성하여 남포항의 접안능력을 2만 톤에서 5만 톤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비롯해, 서해안에 새로 조성하는 총 30만 정보의 간석지 가운데 평안남도, 황해남도의 20만 정보에 농업용수 공급, 남포공업지구의 공업용수 확보, 수량조절로 대동강 하류지역의 홍수방지, 내륙 수상운수 확충, 남포와 황남 간의 육로수송 단축, 남포·대동강 지역의 풍치 조성, 인공호수에서의 양식업 개발 등이 건설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기자> 공업용수, 농업용수 확보나 홍수 방지가 실천됐다면 물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했겠네요?

문성희:, 제가 보기에도 서해갑문은 북한에서는 성공한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완공된 후 전형적인 관광코스로 외국인들에게도 자랑삼아 보이는 것이 서해갑문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2010년대에 와서도 계속되고 있었어요. 다만 수량조절로 대동강 하류지역의 홍수방지를 한다고 하는데 제가 1996년에 수해 지역을 취재했을 때 대동강물이 범란해서 어떤 사람이 허리까지 물에 잠기면서 걸어가고 있는 그런 사진을 제공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실지로 평양호텔 앞에 대동강이 흐르고 있는데 거기도 수위가 굉장히 올랐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제공해준 황해북도 인민위원회 사람들에게 물어봤지요. “서해갑문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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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그랬더니 어떤 대답이 돌아왔나요?

문성희: “서해갑문이 없었더라면 더 수위가 올랐다”는 것이에요. 서해갑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로 그쳤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실지로 갑문 문을 닫거나 그렇게 해서 대동강 수위를 조절한 것 같애요.그러니까 저도 그때 “서해갑문이 과연 북한 사람들 생활에 도움을 주었구나” 그런 감상을 가졌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북한 나름으로 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실례를 들어주셨는데. 북한의 물 문제, 현재는 어떤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글쎄요. 제가 체험한 시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지로 능라도에는 돌고래 수족관이 생기고 대규모 수영장도 설치되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평양 시민들 물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몇 년 동안에 고층 아파트들이 속속 건설이 되었는데 그런 아파트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수도 상수도 문제가 잘 돼야 되니까. 그런 상황을 종합하면 물 문제 해결은 촉진이 되었다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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